4년간 나이스했던 집주인인데 나도 당했나?

한상언 2023. 5. 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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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에서 전세로 이사 준비를 하며 겪은 일... 전세사기에 불안해 하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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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 기자]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주실 때 하셨던 말씀이 있다.

"운전은 어! 하는 순간 늦었다."

이미 문제를 인식했을 때는 사고가 일어난 후니 주변에 계속 신경을 기울이라는 뜻이었다. 운전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갈 때도 필요한 말이니 늘 마음에 새겼다. 물론 다짐이 무색하게 우매한 나는 꼭 한 발씩 늦고 말지만. 

전세 세입자의 위기
 
 세입자가 구해지기 전에 먼저 가계약을 한 우리 잘못일까? 아니면 돈을 내줄 수 없는 임대사업자의 탓일까?
ⓒ elements.envato
 
나와 언니는 이달 말 이사를 앞두고 있다. 올해 2월부터 이사를 염두에 두고 현재 살고 있는 집주인분과 논의를 해왔다. 우리는 이번 계약이 끝나는 대로 이사 나갈 것이며, 4월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볼 테니 집주인분도 그때쯤 집을 내놓으시라고 계약종료 의사를 밝혔다.

확실한 증거를 남겨놓고자 문자로도 같은 내용을 전달했었다. 요즘 전세사기가 워낙 이슈라 나름대로 차후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해 두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일정대로 4월 첫째 주부터 대출이 가능한 한도 내 주변 전셋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는 현재 '중소기업취업 청년 전월세 보증금대출(아래 중기청)'로 들어와 4년째 살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연장해 2회 연장 취급부터는 일반버팀목전세대출 기본금리(변동금리)가 적용된다. 목적물 변경으로 대출을 이어 가는 개념이라 당연히 불법 증축과 같이 문제 있는 건물은 대출이 어렵다.

하지만 예산 내 불법 증축 없이 버팀목 대출이 가능한 전셋집은 거의 없었으며, 요즘은 심사 과정에서 중기청보다 버팀목 대출받기가 더 어렵다고 공인중개사 분이 귀띔하셨다. 그래도 조건 안에 들어오는 집은 총 네 군데. 그중 세 군데는 모두 같은 금액이라 위치, 집 컨디션 등을 고려해 첫 번째 집으로 계약하고자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전세금을 내줄 수 없다는 임대사업자

우리는 가계약하러 가기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분께 '이사 갈 집 가계약 하려고 하는데 날짜 맞춰서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여쭸다. 통화가 되지 않아 문자를 남겼고 몇 시간 공백이 있던 사이에 예정대로 가계약을 행했다.

그러나 부동산에서 나오자마자 집주인분께 "아니요, 그건 어렵겠는데요"라는 문자를 받았다. 어!? 4년 간 아주 나이스했던 분이었는데, 한순간 악덕 전세사기업자로 보이기 시작했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분도 어쩔 수 없는 임대사업자라 이곳저곳의 전세금을 돌려 막기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면 우리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를 빨리 찾으면 된다. 그래야 임대사업자는 그 돈을 우리 전세금으로 돌려주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도 전세에서 전세로 이사 가는 것은 처음이라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를 구하고 우리가 계약하는 편이 맞는지 그 순서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계약이 종료되는 날짜에 돈을 받지 못한다면, 가계약은 날아가고 이사를 못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장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나머지 대출금을 그대로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만큼의 큰돈이 없는 우리는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세입자가 구해지기 전에 먼저 가계약을 한 우리 잘못일까? 아니면 돈을 내줄 수 없는 임대사업자의 탓일까? 돈을 줄 수 없는 건 집주인분의 사정인데, 어쩐지 우리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뉴스 기사에서 봤던 전세사기 피해가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고, 2년 전 재계약을 하면서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 우리는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없을 것 같아 암담하고 막막했다. 

전세사기를 검색하는 청년들
 
 20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와 시민대책위 주최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미추홀구전세사기대책위원장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는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방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2명이 추가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만큼 이번만큼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상황과 요구사항을 청취해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 권우성
 
이후 한 달이 되려던 차, 우리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와 가계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주인분께서는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도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해 보겠다고 했으나, 100% 믿고 기다리기엔 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을 보러 오는 예비 세입자에게 깨끗한 집을 보여주는 일 밖에 없어 계약 소식을 듣기 전까진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기고 언니는 자신의 블로그에 우리 일화와 대출 관련 정보를 정리해 올렸다. 분석 결과 남성보다는 여성이 높은 비율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30대가 많이 검색해 들어왔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일은 대부분 '전세사기' 키워드로 유입되고 있었다. 그들 모두 전세사기를 경험했다고 단언할 순 없어도, 특히 중기청 대출을 받아야 하는 청년들이 전세사기를 검색하고 블로그를 찾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집은 의식주 중에서 가장 큰돈을 지불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딱 기본만 하는 집이 한참 비싸거나, 기본도 안 되는 집이 많다. 현실적으로 조금 더 쾌적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욕심처럼 느껴질 정도다. 좌절을 겪고 계약을 해내도 또 다른 위기로 몰릴 수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운전도 계약도 당사자가 안전하게 행해야겠지만, 몸소 겪어보니 전세 계약은 내가 조심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아!' 하고 잘못됨을 깨닫는 순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인 듯하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너무 많은 주의를 필요로 하니 피로도가 높아진다. 계약 때마다 이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내 집 마련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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