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하늘을 비추는 렌즈
뮤지컬 성극 ‘모세’를 보러 미국 랭커스터에 있는 밀레니엄 극장에 가던 길에 랭커스터 제일연합감리교회에 들렀다. 1885년 부활절 제물포항에 도착한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를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교회 앞에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중독자 치유 상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치유를 바라는 열망 때문인지 그들은 순해 보였다.
교회 문 앞에서 직원에게 교회를 방문한 이유를 밝히자 70대 자원봉사자인 캐서린이 나와 맞아주었다. 순후하고 따뜻한 인상의 캐서린은 아펜젤러가 이 교회에서 활동하고 결혼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면서 매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복도에는 아펜젤러를 기억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물이 가지런히 정리된 채 진열되어 있었고, 아펜젤러 기념 예배당에는 정동제일교회가 보낸 십자가와 아펜젤러 조형물이 그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문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캐서린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 곁에 서려고 노력해 온 교회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오래전 개혁교회 신자였던 아펜젤러가 감리교회에 입회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선택한 교회가 하고 있는 선한 사업은 내게 기쁨을 준다.” 개인적 성화는 물론이고 사회적 성화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 존 웨슬리의 가르침이었고, 랭커스터 제일연합감리교회는 지금까지도 그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 중독자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노숙인에 대한 급식봉사도 하고 있었다. 주방 시설과 식당을 보여주기 위해 위층으로 이동하던 중 캐서린은 젊은 교인이 많지 않아 노년층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 교회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큰 식당을 하던 이가 기증한 주방 시설은 훌륭했으며 식탁보가 깔린 식당은 매우 정갈했다. 찾아온 이들을 성심껏 환대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랭커스터 교회는 2019년부터 노숙인이 언제라도 찾아와 목욕과 세탁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노숙인이나 가난한 이는 ‘우리의 손님’으로 지칭되고 있다. 새로운 직업을 얻으려면 냄새나는 몸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고 말할 때 캐서린의 눈가에 눈물이 어렸다. 그 눈물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은 처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어야 할 이웃임을 보여주는 기호였다. 그 눈물은 하늘에 닿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용운은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시에서 먹을거리를 얻으러 이웃집에 갔다가 오히려 모욕을 당한 채 돌아서다가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라고 고백한다. 힘이 없는 사람이라 하여 함부로 능욕하려는 권력자에 대한 격분에 사로잡혔지만 다음 순간 그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라고 노래한다. 눈물은 때로는 하늘을 비추어주는 렌즈가 되는 법이다. 스스로 흘리는 눈물이 그러할진대 다른 이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새삼 말해 무엇하랴. 그 눈물은 슬픈 자기 연민이나 애상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애통이고 그런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다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끊임없이 경계선을 만들고 사람들 사이의 구획을 만들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 적응하는 동안 우리 영혼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분노에 잠식당한다.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깃들 자리는 점점 협소해진다. 위기에 처한 교회가 힘써 해야 할 일은 이 적대감 넘치는 땅에 환대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랭커스터 제일연합감리교회는 자기들이 그 지역사회의 닻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랭커스터의 닻이다”. 이것이 그들의 슬로건이다. 닻으로서의 교회는 지금까지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할 때 사람들을 출신, 배경, 지향에 따라 차별하지 않았거니와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다. 모든 사람에게 열린 교회야말로 그들이 꿈꾸는 교회의 모습이다. 월터 브루그만은 약한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곧 긍휼이라고 말한다. 애통을 거쳐 하나님 찬양으로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렇다면 교회는 생명의 문이 될 것이다.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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