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을 불태우는 맛, 여태 이걸 몰랐다
[도희선 기자]
S에게 놀림을 받았다. 어떻게 머위를 모를 수 있냐고. 사실이었다. 머위를 먹는 법은 물론 맛도 생김새도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는 건 그 대상을 알면서 끌리는 마음이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여태껏 머위의 존재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내게 머위는 생소한 풀과 다름없었다. 그날 이전까지는.
얼마 전 S가 운영하는 북카페에 갔다. 그녀는 정원에 자라는 어린 머위를 가리키며 지금 한창 맛있을 때라고 가져가겠냐 물었다. 물욕이 강하다 보니 욕심은 나지만 어떻게 먹을지 몰라 요리법을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정말로 머위를 먹어본 적이 없냐고 했다. 나는 머위를 사본 적도, 요리해 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하하하 큰소리로 웃었다. 어릴 적 시골서도 살았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어떻게 머위를 모르냐며 놀렸다. 이왕 놀림까지 받았으니 머위 맛은 모르지만 얻어가기로 했다.
▲ 머위잎 한상 데친 머위 잎과 머위 무침 |
ⓒ 도희선 |
머위를 살짝 데쳐 저녁 밥상에 올렸다. 나물로 무치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는 어린 머위를 쌈으로 먹을 생각이었다. 어서 와요 머윗잎쌈은 처음이지.
머위잎 한 장을 넓게 펼쳐 밥 한 숟갈 올리고 쌈장 넣어 입안 가득 머금으니 쌉싸래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아 이 맛으로 먹는구나. 처음 먹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아직 어린잎이라 그런지 적당히 쌉싸름해서 입맛이 확 사는 것 같았다. 아니 참 요 몇 년간 입맛이 없어 본 지가 없으니 산다는 말은 틀렸다. 식욕을 불태우는 맛이다.
어릴 때는 입이 짧았다. 육류는 물론 추어탕이나 장어도 싫어했고 버섯이나 향이 강한 채소도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지만 산나물이나 들나물 종류를 먹어 본 기억도 별로 없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는 다른 집 아주머니들처럼 봄이면 산이나 들로 나물을 뜯으러 갈 수 없었다. 밥상에 오르는 채소는 주로 텃밭에서 자라는 것들이었다. 정구지(부추), 겨울초, 시금치, 상추, 오이, 가지 등 계절 따라 텃밭에서 나는 채소들이 김치나 나물 혹은 생으로 상위에 올랐다.
결혼 후 요리를 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재료는 사지 않았다. 나물거리도 마찬가지다. 쓴맛 나는 나물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 없었고 몸에 좋다한들 입에 쓰니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 쌉싸름한 맛을 좋아하게 됐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몇 년 전부터 식당에서 찬으로 나오는 취나물, 냉이, 부지깽이, 돌나물, 엉게 순 같은 제철 봄나물을 먹었다. 쌉싸름한 맛과 특유의 풍미가 매력적이었다. 이 좋은 걸 왜 여태 몰랐나 후회했다. 나이가 들수록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서 묘한 여운을 남겼고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생각났다.
쌉싸름하다는 조금 쓴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쓴맛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쓰다고만 느꼈을 땐 먹기가 불편했었다. 젊을 적 쓰게만 느껴졌던 맛이 이제 기분 좋은 쌉싸름함으로 바뀌었다. 봄을 담은 나물 한 접시는 그 쌉싸래한 맛으로 나른해진 몸을 깨운다. 겨우내 품고 있던 성분이 약이 되어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하고 기운을 북돋워준다.
▲ 머위 뿌리 채 얻어 온 머위 |
ⓒ 도희선 |
봄나물의 쌉싸름한 맛은 식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본능이라고 한다. 겨우내 굶주렸던 초식동물에게서 생명을 지키기 위함이다. 언 땅에서 싹을 틔워 어리고 순한 잎을 세상에 내놓으며 살아남기 위해 약간의 독성과 향으로 자신을 지켜낸다. 식물이 스스로를 지켜 내기 위한 쓴맛과 향이 인간에게는 오히려 움츠렸던 몸을 각성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봄나물은 생으로 먹지 않고 살짝 데쳐 독성을 없애고 먹는다. 하지만 쓴맛 때문에 봄나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쌉싸름한 맛 때문에 즐겨 찾고. 누군가는 쓴맛으로 느껴져 고개를 가로젓는다. 같은 맛이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어디 입맛만 그럴까
평탄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살면서 한두 번의 고비는 있게 마련이다. 인생의 굽이굽이 마주하는 시련은 누군가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듯한 쓰나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떤 이는 오히려 거울삼아 역경을 딛고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쓴 맛을 싫어하던 나 역시 세월이 흘러 쌉싸름한 맛의 진가를 알게 된 것처럼. 인생의 쓴맛들이 약효를 가진 쌉싸름한 맛이 되어 줄지 소태 같다고 여겨 못 먹고 버릴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다.
안 먹어본 사람은 몰라도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머위에도 통했다. 머위 맛을 잊지 못해 며칠 후 마트에 가서 머위를 찾았다. 지난번에 먹어 보지 못한 머위 나물 맛도 궁금하고 자꾸만 입에서 맴돌던 머위잎 쌈도 다시 먹고 싶었다. 잎이 좀 큰 것은 쌈으로, 좀 더 보들보들하고 연한 잎은 나물로 하려고 두 봉지를 샀다.
살짝 데친 머위잎에 집된장을 넣고 통깨와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조물조물 무쳐내니 짭조름하고 구수한 된장과 쌉싸름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역시 산나물은 간장보다 된장무침이 맛있다. 함께 산 엄나무 순도 살짝 데쳐 초고추장과 함께 놓는다. 소박한 봄나물 한상이 차려졌다. 땅과 계절이 주는 고마운 선물 덕에 건강한 밥상을 받고 보니 행복이 별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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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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