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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종종 다투는 편이다.
나와 아내는 모두 무뚝뚝하고 남에게 먼저 다가가기를 꺼리는 성품이라 우리 부부는 '전투'보다는 '적의 동향 파악'이 길다.
어린 시절 말이 없는 편이라 '점잖은 아이'의 표상이었던 나나 '얼음 공주'로 불렸던 아내나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 어려워한다.
아내가 김치찌개나 김치전을 만든 다음 '이리 와서 먹어'라고 말하는 게 우리들의 화해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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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기자]
▲ <밥 한 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책 표지 |
ⓒ 들녘 |
상대에 대한 화나 서운함을 오래 품지 못하는 우리는 몇 마디 언성을 높이면 금방 '출구전략'에 골몰하게 된다. 어린 시절 말이 없는 편이라 '점잖은 아이'의 표상이었던 나나 '얼음 공주'로 불렸던 아내나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게 냉전이 길어지는데 언제나 화해의 일등 공신은 음식이다. 아내가 김치찌개나 김치전을 만든 다음 '이리 와서 먹어'라고 말하는 게 우리들의 화해 공식이다.
일 순위로 고를 수 있는 책
어색한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조용히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내미는 것만큼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일이 또 있을까. 위영금 작가가 쓴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는 1998년에 탈북하여 2006년에 대한민국에 온 작가 본인의 삶과 함께한 여러 북한 음식 이야기다.
음식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다정한 방식으로 화해의 손을 건네는 아내를 존경하듯이 우리로서는 웬만해서는 맛보기 힘든 북한 음식을 소개하고 레시피를 공유하며 북한의 음식 문화를 수려한 글솜씨로 녹여낸 위영금 작가를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는 말하자면 수십 권의 책 중에서 단 서너 권의 좋은 책을 골라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망설이지 않고 일 순위로 꼽게 되는 책이다.
북한 음식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일관되게 글을 썼고 무엇보다 '슴슴하지만' 묵은 감정과 몸 안의 독소를 개운하게 내려주는 수려한 문장력이 빛나는 책이기 때문이다. 고향이 평안도 정주인 백석 시인이 현재까지 살고 있어서 고향 음식에 대한 글을 쓴다면 아마도 위영금 작가의 글처럼 쓰지 않겠냐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이 특별히 소중한 이유
옥수숫가루로 만들어 식으면 꼬장꼬장 굳어져 꼬장떡이다. 꼬장떡은 가루만 있으면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름처럼 모양도 동글납작하게 만들어 세 손가락 도장을 찍기도 하고, 잎사귀 모양으로 빚어 꼬리를 뽑기도 한다. 뜨거운 물로 반죽해 양쪽에 꼬리를 만들어놓고 가운데를 손날로 찍으면 마치 나무 잎사귀를 보는 듯하다.
북한의 흔한 간식을 소담스럽게 이야기하는 줄 알았더니 이어진 다음 글이 심금을 울린다.
사람들은 떠나기 전 꼬장떡에 소원을 빌었다. 단속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두 손 싹싹 빌고는 꼬장떡을 조금 떼어 문밖에 던진다. 간절하면 온갖 신을 불러서라도 잘되기를 바란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굳어진 꼬장떡을 조금씩 깨물어 먹으며 수십 리 길을 걷는다.
가끔 상업적인 성공과는 상관없이 이 책을 냈다는 것 자체로 세상에 큰 공을 세웠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책을 만나게 되는데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가 바로 그런 책이다.
세상의 온갖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나라에 살지만 정작 같은 민족이 사랑하는 음식을 맛볼 수 없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이 책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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