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다정한 정보의 계절

2023. 5. 1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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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나는 엄마의 신용카드 결제명세서보다 그녀를 더 잘 알고 있을까? 그녀가 자주 가는 카페는 어디인지, 요즘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마지막으로 옷을 산 건 언젠지 물어본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신용카드나 휴대폰보다 그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기란 불가능하다. 모든 존재가 데이터화되는 정보 범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검은 화면의 휴대폰을 톡톡 두드려 깨워 바로 보이는 앱에 접속하면 순식간에 방대한 정보들이 쏟아진다. 일상에서 정보의 수용은 1인칭 시점으로 이뤄지기에 맞닥뜨린 정보의 유용함과 유의미함을 분별하는 기준은 ‘나’다. 당장의 활용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내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정보들이 목적 없이 수집된다. ‘하루 5분만 투자하면 되는 건강관리 루틴’ ‘일 잘하는 사람의 메모 작성법’ ‘부자의 성공 습관’ 같은 것들이 (실제로는 한 번도 행해본 적 없다 하더라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애석하게도 임시 저장된 정보들은 지식으로도 습관으로도 쉬이 흡수되지 못한 채 휘발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빅’ 데이터라도 질문과 방향성이 없다면 제대로 된 분석과 활용이 불가능하다.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그제야 해석의 실마리가 보인다. ‘데이터’가 ‘정보’가 되기 위해선 질문이 있어야 하고, ‘정보’가 ‘통찰’이 되기 위해선 뾰족한 질문이 있어야 한다. 뾰족한 질문으로 길어 올린 통찰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제안을 한다. 숫자로 이뤄진 데이터와 사람의 교감은 그때부터 이뤄진다.

정보가 지식이 아닌 교감의 매개가 되는 선명한 사례가 있다. 이번 어버이날에 이색 선물로 화제를 모은 ‘어버이 자서전’이라는 문제집 형태의 선물이 그것이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인생을 한 권의 자서전으로 남겨보는 특별한 선물”은 이 독특한 자서전을 홍보하기 위한 문장이다. 공책 한 권 분량의 문제들은 부모님의 학창 시절 꿈을, 자식에게조차 말 못한 콤플렉스를, 들어본 적 없는 후회와 흐릿하게 알고 있던 취향을 묻는다. “꼭 가고 싶은 여행지가 어디입니까?” “요즘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와 같이 내가 몰랐던, 그러나 알아야 했던 정보가 가득하다. 실천한 적 없는 ‘하루 오 분 투자 건강 습관’보다 내 삶에 훨씬 더 유용한 정보임은 분명하다.

이 상품에 달린 3400개 후기 중 가장 다수의 공감을 받은 문장엔 이렇게 적혀 있다. ‘부모님에게 선물하기 위해 샀지만, 결국 내게 더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타인을 더 잘 알고자 던진 질문이 스스로를 더 풍요롭게 하는 선순환의 메아리로 돌아왔다는 ‘간증’이 다시 메아리가 돼 많은 사람들에게 울려 퍼진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나를 위한 정보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정보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해 본다. 요즘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자주 가는 카페는 어디인지, 어떤 음악을 듣고 뭉클했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준비한다. 간결하게 질문하고 경청하다 보면 언어로 전달된 데이터가 다정한 정보로 변해 내게 스미고 흡수될 거라 믿어본다. 다정한 정보는 통찰 대신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가 된 정보는 기억이 아닌 가슴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가정의 정의를 혈연이 아닌 인연으로 확장한다면 5월은 ‘관계’의 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이야기’가 튼튼한 관계를 만드는 재료이기에 5월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것을 목표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탁월한 데이터 분석은 언제나 명확한 질문에서 시작되고, 다정한 이야기는 어김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시작된다.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것이 정보의 일이라면 다채롭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의 몫이다. 만발하는 봄꽃을 바라보며 그 꽃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보다 충만하고 다정한 오월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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