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담(手談)]1000승 대기록 뒤엔 수백 번의 패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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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바둑기사 원성진 9단이 또 하나의 대기록을 남겼다.
1000번이 넘는 프로기전의 패배,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실제로 패배한 프로기사가 자기 머리를 쥐어뜯고, 뺨을 때리고, 심지어 분루(憤淚)를 삼키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대중에 노출될 때가 있다.
서봉수도 원성진도 천하의 신진서도 프로기사로서 수백 번 이상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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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번 넘는 패배 있었기에 가능
실패로 얻는 경험이 더 깊이 남아
프로 바둑기사 원성진 9단이 또 하나의 대기록을 남겼다. 1000승의 위업. 지난 4월20일 달성한 이 기록은 국내 프로기사 중 17번째다. 1000승은 현재 세계 최강이라는 신진서 9단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신진서는 9일 현재 698승을 기록 중이다.
원성진은 1998년 5월 입단 이후 24년 11개월에 걸쳐 100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강산이 두 번은 변하고도 남을 오랜 세월, 1승씩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원성진의 기록 뒤에는 잊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숫자가 있다. 1000승 이상을 올리는 동안 거둔 515패의 기록. 500번이 넘는 쓰라린 눈물을 경험했기에 대기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바둑은 참으로 묘한 승부의 세계이다. 바둑사를 되돌아보면 세상을 호령했던 압도적인 실력의 강자는 언제든 존재했다. 국내만 보더라도 조훈현, 이창호, 신진서 등 시대를 풍미한 세계 최고의 기사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인물도 패배의 굴곡을 피할 수 없다. 그게 바둑이고, 흑과 백의 돌을 움켜쥔 자들의 숙명이다. 프로 바둑기사는 누구나 수백 번 운다.
세계 최강 신진서의 올해 성적표는 대단하다. 45승 3패로 승률은 0.938에 이른다. 신산(神算) 이창호를 포함해 국내 어떤 기사도 연간 승률 0.900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바둑의 신화를 쓰고 있는 신진서의 올해 최종 승률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신진서의 통산 성적을 살펴보면 698승을 올리는 동안 195패를 당했다. 천하의 신진서도 200번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한 셈이다. 단지 확률이 낮을 뿐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신진서를 이길 가능성이 있다.
‘고추장 바둑’의 대명사인 서봉수 9단은 어떨까. 그는 29년 전인 1994년 1000승의 위업을 달성한 또 하나의 전설이다. 통산 1753승의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서봉수가 1039패를 당했다는 점이다. 1000번이 넘는 프로기전의 패배,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상에 아무렇지도 않은 패배는 없다. 바둑도 마찬가지다. 프로기사에게 1패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자 아픔이다. 패배한 대국의 착점(着點) 하나하나는 기록으로 남는다.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돼서 평생을 괴롭힌다. 왜 패배했는지, 왜 이런 어리석은 수를 뒀는지 세상에 까발려진다.
패배도 괴롭고 억울한데 실수의 상흔을, 그것도 영원히 노출해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실제로 패배한 프로기사가 자기 머리를 쥐어뜯고, 뺨을 때리고, 심지어 분루(憤淚)를 삼키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대중에 노출될 때가 있다. 그 고통의 깊이를 타인이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바둑은 가혹한 세계이지만 그 어떤 영역보다 실패에 관대하다. 실패 그 자체가 인생을 나락으로 견인하지는 않는다.
실패는 또 하나의 소중한 인생 경험이다. 어설픈 수로 승리했을 때보다 아쉬운 한 수로 패배를 경험했을 때 더 깊이 남는다. 기력(棋力)의 토대를 더 단단하게 하는 자산으로 몸에 새겨진다. 서봉수도 원성진도 천하의 신진서도 프로기사로서 수백 번 이상을 울었다. 그 눈물이 켜켜이 쌓이고 굳고 또 굳어서 지금의 강함으로 이어졌다.
바둑기사가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기력 때문이 아니라 패배에 굴하지 않는 자세,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내의 담금질’ 때문인지도 모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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