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 위기감 여전”…주식보다 채권 사라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5. 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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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대 리서치 콘퍼런스 ‘MIC’에서 본 투자 혜안은

“유럽은 박물관이고, 일본은 양로원이다. 중국은 감옥이고, 비트코인은 실험이다.”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이 지난 4월 25~27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모닝스타 인베스트먼트 콘퍼런스(MIC·Morningstar Investment Conference)’에서 키노트 연사로 참여해 한 말이다. 미국 경제가 불안하지만 여전히 강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언급하며, 주요 국가와 비트코인을 이렇게 비유했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2023년 세계 경제 역시 미국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서다.

1984년 시카고에서 설립된 모닝스타는 전 세계 29개국에 네트워크를 둔 글로벌 최대 독립 리서치이자 펀드 평가사다. 모닝스타가 주최하는 MIC는 미국 내 최대 투자 콘퍼런스로 꼽힌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주요 운용사와 증권사가 참석해 향후 글로벌 경제를 전망한다. 이번 행사에는 금융사 등 105곳 기업에서 2840여명이 자리를 메웠다. 행사 중 진행된 세션은 80여개에 달했다.

국내 미디어로는 유일하게 매경이코노미가 참석해 투자 인사이트를 들어봤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이 4월 26일 시카고에서 열린 MIC에서 “경기 침체 없이는 미국이 2%대 인플레이션으로 내려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1) 여전히 험로를 걷는 美 경제

“2% 인플레이션 복귀, 경기 침체 불러”

“미국은 경기 침체 없이 2% 인플레이션 수준으로 복귀하는 게 불가능하다.”

서머스 전 장관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전 세계 인플레이션 국면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인물이다. 그는 MIC에서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2%를 적정 인플레이션 수준으로 상정해놓는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다 보면 결국 경기 침체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팬데믹 기간 재정 부양책과 저금리 정책이 미국을 물가 상승률 2% 국가에서 5% 국가로 만들었다”며 “5%대 임금 상승률, 생산성 둔화 등으로 상당한 경기 둔화 없이는 2% 인플레이션 목표치까지 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방준비제도(Fed)가 너무 늦게 행동해 신뢰를 잃었다”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머스 전 장관은 최근 이런 시각을 수차례 표명했다. 그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도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고, Fed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 수순에 가까워졌다”고 내다봤다. 3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 올랐다. 2월(6%) 대비로는 상승폭이 줄었다. 이런 소비자물가 상승률 하락 추세를 고려한다 해도, 2% 수준으로 내리기까지는 아직 힘든 여정이 남았다는 게 서머스 전 장관의 판단이다.

실제 미국 자산 시장은 불안한 모습이 감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시그니처은행을 거쳐 퍼스트리퍼블릭은행까지 미국 내 지역 은행은 큰 위기를 맞았다. 특히 3월 말 기준 자산이 2330억달러(약 312조4500억원)나 되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 파산은 충격이었다. JP모건체이스은행이 5월 1일(현지 시간) 예금과 자산을 인수하기로 하며 급한 불은 껐지만 지역 은행 위기는 진행 중이다. MIC에 키노트 연사로 참석한 ‘기업가치 평가의 아버지’ 애스워드 다모다란(Aswath Damodaran) 뉴욕대 스턴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은행의 가치는 정말 어두운 단계”라며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사태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다음 은행이 어디가 될지 시장이 주목할 것”이라고 밝혔다.

(2) 상업용 부동산도 위태

그래도 달러 파워…美 주가 12% 저평가

서머스 전 장관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경기 불안과 재택근무 추세로 상업용 부동산 가치도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과 같은 견해다. 찰리 멍거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미국 은행들은 상업용 부동산 부실 대출에 대거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투자의 전설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오른팔’이자 버크셔해서웨이의 ‘2인자’다.

