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타령만 할건가...꿀벌 200억마리 폐사 막을 '꿀나무 해법'[영상]

최경호 2023. 5.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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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현실화 하는 꿀벌 멸종 나비효과(하)

“10년 넘게 벌을 키우면서 돈을 주고 꿀벌통을 살 지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서산리. 양봉농가를 운영하는 이인구(60)씨가 빈 벌통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이씨는 “10여년째 벌통 500개 규모로 꿀벌을 키워왔는데 올해 봄에는 440개 벌통에 있던 벌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벌통 1개당 평균 1만5000~2만마리가 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씨 농장에서만 꿀벌 700만마리가 폐사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까지만해도 벌통 500개에 꿀벌이 가득했는데 올해 1월부터 조금씩 줄더니 2월초엔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고 했다. 한국양봉협회 강진군지부장인 그는 올해 꿀벌을 번식시키기 위한 종봉(種蜂) 벌통 50개를 2000만원을 주고 구매했다고 한다.

이씨는 “겨울이 지나고 남은 벌통 60개만으론 양봉농사를 할 수 없어 지난해 25만원하던 종봉을 40만원씩 주고 샀다”고 했다. 최근 꿀벌폐사로 인해 일반 과수농가 등에 판매되는 수정용 벌통은 지난해 15만~18만원 수준에서 올해는 25만~30만원까지 오른 상태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오상택씨가 지난 1~2월 꿀벌이 사라진 채 비어있는 벌통을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꿀벌 200억마리 폐사…농가 망연자실


최근 2년간 계속된 꿀벌 집단폐사 여파로 양봉농가가 발을 구르고 있다. 지난해 60억마리가 폐사했던 피해 규모가 올해 200억마리로 3배 이상 커져서다. 올해 초 꿀벌 폐사 피해를 본 양봉농가는 돈을 주고 양식용 벌을 구매해 꿀농사를 짓고 있다. 한국양봉협회의 조사 결과 올해 전체 양봉농가의 56%인 122만4000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양봉업계는 지난 3월 9일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꿀벌 집단폐사에 대한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꿀벌 폐사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인정할 것과 양봉직불금을 도입하라”며 삭발식을 했다. 지난 2월 농식품부의 꿀벌 피해 진단과 대책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양봉농가 생존권사수 대정부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이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꿀벌폐사 농업재해 인정 및 보상금지급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꿀벌 폐사는 자연재해…양봉직불제 도입하라”


당시 농식품부는 2년째 계속된 꿀벌 피해가 전염병을 일으키는 진드기인 꿀벌 응애가 방제제에 내성이 생긴 결과라는 분석을 내놨다. 박승표(71) 한국양봉협회 경북도지회 사무국장은 “정부 발표는 양봉농가 상황을 전혀 모르고 내린 결론”이라며 “벌이 절반 이상 죽었는데 자연재해가 아닌, 응애 방재제 때문으로 국한시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와 양봉농가가 대립하는 것은 꿀벌폐사로 인한 피해는 커지는데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온난화와 병해충 피해, 약제 오용, 봉군(蜂群) 관리기술 부족 등 각종 원인이 맞물린 결과로 본다. 정부 발표대로 “응애(기생충)가 기승을 부려 벌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설명이 우세하다. 최근 겨울철 낮 기온이 높아져 벌통을 나섰던 벌들이 저녁 때 귀환하다 얼어죽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이인구씨가 올해 초 폐사한 꿀벌 대신 구매한 벌통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정부 “밀원(蜜源)숲 등 생태계 보존 시급”


정부와 전문가들은 “밀원수(蜜源樹) 식재와 양봉산업 진화만이 꿀벌 집단폐사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급격한 기후변화 속에 꿀벌먹이 확대와 양봉산업 고도화를 꾀하지 않으면 양봉업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3년 176만군이던 국내 양봉 규모는 현재 260만군까지 는 상황이다.

꿀벌에게 설탕을 먹여 키운 뒤 꿀을 따내는 사양(飼養)꿀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천연 토종꿀을 생산하는 꿀벌 먹이인 밀원수 화분(花粉) 대신 설탕만 먹여 벌 영양결핍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사양꿀을 천연꿀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양봉업자를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양봉농가에서 꿀벌이 꽃들을 옮겨다니며 수분(受粉)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아카시 대체할 ‘꿀나무’ 많이 심어야”


양봉 산업이 커지면서 국내 밀원수의 70%를 차지하는 아카시나무를 대체할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피는 시기가 다른 나무를 다양하게 심어 채밀기간을 늘리고 꿀벌 먹이도 대량 확보하자는 취지다.

이에 농진청 등은 아카시(개화시기 5월)를 비롯해 회양목(3~5월), 헛개나무(6~7월), 밤나무(6~8월), 모감주나무(7월),쉬나무(수유나무·7~8월), 칠자화(8~11월) 등을 심을 것을 제안했다. 온난화 때문에 순차적으로 꽃이 피던 산수유·개나리·진달래 등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개화하고 있어서다.

한상미 농진청 양봉생태과장은 “응애 발생이나 농약 드론 살포 등도 문제지만 벌 먹이인 밀원수가 부족한 것도 폐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벌이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나무가 많아야 튼튼해지고 농가소득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이인구씨가 올해 초 폐사한 꿀벌 대신 구매한 벌통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헛개나무, 쉬나무, 아왜나무 꿀 생산량 많아


정부도 전국적인 밀원수 식재와 꿀벌 연구 등에 나섰다. 국립산림과학원 조사 결과 ㏊당 꿀 생산량은 헛개나무(301㎏)·쉬나무(259㎏)·아왜나무(125㎏)·광나무(120㎏)·이나무(119㎏)·꽝꽝나무(107㎏)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꿀벌을 잡아먹는 등검은말벌로 인한 피해도 악재다. 농촌진흥청은 꿀벌통을 초토화시키는 등검은말벌 방제를 위해 4~6월 전국적인 동시 방제를 하고 있다.
꿀벌을 잡아먹는 등검은말벌이 꿀벌통을 향해 날아들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등검은말벌 방제 등 전국이 ‘비상’


등검은말벌은 2010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외래 해충이다. 농식품부도 500억원을 투입해 환경부 등과 함께 꿀벌·생태계 보호을 위한 연구에 착수한다. 조윤상(54)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은 “꿀벌질병관리센터 차원에서 꿀벌이 집단폐사한 직접적 원인을 규명하는 동시에 응애 구제를 위한 천연약제 같은 신약개발 등을 통해 장기적인 꿀벌 보호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진=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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