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 | 최초의 가향 홍차 ‘얼그레이’ 탄생의 비밀
“차를 드셔보셨나요?”
이런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녹차’와 ‘홍차’다.(녹차는 워낙 오설록 ‘현미녹차’가 유명한 바람에….)
홍차는 녹차·백차·황차·청차·홍차·흑차 6대 다류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을뿐더러 소비량도 독보적인 1위다. 홍차 소비량은 전 세계 차 소비량의 60%를 넘어간다.
“그럼 좋아하는 홍차가 있나요?”
이때부터 다들 헷갈려하기 시작한다.
“그냥 홍차요.”
조금 더 관심이 있는 분은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다.
“음… 포트넘&메이슨·마리아주프레르·트와이닝스·루피시아·로네펠트·TWG 이런 것?”
안타깝게도 이건 홍차가 아니라 홍차 브랜드다. 백화점 식품관 한 편을 고급진 민트색으로 장식한 덕분에 유명해진 ‘포트넘&메이슨’은 영국, ‘마리아주프레르’는 프랑스, ‘로네펠트’는 독일, ‘TWG’는 싱가포르 차 브랜드다.
“향이 화려한 웨딩임페리얼과 마르코폴로를 좋아해요.”
딩동댕! 이 정도 얘기할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답하는 당신은 반쪽 홍차의 세계만 알고 있다는 사실. 위에 언급한 브랜드는 모두 서양 홍차 브랜드다. 세상에는 서양 홍차 말고도 너무나도 다채롭고 호화스러운 홍차의 세계가 존재한다.
퀴즈 하나. 세계 3대 홍차는? 영국 홍차? 완전 틀렸다. 영국에서 홍차 문화의 꽃이 피면서 영국이 홍차의 대명사 격으로 인식되지만, ‘영국 홍차’라는 것은 없다. 영국은 홍차를 수입해 브랜드화(化)했을 뿐이다.
영국은 홍차 수입해 ‘브랜드化’했을 뿐 ‘영국 홍차’ 없어
인도 홍차, 우바홍차, 기문홍차보다 영국 홍차가 훨씬 세련되고 호화롭지 않겠냐고? 이 또한 편견일 뿐이다. 근사한 캔에 들어있어 수집 욕구를 ‘뿜뿜’ 자극하는 서양 홍차는 그러나 차의 세계에서는 가장 하급 차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홀리프 차는 우렸을 때 맛이 부드러워 한결 마시기 편안하다. 차 고유의 향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만큼, 다른 재료를 섞을 필요가 없다. 같은 이유로 가향도 하지 않는다. 다시 정리. 서양 홍차는 홀리프보다는 잘린 홍차가 대부분이다. 서양 홍차를 또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단일 지역·단일 다원 차’ ‘블렌디드 차’ ‘가향 차’다.
블렌디드 차는 여러 지역·연도 찻잎을 섞어 만든 차다. 가향 차는 단어 그대로 다양한 향을 가미한 차다. 위스키도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싱글몰트 위스키가 더 비싼 것처럼 차도 당연히 블렌디드보다 단일 지역·단일 다원 차가 더 비싸다. 당연히 지역 이름을 붙인 차보다 다원 이름까지 붙인 차가 훨씬 비싸다. ‘브루고뉴’ 라는 지역 이름을 붙인 와인보다 ‘샤샤뉴 몽라셰’라는 동네 이름이 붙은 와인이 더 비싸고, 사샤뉴 몽라셰 중에서도 밭 이름을 추가로 붙은 와인이 더 비싼 것과 똑같은 원리다.
이 지점에서 손뼉 짝 치며 “맞다 얼그레이, 나는 얼그레이 홍차를 좋아해요” 하시는 분도 계실 터. 얼그레이는 서양 홍차 중 가장 유명한 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목이 ‘영화로 보는 차 이야기’인데 영화 얘기는 언제 나오는지? 바로 여기서.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은 랠프 파인스와 키이라 나이틀리가 당시 영국 정가의 실력자였던 데본셔 공작과 데본셔 공작부인으로 열연한 영화다. ‘세기의 스캔들’의 주인공은 그럼 공작부인? 정답. 제목이 공작부인인 만큼 데본셔 공작부인이 그 주인공이다. 세기의 스캔들 상대방은 ‘찰스 그레이’, 훗날 영국 수상이 된 인물이다.
여기서 중국 홍차가 등장한다. 세계 최초의 홍차는 ‘정산소종’으로 알려져 있다. 정산소종의 특징은 ‘송연향(소나무 훈연향)’이다. 유럽 카페 메뉴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랍상소총이 바로 ‘정산소종’이다. 홍차를 처음 만든 중국에서도 홍차를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이런 전설 같지 않은 전설만 남아 있다.
실제 정산소종이 만들어지는 중국 복건성 무이암산 동목촌 지역은 1년 내내 안개가 많이 끼고 비도 많이 온다. 비가 오면 차를 말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인근 소나무를 베어 불을 때면서 말리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차에 훈연향이 배었다는 추정이 훨씬 그럴 듯하긴 하다.
세계 최초의 홍차 정산조송이 영국에 알려지고 많은 이가 정산소종을 좋아했는데 그레이 백작도 이 홍차를 엄청 좋아했다. 이후 중국으로부터 정산소종 수입이 원활하지 않자 그레이 백작은 직접 정산소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훈연’이라는 비법을 미처 몰랐던 영국인들은(지금도 정산소종 만드는 법은 중국의 국가급 기밀이다) ‘송연향’이 가향의 결과라 생각했고 무슨 향일까를 찾았다. 그때 ‘용안’이라는 이름의 동글동글한 과일향이 가향된 것 아니냐는 가짜뉴스가 돌았고, 용안과 모양이 비슷해 보이는 베르가못이 선택됐다. 베르가못 향을 입힌 홍차를 그레이 백작은 아주 마음에 들어 했고 그래서 홍차 이름이 ‘얼그레이’가 됐다는 스토리.
그레이 백작 부인이 사교계에 ‘얼그레이’ 널리 퍼뜨려
이후 그레이는 다른 여성을 만나 결혼했고 그 여인이 그레이 백작부인이다. 그레이 백작부인은 티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늘 ‘얼그레이’를 대접했고 그렇게 얼그레이는 영국 사교계에서 유명해졌다.
이후 홍차 브랜드들은 ‘얼그레이’를 유행시킨 진짜 주역, 그레이 백작부인을 기린 홍차도 내어놓았다. 트와이닝의 ‘레이디 그레이’, 포트넘&메이슨의 ‘카운테스(countess는 여자 백작, 백작부인) 그레이’, 메쓰머의 ‘마담 그레이’ 등이다. 모두 베르가못 향에 오렌지 향을 좀 더 가향한 차로 알려져 있다.
그럼 우리 공작부인은 어떻게 되셨을까? 그레이 백작과의 사이에서 사생아 딸을 낳은 공작부인은 그 딸을 그레이가에 보내고 이후 그레이와 만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레이가에 보내진 딸의 이름은 일라이자. 일라이자는 공작부인과 여러 번 만났지만 공작부인이 사망할 때까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인 것을 몰랐다고. 이후 딸의 이름을 어머니인 공작부인 이름을 따서 ‘조지아나’라고 붙였다나. 데본셔 공작부인의 아가씨 시절 이름이 조이아나 스펜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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