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기 버리나" 비난만 하고 잊을건가…프랑스가 내놓은 제도 [김미애가 소리내다]

김미애 2023. 5. 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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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신생아가 적지 않다. 이를 막기 위한 보호출산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 2월 8일 본회의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던 날, 교육ㆍ사회ㆍ문화에 관한 대정부질문이 있었다. 질문자 11명 중 내 순서는 8번째였다. 이날은 모두가 예상한 대로 탄핵소추의 적절성과 청담동 술자리 의혹 등 여야 정치 공방이 이어졌고, 본회의장 분위기도 언쟁을 거듭하며 냉랭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보호출산제 도입의 필요성’이란 주제는 어떻게 보면 생뚱맞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질의 말미에 생명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 달라는 호소에 여야 의원들이 함께 “동참하겠다”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산모 신원 노출하지 않은 채 출산


보호출산제(익명출산)란 용어는 익숙하지 않다. 국회의원이 된 2020년 가을, 베이비박스 앞에서 수건에 쌓인 신생아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기사를 접한 후 더는 미룰 수 없어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산모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은 채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즉 익명출산제도를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에 있는 '베이비박스'가 열려 있는 모습. 나운채 기자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말 못 할 여러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 임산부들이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출산 후 아이를 직접 양육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엄연히 존재한다. 올해 1월, 강원도 고성에서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갓난아기가 엄동설한에 버려졌다. 지난해 1월에는 임신중절 약 복용 후 출산했지만 아기가 살아 있자 변기에 유기한 사건도 있었다.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한 해 복지예산 100조원이 넘는 대한민국에서 반복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2년) 동안 영아살해는 85건, 영아유기는 1185건 발생했다. 매년 8명이 넘는 아기들이 살해되고, 100명이 넘는 아기들이 유기되는 것이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다. 가해자를 파렴치한이라고 욕하고, 천륜을 저버렸다고 분노와 저주를 쏟아내면 금세 잊히고 일단락된다. 그리고 또 반복된다. 일반 국민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대응은 달라야 한다. 좋든 싫든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악마화하는 건 문제를 잠시 봉인하는 가장 손쉽고 간편한 방법이지만, 비겁한 접근법이다. 죽은 아이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뿐더러 앞으로 발생할 불행한 사건의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다.

보호출산이 최선은 아니다. 최선이 아니라고 해서 생명이 죽어가는 걸 방치하며 손 놓고 눈감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버젓이 발생하는 일이고, 실제로 베이비박스에는 한해 100~200명의 아기가 보호되고 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차선의 대책이라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호출산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산모 건강·자기결정권, 태아 생명권 조화


원치 않는 임신 등 위기갈등을 겪는 산모에게 건강권ㆍ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 안전한 의료환경에서 출산할 수 있게 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다. 2020년 12월 발의 후 2년이 훌쩍 넘도록 국회 논의는 법안소위(보건복지위원회) 3차례가 전부다. 그것마저 알맹이 빠진 논의였고 사실상 아무런 진전은 없었다. 국회도 정부도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아동정책 주요 과제에 보호출산제 도입(출생통보제와 병행 도입)이 포함되어 추진동력은 확보했다는 게 희망이라면 희망일 것이다.

생명은 고귀하다. 그것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살육이 용인되는 전쟁에서조차 생명의 탄생은 축복이고, 생명을 지키려고 온 힘을 기울여 기적을 만들어 낸다. 6ㆍ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23일, 1만4000명의 피난민을 싣고 흥남부두를 탈출해 25일 거제도에 도착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항해 과정에서 진통을 시작했지만, 의사가 있었을 리 만무했던 상황에서 주변에 있던 피난민 아주머니들이 정성껏 아기를 감싸고 받아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사랑과 노력 덕분에 한 생명이 지켜지고 성장할 수 있었다.

생명권은 누구나 보장받아 마땅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아기들은 울음으로밖에 의사를 표현할 수 없고, 집단화하여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린다. 이 땅의 가장 약자를 위해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생명을 지키는 일에 여야, 이념, 정치가 있을 수 없다.

보호출산제를 두고 일각에서는 손쉬운 아동 포기와 유기를 조장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이다. 법안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덮어 두고 비판하며 왜곡할 게 아니라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고 고쳐나가면 된다. 일도양단식의 접근은 건강한 논의를 방해할 뿐이다. 법안은 임신, 출산, 양육을 종합적으로 상담ㆍ지원할 수 있는 기관을 통해 원가정 양육을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보호출산 및 입양절차 등을 상담하고 법률적 지원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 매년 600여 건 익명출산


독일은 신뢰출산제도라는 이름으로 2014년 도입했고, 유럽 최고 출산율을 기록하는 프랑스에서는 1941년 익명출산제도를 도입하여 매년 약 600건의 익명출산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그 나라에서 논란도 있었다. 익명출산이 정상적인 가족생활을 이끌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며 지난 2012년 위헌심판이 청구됐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인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모(母)와 아동의 건강을 보호하고 아동 유기를 방지한다’는 취지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김미애 의원이 지난 2월 8일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영아유기 방지 대책 등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사진 김매애 의원 블로그]

지난해 3월 문재인 정부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등록 아동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을 발의했고, 1년 뒤 나도 의료계 의견을 반영하여 의료기관의 행정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의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산시스템을 이용하여 송부하는 방법으로 갈음할 수 있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소한의 아동 권익을 보호하자는 취지였지만 위기 임산부의 의료기관 회피와 의료기관 밖 출산을 유도할 것이라는 문제 제기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호출산제는 그에 대한 충분한 대안이 될 것이다.

“뉴스를 보며 가슴만 치지 마시고 대안을 좀 모색해 주십시오. 국회가 왜 있습니까? 목소리 큰 사람만 대변하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는 그 아기들을 위해서 우리 국회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대정부질문 발언 시간이 종료되고 마이크가 중단됐지만 끝까지 했던 말이다.

셀 수도 없는 저출생 대책에 앞서 태어난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입법부작위 상태를 멈추고 여야가 뜻을 모아 함께했으면 한다. 앞으로 태어날 모든 아이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었으면 한다.

김미애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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