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역주행, 기업들은 '사면초가'
[탁종열]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21일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 계획(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탄소 발생 기여도가 높은 산업 부문의 감축량을 3.1% 줄였다. "탈탄소를 위한 원료 수급과 기술 전망 등 현실적인 국내 여건을 고려해 목표를 완화했다"라는 것이 이유다. 기업 규제 완화와 원전 산업 강화를 앞세우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정부의 '기본 계획'은 탄소중립이란 세계적인 흐름을 무시한 채 역주행하는 것으로 근시안적 정책이란 비판이 거세다. 결과적으로 기업에게 "탈탄소가 급하지 않다"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 정부는 '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철강·석유화학·반도체 등 산업계의 탄소 배출 감축 목표치(2018년 대비 2030년)를 문재인 정부 당시 설정한 14.5%보다 3.1%p 낮은 11.4%로 조정했다. 하지만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의 감축 부담을 낮추면, 2030년까지 국가 감축 목표를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철강·석유화학 등 산업 부문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36%를 차지하며 전력 사용량까지 포함하면 54%에 달한다. 그런데도 배출 각 부문 중 가장 낮은 14.5%의 감축률이 설정됐는데, 이마저도 윤석열 정부는 대폭 낮춘 셈이다.
'2050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기존보다 3.1% 줄어든 산업 부문 감축량은 화력발전을 원전·재생에너지 발전 등으로 바꾸는 전환 부문, 국제 감축,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 확대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은 아직 상용화가 불투명하고 해외 조림 사업 등 국외에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벌인 뒤 실적을 이전받는 국제 감축은 국제 표준이 마련되지 않아 실제 실적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탄녹위는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며 2030년까지 감축해야 할 총량의 75%를 다음 정부로 넘겼다. 윤석열 정부 임기 기간인 2027년까지 매년 1.9% 감축하고 2028년 이후에 연평균 9.3%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책임 회피란 비판이 높다. 한국은 탄소 배출량 세계 10위이지만, 기후 대응 성과는 온실가스 배출 상위 60개국 중 57위로 '매우 저조함' 그룹에 속한다. 한국이 '기후 악당' 소리를 듣는 이유이다.
'기본 계획'의 내용은 지난 3월 20일 유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종합보고서에서 강조한 것과도 동떨어졌다. IPCC는 총회에서 단기 기후 행동의 급박함을 촉구하는 '제6차 종합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IPCC는 2040년 이내에 지구 온도가 1850~1900년 대비 1.5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 이상기후가 수시로 나타나고 해수면 상승, 식량 안보, 기대 수명 등 인간 삶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IPCC는 "온난화를 제한하려면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이 0(넷제로)이 되어야 한다"라며 현재 갖춰진 화석연료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후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00년간의 지구온난화는 사실상 전부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라며 "넷제로 달성 시점을 선진국은 2040년, 개발도상국은 2050년으로 앞당겨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대다수 국가가 밝힌 탄소중립 달성을 10년가량 앞당겨야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의 '기본 계획'에 대해 보수신문은 "여전히 부담이다"라는 경제계의 입장만을 소개하며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두고 이전 정부가 설정한 14.5%와 산업계가 주장한 5% 미만이 맞선 끝에 11.4%라는 절충안이 도출됐다(탄소배출 완화에도 … 재계 "여전히 부담" 3.21)"라고 평가했다.
한국경제는 고정 칼럼 '시론'에 "너무 빨리 석탄을 악마화해 폐지하면 CCUS(이산화탄소 포집, 이용 및 저장) 기술과 함께 전개될 신新 화석에너지 시대에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라는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의 칼럼(3.20)을 실었다. 박주헌 교수는 이 칼럼에서 "성급한 탈석탄은 빈곤 고착화를 초래할 수 있다", "저개발국에게 기후 변화는 배부른 자의 불평쯤으로 들릴 수 있다"는 등 기후위기 시대와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다.
▲ 2023년 4월 13일자 조선일보 보도 |
ⓒ 조선일보 |
스웨덴 기업 '볼보'가 보는 탄소중립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통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일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흡수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3월 기획 '녹색 전환 선진국 스웨덴을 가다'에서 스웨덴 기업들도 녹색 전환이 "정말 어려운 목표"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스웨덴 기업들은 (녹색 전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기업의 생존 역시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볼보트럭은 2023년 기준 전기 트럭이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하지만 2030년까지 50%를 채울 계획이다.
