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매주 줌서 이야기꽃… ‘고독을 말하자’ 캠페인도
지난달 2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줌(Zoom) 모임에서는 담당 디렉터를 비롯해 노인 4명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모임을 주최한 단체는 ‘임브레이싱 에이지(Embracing Age)’. 외로움을 겪는 노인들을 주로 돌보는 기독교 자선 단체로 교회와 주로 교류하는 곳이다.
이 단체는 매주 수·목요일 오후 노인들과 줌으로 모인다. 한 주간의 일상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명 ‘수다 모임’이다. 참석자들은 중간중간 커피나 차를 마시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임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모임은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끝난다. 또 고정 진행자가 매주 다른 주제를 선택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도록 돕는다. 모임 말미에는 각자의 기도 제목을 나누고 모든 참석자가 돌아가면서 기도를 한 뒤 모임을 마무리한다. 이날 나눈 주제는 ‘돌봄(Caring)’이었다.
한 노인은 모임에 배석한 기자에게 한국에서 노인을 대하는 자세가 어떤지 물었다. 이외에도 한국의 외로움 문제는 어떤지, 이를 마주하는 교회의 대응은 있는지 등 꽤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날 줌 모임에 참석한 노인들의 대화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단어는 ‘마음(mind)’과 ‘정신 건강(mental health)’였다. 영국 정부와 시민 단체가 꼽은 외로움 돌봄의 핵심과도 일맥상통하는 키워드다.
영국 정부는 2018년 외로움부를 창설하면서 외로움 문제 해결에 교회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일찌감치 갖고 협조를 요청했다.
기독교 자선 단체들의 연합체인 ‘외로움에 맞서는 기독인 연합(CTAL·Christian Together Against Loneliness)’ 역시 외로움 돌봄 캠페인에 함께 했다. CTAL에는 구세군 영국 ‘링킹 라이브즈(Linking Lives)’ ‘필그림스 프렌드 소사이어티(Pilgrim's Friend Society)’ ‘페이스 액션(Faith Action)’ 기독교장애인자선단체인 ‘리버빌리티(Livability)’ 등 8개 단체가 소속돼 있다.
영국 정부와 CTAL, 외로움 종결 캠페인(CEL) 등이 공통적으로 집중하는 지점은 ‘정신 건강’이다. 특히 각 분야에서 상담, 소모임 등 심리적 도움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정부와 CEL은 외로움을 사회적·감정적·존재적 외로움 등 3가지로 구분했다. 하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심리적 문제에 근거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를 해결하려고 영국 정부와 8개 시민 단체는 2019년 6월 고독에 대한 문제를 열린 마음으로 정직하게 바라보기 위해 ‘고독을 말하자(Let’s Talk Loneliness)’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은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을 자발적으로 털어놓고 서로 격려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실제로 많은 영국인들이 SNS 등을 통해 자신이 겪은 외로움을 공유했다.
교회도 외로움 극복 활동에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런던 근교인 트위크넘에서 만난 티나 잉글리시 임브레이싱 에이지 디렉터는 “교회는 장소적 의미의 커뮤니티 센터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주체”라며 “외로운 이들을 돌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교회가) 외로운 이들의 소속감을 높이려면 더 넓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영국 교회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악기·운동교실이나 상담 등을 제공하고 있다. 반대로 그에게 한국 기업과 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배달 사역인 우유·야쿠르트·반찬 배달이나 우편물 안부 확인 등에 대한 견해도 물었다. 잉글리시 디렉터는 “모범적이고 신선한 사례가 많다. 특히 우유배달과 우편물 안부 확인 사역은 영국 교회에 직접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숙자나 중독자 등 낯선 이들의 외로움을 돌보는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 사역도 주목할 만하다.
런던 목양교회(송기호 목사)는 외롭고 지낼 곳이 마땅치 않은 노숙자와 각종 중독자를 위해 교회 빈 공간 2곳을 남녀가 묵을 수 있는 방으로 개조했다. 방문 당시 각 방에는 2층 침대와 책상, 간이 옷장이 마련돼 있었다. 화장실에도 샤워실을 추가로 마련해 먹고 지내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했다. 이곳에는 여자 5명, 남자 4명이 지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이들 거주자들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집을 비워두고 교회로 들어와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교회 방문 당시 만난 사이먼 키넌(48)씨는 “정부에서 제공한 집이 있지만, 혼자 있자니 너무 외로워 교회에서 친한 교인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면서 “극도로 외로울 때가 있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의 온기”라고 말했다.
런던=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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