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견문록]자산관리 넘어 ‘비즈니스 기회’ 찾는 영리치들

유제훈 2023. 5. 1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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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근 신한은행 PWM 패밀리오피스 강남센터 PIB센터장 인터뷰

"막대한 부(富)를 쌓은 영리치들에겐 자산관리(WM)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비즈니스입니다. 예컨대 특정인을 최고 회계책임자(CFO)를 선임하려고 하는데 이 사람의 평판이 괜찮은지, 어떤 기업을 인수하려고 하는데 시장에선 이 기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등을 자문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는 영리치를 배출하는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여러 창업 지원 공간 또는 기관이 몰려있어 사업 시작에 유리하고, 벤처캐피탈(VC)사도 집중된 만큼 자금 조달도 용이해서다. 신한은행이 테헤란로 한복판에 자산 100억원 이상의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신한 PWM 패밀리오피스 강남센터'를 연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 8일 방문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소재 신한은행 PWM 패밀리오피스 강남센터의 PIB센터는 전국 PWM 지점 중 유일하게 ‘PIB’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행장 시절 야심 차게 론칭했다는 PIB센터는 기존 PB센터의 핵심인 자산관리부터 기업금융까지, 즉 프라이빗뱅킹(PB)과 투자은행(IB)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날 만난 김노근 신한은행 PWM 패밀리오피스 강남센터 PIB센터장 역시 다른 PB센터와 달리 20여년간 조달·투자금융 분야에서 활동해 온 IB 전문가다. PIB센터에 근무하는 인원들도 절반은 기존 부동산 등 WM 전문가, 나머지 절반은 IB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신한은행이 PIB 영역을 새로 개척한 것은 WM 이상을 요구하는 고액 자산가들의 니즈에 부응한 것이다. 김 센터장은 “초고액 자산가들을 보면 WM뿐만 아니라 본인의 비즈니스와 관련한 자금조달이나 회사 인수 등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다”면서 “이 중엔 1980년대생 고객들도 상당한 편인데, 이들을 영리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PIB센터의 영리치 고객 비중은 정의에 따라 다르지만 약 20~30% 수준이라고 한다. 특히나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스타트업 등 창업을 통해 부를 일군 이들이 많다. 이 중엔 시리즈 A, B 투자 유치 후 엑시트(Exit)를 통해 1000억~2000억대 자산을 이룬 30·40대도 있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저성장-저금리 시대가 도래하고 자본시장이 커지면서 VC가 확대됐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산업에 뛰어들어 부를 이룬 젊은 층이 PIB센터 고객의 한 축”이라면서 "스타트업을 창업해 운영하다가 새로 투자를 유치하면서 매각하고, 또 다른 비즈니스를 구상하는 영리치들이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들의 투자성향은 어떨까. 초고액 영리치들은 ‘투자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별도의 자산운용이나 투자가 아닌, 기업 경영이나 비즈니스가 초고액 영리치들의 최대 투자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김 센터장은 "특히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고객들은 자금을 유치하지 못하면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가지고 비즈니스에 임하기에 다른 분야엔 잘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벤처캐피탈(VC) 업계가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것이 최고경영자(CEO)가 얼마나 업무에 집중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의사결정은 방식은 ‘쿨(cool)’한 편이라고 한다. 충분한 고민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빠르게 수용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적극성도 있다. 예컨대 예술품 투자를 한다면 기존 중·장년층 고객들과 달리 세계 3대 미술품 경매업체인 소더비, 크리스티 등과 직접 소통을 통해 큰 거래를 하는 식이라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특성상 자산 포트폴리오는 예상외로 단순하다는 게 김 센터장의 분석이다. 동석한 조영오 PB팀장은 “자산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진 고객의 경우 실제론 (운용하는) 상품이나 (구성한) 포트폴리오가 극히 단순해지는 특징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영리치들이 관심을 갖는 영역은 부동산이다. 자산규모가 상당한 만큼 단순한 주택, 아파트 등이 아닌, 강남-삼성 일대의 상업용부동산이 그 대상이다. 일례로 엑시트(Exit)를 통해 큰 자산을 축적한 한 영리치 고객의 배우자도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장소에 있는 건물을 추천해 달라’라고 한 적이 있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고액 영리치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개인의 투자성향에 따라 다른 점이 있으나 꼭 빠지지 않는 것이 국내·외 부동산”이라면서 “나머지는 달러채권이나 예금으로 보유하고 있고, 극히 소량은 비상장주식 등 고위험-고수익 자산에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조 팀장도 “큰 자금을 운용하는 고객들은 안정적인 자산관리 베이스를 선호한다”면서 "고(高)금리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했지만 강남, 특히 삼성역 반경 5km 내외의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엔 큰 변동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PIB센터가 이들에게 제공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는 무엇이 있을까. PB센터라면 흔히 떠올리는 ‘컨시어지(concierge·고객 편의를 위해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일컫는 말)’ 서비스 등은 초고액 영리치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아니라고 한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금조달이나 경영상의 자문 등 국내 대표 은행이 가진 공신력을 통한 비즈니스 기회라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2세 경영인끼리의 모임을 주선하거나 파티를 여는 건 웬만한 금융기관에서도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그 대신 국내 사모펀드(PE) 대표를 섭외해 해외 VC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에 대한 팁을 듣는 일 등 신한은행의 브랜드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에게 자문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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