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우울증 소녀를 노리는 사람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요즘 연일 이름이 오르내리는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우울갤)’ 얘기다. 이름처럼 우울한 사람들이 익명성에 기대어 교류하는 우울갤은 국내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포털 디시인사이드에서도 방문객 상위 1%의 인기 게시판이다. 지난 3월 방문자만 800만 명에 달했다(시밀러웹 집계).
하필 어린이날 새벽이었다. 우울갤에서 만난 15, 17세 소녀 두 명이 서울 한남대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구조됐다. 두 소녀는 과정을 소셜미디어로 생중계했고, 현장에는 “이들을 말리러 왔다”는 성인 남성 한 명이 있었다. 지난달 16일 우울갤 이용자인 여고생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투신 사망해 충격을 안긴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다. 그때도 과정이 소셜미디어로 생중계됐고, 20대 남성이 동행했다. 이 20대 남성은 자살방조와 자살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여고생이 우울갤에서 성착취를 당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 ‘진화된 n번방’ 의심 우울증 갤러리
자살방조, 미성년 성착취 의혹까지
엄중수사, 강력처벌로 재발 막아야
」
경찰은 이번에 존재가 드러난 우울갤 오프 모임인 ‘신대방팸’의 20대 남성 4명을 미성년자 의제 강간, 폭행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우울갤의 또 다른 오프 모임인 ‘신림팸’의 핵심 인물인 20대 여성에게는 지난달 징역형이 선고됐다. 미성년 여성을 포함한 우울갤 이용자들에게 술, 수면유도제, 마약 등을 권유한 혐의다. 여학생 성착취 의혹도 받는다.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여고생 투신 사건 직후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는 성착취, 자살조장, 마약 투약 등 최악의 조합이 다 모인 진화된 n번방 사건”이라고 단언했는데, 과장이 아니었음이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이 교수는 “3년 전 n번방만 해도 마약이 이렇게 일반화되지 않았고, 자살이 이렇게 방치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결합한 형태로 우울증 갤러리에서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며 엄중한 수사를 촉구했다. 우울갤 주 이용자가 10대 여성과 20대 남성이며, 정신적으로 취약한 10대 여성을 노리는 ‘패션(가짜) 우울증’ 이용자가 상당수라는 내부 증언도 나왔다. 우울갤의 미성년자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올 1, 2월에만 4건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디시인사이드는 경찰의 우울갤 임시 폐쇄 요청을 거부하고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효율성은 미지수다. 폐쇄가 능사는 아니지만 철저한 익명성을 기반으로 덩치를 키워온 디시인사이드 갤러리가 예의 ‘배설’을 넘어 범죄나 자살방조의 온상이 되고 있다면 사회적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한편 최근 여성신문은 우울갤 외에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신질환을 겪는 여성을 ‘멘헤라‘라고 부르며 그루밍(길들이기) 성폭력을 모의하는 글이 다수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멘헤라(メンヘラ)는 ‘멘털 헬스가 좋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 일본의 인터넷 신조어다. 가정폭력이나 집단괴롭힘, 부모의 이혼 등으로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애정 결핍에 빠진 젊은 여성들을 성적으로 소비하기 쉬운 대상이나 성범죄의 타깃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살방조 등이 죄의식 없이 일어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우울증 사냥꾼’들에 의한 성착취에 노출되거나 더 큰 범죄에 끌려 들어갈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2021년 10대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7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특히 12~15세 자살률이 2016년보다 5배 가까이 폭증했다. 2019년 5만4000명이던 우울증ㆍ불안장애 진료 아동ㆍ청소년도 2022년 상반기에만 4만6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우울증 진료를 받은 10대 여성은 10대 남성보다 1.7배 많았다(2021년). 이 자체도 충격적인데, 학대나 학폭 등으로 상처를 입고 집이나 학교라는 보호망도 없는 곳에서 누군가 고통을 나눌 사람을 찾다가 ‘우울증 소녀 사냥꾼’의 레이더에 포착된다니, 심지어 여자 초등생까지 제물이 된다니. 가정의 달 5월이 무색하게 우울한, 아니 참담한 일이다.
글=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뚝섬 130억 펜트하우스 현금 매수자, 전지현이었다 | 중앙일보
- 백지연 전 앵커, 정몽원 HL그룹 회장과 사돈 맺는다 | 중앙일보
- "중·러 견제 위해 미군 있어야" DJ 놀래킨 김정일 뜻밖 발언 | 중앙일보
- 21세기 한국서···이런 '누더기 열차' 19대 운행 중입니다 [사진] | 중앙일보
- "27년전 성추행"…트럼프 성비위 法 첫 인정, 66억 배상 판결 | 중앙일보
- "한·미·일 안보협력 찬성" 72.2%…호남서도 57.8% 지지 [尹1년 중앙일보 여론조사] | 중앙일보
- "구조금 한 푼 못 받아" 엄마 피살 뒤 홀로 남은 중1 딸의 비극 [두 번째 고통①] | 중앙일보
- 90만원 빌리니, 이자가 130만원? 대부업 흔들리자 생긴 일 | 중앙일보
- '응애' 타령만 할건가...꿀벌 200억마리 폐사 막을 '꿀나무 해법'[영상] | 중앙일보
- 경기 광주서 남녀 4명 차 안에서 사망…폰 4개 부서져 있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