상업용 부동산은 최근 미국 금융권 최대 뇌관 중 하나로 꼽힌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늘고 근래 구조조정이 증가하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악성 대출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미국은 상업용 부동산 가치 하락 → 건전성 우려에 따른 중소 은행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회수 → 상업용 부동산 가치 추가 하락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우려한다. 모건스탠리는 사무실과 소매 부동산 가치가 최대 40%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서머스 전 장관이 미국 경제가 위태롭다고 단정 짓는 건 아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세계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 미국의 손을 잡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미국 기업 시가총액은 다른 나라 총합의 60%에 달하고,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미국 경제의 힘은 여전히 탄탄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특히 달러 보유는 좋은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MIC에 참석한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 자산 시장이 대체로 저평가 국면이라는 데 동의했다. 데이브 세카라(Dave Sekera) 모닝스타 미국 시장 담당 투자전략가는 ‘(미국) 주식은 저평가됐지만, 거친 길이 놓여 있다’는 보고서에서 “적정 가치 측면에서 미국 주식은 12% 싸다”고 설명했다. 그는 2분기 매수해야 할 저평가 주식으로 우버, 캘로그, Discover Financial Services, Albemarle 등 4종목을 꼽기도 했다.

다모다란 교수는 미국 주식 시장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 대형 성장주 모멘텀이 살아 있다고 본다. 그의 전공인 ‘밸류에이션’과 엮어 설명하며 “숫자(재무)뿐 아니라 스토리가 얹힌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 ‘위닝스톡’ 선택, 버핏도 어렵다

인덱스펀드·다이렉트 인덱싱 주목

“심지어 워런 버핏조차 종목을 고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워런 버핏 회장은 손꼽히는 투자 대가다. 그러나 그는 지난 2월 주주서한에서 수익을 내주는 주식, ‘위닝스톡’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토로했다. 최근 5년에 한 번 정도인 약 12번의 좋은 결정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줬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매일 새로운 종목을 고르는 게 아니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종목을 매수한 뒤 오래 기다리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적극적으로 종목을 찾는 액티브펀드 수익률은 어땠을까. 모닝스타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액티브펀드 매니저의 50% 이상이 벤치마크 대비 높은 성과를 낸 자산은 미국 부동산이 유일하다. 액티브 매니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반 이상은 인덱스 상품을 이기기 힘들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벤치마크를 능가하기 힘든 이유로 소수 주식에서 큰 수익이 나온다는 점을 꼽았다. 만약 액티브 매니저가 그 종목을 담지 않았다면 지수를 이길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국내 주식에 비유하면, 올해 ‘에코프로 삼형제’를 담지 않은 매니저가 벤치마크 대비 낮은 수익률을 거둘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모닝스타는 지난 10년간 S&P500에서 상위 10% 성과를 낸 주식을 놓치면 연간 성과는 12.6%에서 3.9%로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헨드릭 베셈바인더(Hedrik Bessembinder) 애리조나주립대 경영대 교수에 따르면, 1926년 이후 단 86개 종목이 주식 시장 전체 부(富)의 절반을 차지했다. 또한 상위권 성과를 낸 1000개 주식이 모든 부의 원천이었다. 결국 실적이 ‘가장’ 좋은 주식을 보유하지 않으면 지수를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MIC에서도 인덱스펀드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워런 버핏이 “S&P500지수를 낮은 가격에 꾸준히 샀던 것이 좋은 성과를 낸 비결”이라고 언급한 것과 맥을 함께 한다. 인덱스를 담아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한편, MIC에서 ‘다이렉트 인덱싱(Direct Indexing)’ 상품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이렉트 인덱싱은 투자자 개개인이 자신의 투자 목적이나 성향, 생애주기에 맞게 맞춤형 투자지수를 구성하고, 자신의 계좌에서 개별 종목 단위로 직접 운용하는 서비스다. ETF가 금융사가 이미 만들어놓은 ‘기성품’이라면, 다이렉트 인덱싱은 투자자가 자신에 맞게 딱 설계한 ‘나만의 ETF’라고 보면 된다. 최근 주가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에 진입하면서 미국에서도 다이렉트 인덱싱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사례가 늘었다.

(4) 60·40 포트폴리오가 정답일까

지난해 주식·채권 ‘폭망’…올해는?

