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나무는 참 가볍고도 무겁고도 질기구나
요 근래 몇 건의 해외 체류 일정을 취소함에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나 하면 아니다. 여행용 트렁크 바퀴가 고장이 나 새로 하나 사야 하는 번거로움을 아주 큰일로 받아들이던 차였다. 기질상 여행을 싫어할 리 있겠는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거기 주민인가 싶을 정도로 한 손에 가장 맛난 커피를, 또 한 손에 현지 신문을 사서 쥐기부터 하는 놀라운 적응력의 대명사가 나 아니던가.
그나저나 신문은 왜? 에이, 설마 내가 읽으려 함일까. 글자인데 그림처럼 느낌 알게 하는 신문‘지(紙)’는 특히 여행지에서 나 같은 쇼핑 중독자에게 천군만마다. 하물며 크리스털 화채 그릇이라 한들 그 생김대로 포장을 가능케 하는 유연성은 가격 대비 으뜸이다. 신문‘지’라는 나무는 가벼운 한편 어찌 이리 무거울까.
살고 있는 집 꼭대기에 손바닥만한 옥상이 있어 거기 장미나무를 심은 지 햇수로 5년째다. 그사이 는 재주라면 엿장사도 아니면서 가위질이라는 거, 그사이 는 시야라면 처음 올라온 1번 꽃이 아주 작은 봉오리일 때 그걸 잘라주니 다른 작은 꽃들이 고루 아름답게 피어 번지더라는 눈. 그간 톡톡히 배운 게 있다면 꽃 져 지저분한 자리를 비로 쓰는 일보다 꽃 줘 말쑥한 자리를 뒷짐지고 바라보는 게 훨씬 한갓지다는 사실.
친구가 생일선물로 내가 키운 장미 몇 송이 달라고 했다. 이상하지, 선생님 찾아간 학부형도 아닌데 그 앞에서 설명 아닌 변명을 자꾸 늘어놓는 나였다. 약을 안 쳤더니 꽃이 오래 안 가, 비료를 안 줬더니 꽃이 크질 못 해. 야 저기 산에 있는 장미가 무슨 양념을 쳐서 예쁘냐? 장미는 장미지.
그런데 이거 독일 신문이잖아. 친구가 둘둘 말린 신문지를 둘둘 펴며 말했다. 5년 전 뮌스터에 살던 허수경 시인의 수목장이 있던 날, 거기 나무들의 무덤 근처 화원에서 꽃집 주인이 신문지에 장미를 말던 기억. 신문‘지’라는 나무는 가벼운 한편 이리 질기기도 한 걸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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