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노키즈존 금지 조례안, 착잡합니다

박순우 2023. 5. 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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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카페 운영자가 본 노키즈존... 조례안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

[박순우 기자]

"노키즈존입니다."

아이들이 노키즈존이라는 네 글자를 처음 알게 된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되도록 늦게 알았으면 하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노키즈존이었다. 스스로가 차별받고 있음을, 배제당하고 있음을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몰랐으면 했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무엇이든 해도 되고, 어떤 꿈도 꿀 수 있는, 열린 곳이기를 바랐다. 이런 내 꿈은 저 한 마디로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엄마 노키즈존이 뭐야?"

호기심이 많은 첫째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뜻부터 물어왔다. 머뭇거리다 결국 아이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노키즈존은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을 말해."
"카페에 우리가 왜 못 들어가? 그거 차별 아니야?"

평소 차별과 차이에 대해 자주 구분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아이 입에서는 대번에 차별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차별... 맞아."

나는 순순히 수긍을 했다. 

"나빠. 왜 아이들을 못 들어가게 하는 거야."

나는 차마 너희들이 잠재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라서 거부당하는 거라는 말을 더할 수가 없었다.

전국서 노키즈존 비율 가장 높은 제주도
 
 제주 전경
ⓒ 언스플래쉬
제주에서 십 년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5~6년 전쯤 우후죽순 노키즈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물으니 부모들이 아이들을 잘 살피지 않는다, 아이가 소품을 망가뜨렸다 등 대동소이한 이유가 튀어나왔다.

노키즈존을 하지 않는 게 어리석은 건가 싶을 만큼 많은 곳이 노키즈존으로 바뀌어 갔다. 끝까지 노키즈존을 하지 않고 버틴 건, 내 아이를 키우면서 차마 남의 아이를 거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 아이가 거부당하는 것과 똑같이 여겨졌기에.

동시에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다. 아이가 조금만 칭얼거려도 안고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보호자, 음료를 원샷하듯 허겁지겁 마시고 아이와 함께 자리를 뜨는 사람들,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눈치를 주며 옆 자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얼굴들. 

수년간 장사를 해보니 세상에는 개념 없는 보호자도 많았지만, 개념을 완벽히 장착한 나머지 돈을 냈음에도 제대로 시공간을 누리지 못하는 보호자 역시 많았다. 가뜩이나 아이 키우기 어려운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매순간 고군분투하는데, 마음 편히 밥도 차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내가 편하자고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노키즈존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지난 2월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가 개최한 '노키즈존 금지 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제주연구원 사회복지연구센터의 김정득 연구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도내 노키즈존 운영 현황을 소개했다.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검색되는 전국 노키즈존은 모두 542곳으로, 이중 78곳이 제주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 명당 영업장 수로 환산하면 제주의 노키즈존은 11.56곳으로, 타 지역에 비해 최소 5배에서 최대 20배 가까이 많다. 노키즈존의 경우 대놓고 노키즈존임을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어,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에는 유독 어린 자녀를 데리고 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많다. 어린아이들이 갑갑한 비행기 안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한두 시간 정도. 제주가 이들이 선택하기에 알맞은 관광지인 것이다. 하지만 위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는 이들에게 그리 친절한 곳이 아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거부당해, 한참 먹고 쉴 장소를 찾아 헤맸다는 사례는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인데도 해외만큼 여행 경비가 많이 든다고 쓴소리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노키즈존까지 많다고 알려지는 게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무척 속상하다. 제주 전체가 관광객들을 호구로 보거나 아동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땅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하다.

문제가 생기면 배제? 이건 해결책이 아니다
 
 2022년 5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어린이날 100주년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노키즈존 나빠요, 차별금지법 좋아요’라고 적힌 글씨에 색칠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이런 점을 우려했는지 제주에서 아동 출입제한업소(노키즈존) 지정 금지 조례안이 입법예고됐다. 제주도의회는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송창권 의원이 '제주도 아동 출입제한업소 지정 금지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조례안에는 도지사가 필요한 경우 아동 차별과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실태조사와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아동 제한업소 지정을 하지 않도록 권고 및 계도하도록 되어있다. 영업장 내에서 아동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도적 지원을 하고, 보호자 교육과 인식개선 활동도 강화하도록 했다.

노키즈존을 반대하는 입장인데도, 이를 조례로 금지하려는 시도에 적잖이 놀랐다. 조례안이 강제성은 없지만 통과될 경우 전국 최초라는 상징성이 있기에, 갑론을박이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노키즈존을 아동 차별보다 영업자의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노키즈존이 아동에 대한 차별행위라고 지적했음에도.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2019년 한국 정부의 사전 심의에서 노키즈존 등 어린이, 청소년 인권 실태에 대해 "전반적으로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평가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아동의 권리보다는 영업자의 권리를 더 우위에 놓는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자영업자라는 충돌되는 두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서 노키즈존 문제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배제하고 보는 건 바람직한 해결 방안일까. 

인간은 경험을 통해 가장 많은 걸 배운다. 공공질서와 에티켓을 배우려면 아이들은 경험해야 한다. 타인과 함께 먹고 즐기는 시공간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 세상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들에게 노키즈존은 어떤 의미로 새겨질까. 공공연하게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십 년째 장사를 하면서 느낀 건, 어린이들만 영업장에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보다 훨씬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하인 대하듯 영업자를 하대하는 손님들, 시설을 함부로 이용하고 타인에게 불편을 끼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을 수없이 보았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손님이 진상인지 아닌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진상만 있는 건 아니다. 친절한 손님도 참 많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잘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도 있지만, 어른보다도 훨씬 매너 있는 어린이도 정말 많다. 이런 상황에서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인 문제 손님으로 찍혀 거부당하는 건 옳은 일일까.

조례안 없이도 어린이에게 호의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 한 명도 낳아 키우기 어렵다는 나라에서 용기 있게 자식을 낳은 사람들이 이들의 보호자다.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감성 가득한 공간에서의 여유를 잠시라도 느끼고 싶어 나온 이들이다.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한 동네가, 한 나라가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좀 더 너그러이 수용할 수는 없을까.

어린이를 거부하는 영업장이 장애인이나 노인에게 친절할 리 없다. 노키즈존을 줄여가는 건,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은 결코 한 사람의 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회는 결국 수많은 개개인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어린이는 배제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마땅히 함께 해야 하는 존재다. 잠재적인 문제 손님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소중한 미래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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