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회복지사는 '진료실 밖 이야기' 듣는 사람들"
◇경제·심리 문제 상담… 유관기관 연결까지
의료사회복지사는 환자가 마주한 병원 안팎의 여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사회적 지원체계를 알아본 뒤 안내하고 유관기관과 연결시켜주는가 하면, 환자와 가족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고 상담을 통해 환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넓게는 입양·육아 관련 상담과 호스피스 상담, 장기이식 순수성 평가 등도 맡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의 경우 현재 9명의 의료사회복지사가 진료과별로 나눠져 근무 중이다. 이해령 복지사는 외과계와 뇌혈관계, 재활분야, 젠더클리닉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복지사는 “환자들의 스트레스 관리부터 경제적 지원까지 다양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치료에 방해가 되는 모든 심리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개입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에서는 연 평균 1500~2000명의 환자가 의료사회사업팀을 찾고 있다. 직접 알아보고 찾아오는 환자도 있고, 주치의 의뢰로 의료사회사업팀을 방문하는 환자도 있다. 환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오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심리적 문제, 가족 문제 등으로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성소수자 환자들도 상담을 위해 의료사회사업팀을 찾는다.
◇70~80%는 해결… 끝까지 노력해야 환자도 복지사도 납득
의료사회사업팀을 찾으면 70~80% 문제는 해결된다. 환자들이 모르는 특정 제도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가족 간 갈등이 해결된 뒤 의료비와 같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경우도 있다. 환자와 보호자, 환자와 의료진의 의견이 엇갈릴 때는 의료사회복지사가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의료사회복지사라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환자가 개입 자체를 일방적으로 거부할 경우, 의료사회복지사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제도적 문제를 가졌을 경우 의료사회복지사도 어쩔 도리가 없다. 대신 환자도 의료사회복지사도 납득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 해결 방안을 찾고 모든 과정을 환자에게 자세히 안내한다. 때로는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해령 복지사는 “환자가 노력의 과정을 쭉 지켜보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있어도 제도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준다”며 “그럴 땐 의료사회복지사 또한 더 정서적 공감과 위로를 전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17년째 근무… “환자 변하는 모습 보면 보람 느끼고 감사해”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이해령 복지사는 2007년부터 병원에서 의료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학부생 시절 현장 수련을 나갔을 때 ‘의료기관에 가면 네가 가진 자질을 잘 발현시킬 수 있으니 해보면 어떻겠냐’며 권유를 받은 게 첫 번째 계기고,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교수로부터 ‘현장을 모르면 안 되니 2~3년만 현장(의료기관)에 다녀와라’고 권유 받은 게 두 번째 계기다. 물론 오로지 권유 때문에 17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지난 17년 간 매일 다른 일들을 겪고 해결해오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는 게 이해령 복지사의 설명이다. 이 복지사는 “어느 정도 숙련이 됐다고 생각할 쯤 되면 늘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며 “하루도 같은 날이 없던 게 지금까지 일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사회복지사 특성상 환자들과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는데, 그런 관계들도 이곳에 계속 머무르게 하는 동기가 된다”고 했다.
의료사회복지사들은 종종 환자가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절망에 빠졌던 환자가 희망을 찾기 시작하고,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치료를 포기하던 환자가 더 이상 문제를 개인화하지 않고 주체적·적극적·능동적으로 해결에 나서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볼 때면 문제가 해결됐을 때 못지않게 보람을 느낀다. 이해령 복지사는 “소극적이고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환자가 어느 순간부터 의료진에게 여러 질문을 하고,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있다”며 “스스로 보람되면서도 환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짐은 복지사에게 나누고, 용기와 힘 되찾길”
이 복지사는 환자와 대화를 나눌 때 환자가 문제를 개인화하지 않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건강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반드시 구조적 문제가 숨어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구조적 문제를 보지 못하면 ‘내 문제’로만 치부되기 때문에, 절대 환자 개인과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령 복지사는 환자 스스로도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위축된 상황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모두 용기와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무거운 짐은 의료사회복지사에게 나눠주고, 용기와 힘을 되찾아 함께 문제를 해결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 중인 이해령 복지사는 우리 사회를 향한 당부의 말도 전했다. 이 복지사는 “아픈 사람이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갈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며 “아픈 사람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끔 돕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담: 네 가지 담지 못한 이야기>
1. 이해령 복지사의 MBTI는 INTJ다. I는 ‘내향적인 성격’을 뜻한다. 이해령 복지사는 실제 내향적인 자신의 성격이 사회복지사로서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사회복지사 일은 활동적이고 외향적일수록 잘 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인터뷰 내내 ‘다른 건 몰라도 앞자리는 E일 것’이라고 생각한 입장에서는 반전이었다.
2. 이해령 복지사는 ‘치료 받는 건 좀 어떠세요?’라는 질문으로 상담을 시작한다. 안부의 의미도 있지만, 치료에 어려움이 없는지 묻는 의미기도 하다. 이렇게 물어보면 의외로 많은 답변이 나오고 어떤 부분을 도울 수 있는지 파악하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고 한다.
3. 이해령 복지사는 뭔가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은 ‘해결 강박’이 있다고 한다. 직업 때문에 생긴 일종의 습관이다. 그래서 가끔 뉴스를 보는 게 괴롭다. 뉴스를 보면 ‘이렇게 해결하면 될 텐데’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고 한다.
4. 이해령 복지사는 의료사회복지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자아가 건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환자를 만나려면 본인부터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자아가 튼튼한 게 중요하더라’는 경험에서 나온 충고다. 다양한 사회활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유를 묻자 ‘경험에서 배우는 게 많다’는 이상적인 답변과 ‘일을 시작한 후에는 경험할 겨를이 없다’는 현실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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