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도 아직 못만들었는데 다 팔았어요"…고부가 화학제품 '불티'
재활용 플라스틱, 공장 삽도 뜨기전에 팔려
친환경·차세대 소재 개발해 시장 공략하는 화학업계
“아직 공장은 없습니다. 당연히 물건은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 팔았습니다.” 얼핏 들으면 ‘봉이 김선달식’ 사기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 하지만 한국 주요 기업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불황 속에서 기록적 호황을 누리고 있는 제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친환경·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이다. 공장에서 제품을 출하하자마자, 심지어 공장을 준공하기도 전에 팔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 하락에 따라 위축됐던 화학업계에 '솟아날 구멍'이 되는 것이다.
'슈퍼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제품명 헤라크론)가 요즘 코오롱인더스트리를 먹여 살리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아라미드는 500도의 고열을 견딜 수 있다. 동일한 두께와 무게의 철보다 5배 강하면서도 가벼운 첨단 소재다. 5세대(5G) 광케이블, 전기차 타이어, 우주항공 소재 등에 쓰여 갈수록 수요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각국이 5G 인프라 확장에 나서면서 수요가 급증해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다. 코오롱인더는 아라미드 섬유 국내 생산량 1위,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코오롱인더의 아라미드 공장은 연산 7500t 규모 생산라인을 100% 가동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관계자는 "패키징이 끝나자마자 고객들이 제품을 가져간다"며 "올해 하반기 추가 증설되는 7500t도 50%는 이미 공급이 확정됐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추가 증설분에 대한 선판매가 60% 이상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말하자면 공장을 아직 만드는 와중이고 물건은 아직 만들지도 못했는데 1년간 만들 물건을 절반 이상 팔았다. 원래 물건을 만들면 쌓아 놓는 재고창고엔 물건 대신 먼지만 쌓이고 있다.
LG화학의 태양광 패널용 필름(POE)도 재생에너지 수요 확대에 따라 불티나게 팔린다. POE는 절연성과 수분 차단성이 높고 발전 효율이 우수해 태양광 패널 보호 및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능을 한다. 좋은 물건을 남보다 먼저 사려고 태양광 기업들이 앞다퉈 LG화학의 POE 제품을 찾고 있다. POE가 포함된 태양광 봉지재 시장은 2020년 22억 6621만 달러(약 3조원)에서 연평균 13.3% 성장률을 보이며 2027년에는 59억 3002만 달러(약 7조 8513억원)으로 부풀어 오를 전망이다. LG화학은 2021년부터 충청남도 대산공장에 연산 10만t 규모의 POE 생산공장을 더 짓고 있다. 2024년에 증설이 끝나면 총 38만t으로 세계 2위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기존에 소각·매장되던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재활용한 플라스틱은 공장 부지에 삽도 뜨기 전에 팔려나가고 있다. 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은 각종 이물질을 걸러내지 못하던 기존 기계적 재활용보다 발전된 기술이다. 화학적 분해를 통해 열분해유·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등 원료를 회수하는데 물성이 약해지지 않고 순환성이 높다. 열분해유는 폐자원에 열을 가해 액체 상태로 전환한 원료다. 열분해유는 정제를 거쳐 재생 연료나 원유 대체 원료로 쓴다. 활용도가 높아 폐플라스틱으로부터 회수되는 원료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다.
SK지오센트릭이 2025년 생산할 열분해유는 공장 건설을 위한 삽도 뜨기전에 30~40%가량이 팔려나갔다.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인 SK지오센트릭의 울산 ARC는 올해 11월 착공에 들어가 2025년 완공될 예정인데 유럽 내 대표 식품 기업이 '입도선매(立稻先買)'했다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이 2024년까지 구축하는 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 공장에도 선주문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은 약 1000억 원을 투자해 울산에 국내 최초로 폐PET를 처리할 수 있는 4.5만t 규모 해중합 공장을 신설한다. 해중합은 폐플라스틱을 화학 처리해 녹인 뒤 재활용 원료인 비헷(BHET)을 만드는 기술이다. 해중합 공장에서 생산된 재활용 원료인 비헷을 투입해 페트(PET)로 만드는 생산 설비도 11만t 규모로 2024년까지 만든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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