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팀 필요"…지구 두 바퀴 반 달린 '1호 영업사원' 尹의 숙제

박태인 2023. 5.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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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선물 받은 메이저리그 관련 물품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외교’는 169석을 가진 거야(巨野)도 어찌할 수 없는 대통령의 고유 영역이다. 실제 지난 1년간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지점은 외교였다.

남북 관계를 중심으로 반일 전선을 펴왔던 문재인 정부의 흔적은 싹 지워졌다. 윤석열 대통령도 9일 국무회의에서 “제가 대통령직에 취임한 1년 전 이맘때를 생각하면 외교 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도 없다”고 자평했다. 모두 발언의 상당 부분을 외교 성과에 할애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지금 한·일 간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외교는 정권 교체의 상징과도 같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외교를 통한 변화에 시동을 걸었다. 역대 최단 기간인 새 정부 출범 약 열흘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한·미 정상회담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다음달에 한국 대통령 최초로 스페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고, 현지에서 4년 9개월만에 한·미·일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한·미 동맹을 다지는 것을 시작으로 한·일 관계 복원과 한·미·일 협력 강화에 방점을 찍는 윤석열식 외교의 신호탄이었다.

지난 1년간 윤 대통령의 순방 거리를 계산하면 10만 683㎞에 달한다. 지구 두 바퀴 반에 해당하는 거리다. ▶NATO 정상회의 ▶뉴욕 유엔총회 ▶아세안 정상회의(캄보디아) ▶G20정상회의(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국빈방문 ▶스위스 다보스포럼 ▶일본 실무방문 ▶미국 국빈방문 등 숨가쁜 순방 일정이 이어졌다. 내주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국 자격으로 참석한다. 이곳에서 또 한번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아부다비 릭소스 마리나 호텔에서 열린 한-UAE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기업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의 외교를 관통하는 단어로 국익을 1순위에 꼽는다.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가 윤 대통령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란 호칭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기간 기업인들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을 ‘영업사원’이라 소개했다. 그 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글로벌 CEO들과 만나서는 “저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며 ‘1호’라는 수식어를 추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지난 1년간 저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서 정상 세일즈 외교를 폈다. 경제를 외교의 중심에 두고 우리 제품의 수출 확대와 해외 첨단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뛸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년간 윤 대통령이 정상회담 계기로 유치한 투자액은 668.5억 달러(약 89조 743억원, 대통령실 발표 기준)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약속한 290억달러 투자 프로젝트와 지난 1월 윤 대통령의 UAE 국빈 방문에서 유치한 300억달러 투자협약이 최대 성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지난 4월 미국 국빈방문기간 발표한 넷플릭스의 25억 달러 투자도 눈여겨볼 지점이라 말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한·미가 안보와 경제 동맹을 넘어 문화 동맹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례”라고 말했다. 다만, 약속한 투자액을 현실로 구체화해가는 건 정부의 숙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백악관 국빈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야당이 거세게 비판하는 강제징용 해법과 한·일 셔틀외교 복원, 한·미·일 협력 강화도 국익의 관점으로 내린 결단이란 입장이다. 지난 3월 강제징용 해법을 결단한 윤 대통령은 4월 미국 국빈 방문에서 한·미 간 확장억제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는 핵협의그룹(NCG) 신설이란 성과를 끌어냈다.

다만, 한·미·일 결착의 대립구도로 서로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는 북·중·러와의 관계 개선은 풀어야할 숙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만 해도 북한에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고, 대중 관계에 있어서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8월 대만 방문 뒤 방한한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 의장을 휴가 중이란 이유로 만나지 않은 것도 중국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됐다.

하지만 지난 4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강한 반발을 샀다. 같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량 학살 있다면 인도적 지원만 고집하긴 어렵다”며 군사 지원 가능성을 시사해 러시아가 “전쟁 개입”이라 반발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윤석열 정부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한국의 근본적인 외교 기조에서 벗어나려 한다”며 “그 커다란 결과가 일으킬 후폭풍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신 인터뷰 때마다 툭 튀어나오는 윤 대통령의 ‘돌출 발언’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국빈 방문 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1년 정도 하면 자신감이 생겨 참모의 건의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대통령실 내부에 쓴소리를 하는 레드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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