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후쿠시마 시찰단, 국제사회가 지켜본다

고승욱 2023. 5. 10.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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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류 지구촌 시선 싸늘 한국의 판단과 대응 주목받아
불투명·오만한 일본 태도에 현실적 대안마저 불신 증폭
철저하고 치밀하게 준비해 여론몰이 덫에 빠지지 말아야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방류 전문가 시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규모와 세부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전문가 중심의 시찰단이 오는 23일 일본에 간다는 계획이 벌써 나왔다. 제기된 우려와 불안을 현장에서 확인할 좋은 기회라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지만 일본은 안전을 홍보하는 장으로 이용할 게 뻔하다. 한국을 디딤판 삼으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워 오염수 방류의 영향이 가장 많은 나라, 관계가 껄끄러워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을 것 같은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의 판단과 행동이 국제사회 여론을 좌우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한국이 승인했다”고 여론몰이에 나서면 우리는 난감해진다. 미국 등 몇몇 나라에서 정부 차원의 지지가 있었지만 방사성 물질을 대거 바다에 버리려는 일본에 대한 지구촌의 시선은 싸늘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에는 지금 방사능 오염수 132만t이 철제 탱크 1066개에 담겨 저장돼 있다. 2011년 3월 대지진 여파로 녹아버린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대량의 물이 동원됐고, 이후 폐쇄된 원자로 주변의 오염된 지하수를 끊임없이 퍼올렸다.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하루 140t의 오염수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게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로 불리는 정화 장치다. 도시바가 만들어 2013년 3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의 허가를 받았고, 이듬해 히타치GE뉴클리어에너지가 개발한 신형으로 대체됐다. 인류는 스리마일섬·체르노빌 등의 원전 사고를 겪으며 방사성 폐수를 정화하는 여러 방식의 기술을 개발했다. 그걸 총망라한 게 ALPS다. 초기의 기술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하루 250t의 오염수를 정화한다. 코발트60, 세슘137 등 방사성 물질 62종을 국제 기준 이하로 제거한다. 오염수를 모아 ALPS로 거르고, 정화되지 않는 물질은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 30년 동안 순차적으로 바다에 배출한다는 게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에 제시한 해법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서울에서 ALPS를 언급한 이유는 이 해법을 한국이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이 정화 후 방류를 현실적 해결책으로 본다. 최선일 수 없지만 달리 대안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ALPS가 방사성 물질 대부분을 자연적 수준 이하로 정화하고,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 등은 충분히 희석하면 문제가 없다는 기술적 확신에 근거한다. 물론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ALPS가 현재 수준에서 최고의 기술적 대안이고, 일본이 기술적 프로세스를 100% 이행한다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다. 태평양 18개국 섬나라가 참여한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의 과학자들은 “일본이 제공한 자료는 불완전하고 부적절하며 편향돼 있다”고 주장했다. 처리된 오염수에서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그린피스는 ALPS의 기술적 한계를 알면서도 비용 때문에 추가 개발을 중단했다고 주장한다. 불신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런데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앞세워 이런 우려를 무시한다. 심지어 “중국, 한국의 항의는 듣고 싶지 않다”는 오만함까지 보인다. 이러니 여론은 점점 악화돼 “일본이 좌지우지하는 IAEA의 검증을 어떻게 믿는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달 주요 7개국(G7) 기후·환경 장관 회의에서 오염수 방류 환영 입장을 이끌어내려다 면박만 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일본 언론이 기시다 총리가 갑자기 방한을 결심한 데는 오염수 방류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내놓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러니 우리 시찰단에 전 세계 지식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하다. 행여 일본의 근대 문물을 배워오라고 고종이 파견한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신사유람단)처럼 최첨단 시설에 감탄하며 돌아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알맹이 없는 외교적 발언으로 시간을 때우다가 돌아서서 언론을 이용해 딴소리하는, 고질적인 이중 플레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이 문제는 국내 정치에서도 핵폭탄급 사안이다. 일본, 환경 오염, 국민의 건강권 같은 최고로 민감한 사안이 한데 모여 있다. 거침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시찰단 구성이 좀처럼 미덥잖은 이유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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