볼보 관계자는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쓰는 소비자에게는)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도 확실히 고려하고, 그 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기업과의 협력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기업의 강력한 녹색 전환은 스웨덴 정부의 '기후 대응 정책'이 있어 가능하다. 2017년 스웨덴 의회는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온실가스 70% 감축을 목표로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스웨덴 정부는 매년 예산안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추세, 직전 해의 주요 기후 정책 결정, 필요한 추가 조치 등을 담은 기후보고서를 발표한다.
경향신문은 "(스웨덴 기업들이)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이 '후퇴'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라며 "한국 사회가 스웨덴이 하는 것처럼 전환기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탄소 배출량 감축 관점에서 경쟁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전했다. 볼보건설기계 지속가능성·공공부문 부사장은 취재진과의 간담회에서 "미국 투자에 대응해 유럽연합도 비슷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라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녹색산업)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한국에 위험이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베를린 시민의 '위대한 도전'
지난 3월 26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기후 중립 시점을 앞당기자는 '기후 중립 2030'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독일 연방정부(2045년)와 유럽연합(EU·2050년)의 목표보다 기후 중립 시점을 15~20년 더 앞당기자는 사회적 제안은 발의안 통과를 위한 동의(전체 유권자의 25% 이상 찬성)를 얻지 못해 실패했다. 이번 베를린 주민투표는 '기후 새 시작 베를린'이라는 이름의 시민단체가 베를린 시민 26만 명의 서명을 모아 '기후 보호 및 에너지 전환법' 개정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성사해 이뤄졌다.
이 개정안에는 '2030년까지 공공건물 및 가정집을 기후 친화적으로 개보수하며, 이에 따라 오른 월세 인상분을 시가 세입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겨레는 주민투표가 실패한 원인은 "비현실적인 목표"에 있다고 전했다. 베를린의 '기후 중립 2030 주민투표'는 실패했지만, 베를린시 연립정부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50억 유로(약 7조 원)에 달하는 특별기금 조성이란 성과를 남겼다. 독일 일간 〈타게스 슈피겔〉은 "주민투표를 발의한 단체가 없었다면 특별기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비현실적인 입법 제안"이 정치권이 기후 중립 목표를 지키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의 '기본 계획'을 보수신문과 경제계는 환영하고 있지만 EU의 탄소국경제도 등 기후 규제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산업경쟁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2026년부터 EU 수입업자는 한국산 제품에 포함된 탄소량만큼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기업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와 기후환경단체 '플랜1.5'는 '2030년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 전망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2030년 국내 주요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가 정부의 공급 목표를 크게 뛰어넘는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세운 기업 232개의 2030년 재생에너지 수요는 157.5테라와트시(TWh)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2030년 재생에너지는 97.8TWh로 최대 수요의 57%에 불과했다.
조선일보와 매일경제 등 보수신문의 '반反 기후위기 보도'가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보도라는 것은 자신들의 보도로 확인할 수 있다. 매일경제는 4월 23일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주문할 때 재생에너지 이용을 조건으로 내거는 사례가 급증했다"라며 국내 기업이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악의 반도체 업황 부진에 더해 재생에너지 수급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애플은 이미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스코프3(협력사의 제조와 물류 과정, 유통, 폐기 등 공급망)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들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국내 기업에 '넷제로(탄소중립)'를 요구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대응은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과는 딴판이다. 보수신문과 윤석열 정부가 탄소중립을 위해 '금과옥조'로 여기는 원전 에너지는 RE100 에너지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내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4.7%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어도 쓸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없는 형편이다.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20.5%에 불과하지만 이미 미국 사업장과 중국 사업장에서는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반도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경제는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전기자동차 연비 규제, 탄소 배출 규제까지 강화하기로 했다"라며 완성차 기업이 '초비상'이라고 보도했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미 환경보호청(EPA)은 자동차 탄소 배출 기준을 강화해 2032년 신차의 67%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내용의 탄소 배출 규제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가 5.8%에 불과하다.
지난 3월 IPCC는 만장일치로 '제6차 종합보고서'를 채택하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모두가 살 만하고 지속할 수 있는 미래를 확보할 기회의 창이 빠르게 닫히고 있다."
총회에 앞서 공개된 실무보고서는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하면 3억 5000만 명의 도시 인구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여러 생물종이 멸종 위기에 처하며, 그 이상 진행되면 국경을 초월한 기후재난으로 극심한 경제·사회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세계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 1.5 상승'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라는 공통된 답을 내놓고 있다.
IPCC 보고서는 "당장 2030년까지 다양한 기후 행동 옵션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경쟁력'을 이유로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윤석열 정부와 보수언론의 '반反 기후위기 야합'에 맞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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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5,6월호 '언론콕!'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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