월가에서는 ‘주식 60%, 채권 40%’의 분산 투자가 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MIC에서는 이를 두고 논쟁이 치열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22년은 주식과 채권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추락한 특이한(?) 해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글로벌 운용사인 뱅가드의 조엘 딕슨(Joel Dickson) 글로벌책임자는 ‘2022년을 비정상적인 해’라고 규정하며, 향후 10년 동안은 여전히 60·40 포트폴리오는 장기적인 수익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미국 증시가 흔들리더라도 높은 금리로 채권 수익률이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블랙록의 글로벌 자산배분 팀장 필립 그린(Philip Green) 의견은 달랐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0·40 포트폴리오가 연평균 약 7.5%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블랙록은 이는 다소 아쉬운 수준으로 위험 조정 대비 수익률로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패널 캐서린 르그로우(Catherine LeGraw) GMO 자산담당 전문가는 60·40 전략은 “죽었다”며 전통적인 채권을 대신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동화 부채나 구조화 상품 등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60%에 해당하는 주식 포트폴리오 역시 금리에 덜 민감한 주식으로 옮기는 등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식과 채권, 두 가지 핵심 자산을 놓고 본다면 채권 투자에 좀 더 무게가 실렸다. 월가에는 ‘연준과 싸우지 마라(Don’t fight the Fed)’는 오랜 격언이 있다. 연준의 금리나 물가 안정 정책과 맞서 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금리가 높고, 장기적으로 인하 가능성이 높을 때 채권 수익이 안정적이고 높을 수 있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인 핌코(PIMCO)는 연준이 속도는 빠르지 않더라도 ‘완화’ 기조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 인상은 5월을 마지막으로 끝날 것이라는 게 핌코 분석이다. 크리스토퍼 쿼그리아타(Christopher Quagliata) 핌코 매니저는 ‘깨진 시장, 강한 채권’이라는 세션 발표를 통해 “지난해 주식과 채권 수익률이 함께 안 좋았다”며 “올해는 주식이 여전히 고평가 국면인 반면, 채권 투자는 적기”라고 짚었다. 채권 트레이딩(trading)보다는 일드(yield) 수익률에 집중한 투자가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회사채보다는 물가연동국채(TIPS)나 국공채를 추천했다.

실제 세계 채권 시장 수익이 저점을 찍은 지난해 10월 21일을 기준(100)으로 놓고 세계 주요 채권 시장의 지수 움직임을 비교하면, 채권은 전반적으로 강세 흐름을 보였다. 단위가 다른 채권 시장 간 지수를 비교하기 위해 기준 시점을 동일하게 100으로 두는 재지수화(Re-Indexing) 과정을 거친 결과, 주요 채권지수는 폐쇄적인 시장과 중앙은행의 강력한 통제 속에 있는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 기준점인 100을 크게 뛰어넘었다. 세계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 단계라는 기대와 함께 채권 금리가 고점을 확인하고, 채권 총수익률은 전반적으로 회복되는 양상을 보인 셈이다.

미국 최대 투자 콘퍼런스 중 하나인 MIC에서는 미국 주식이 저평가됐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다만 주식보다는 금리 인하를 염두에 둔 채권 투자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짙었다. 사진은 행사장에서 열린 한 세션에 참석한 투자자들(위). 기업가치 평가의 최고 권위자인 애스워드 다모다란 뉴욕대 스턴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ESG로 아직 명쾌하게 기업가치를 분석하기 어렵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이어갔다. 사진은 MIC에서 토론하는 다모다란 교수(아래).
(5) ‘가치 평가’ 아버지, ESG는 ‘안티’

“ESG가 기업가치 높일까” 회의적

“여러분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이슈를 제시해보라. ESG에서 S는 그저 끼워 넣은 수준에 불과하다.”

다모다란 교수는 ESG 투자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자로 유명하다. 이번 MIC에서도 ESG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는 “이론적 수준의 ESG 개념을 없애고 E(환경), S(사회), G(지배구조)를 완전히 분리해 달성 가능한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모다란 교수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인정했다. 다만,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작업을 ‘ESG’라는 이름 아래 묶어 버리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ESG가 실제로 측정되는지 묻고 싶다. 지난 14년 동안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기후변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는 화석연료 관련 주식이 더 평가받았다. 관점이 바뀐 것이다. 이제 ESG가 진짜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는 ESG 투자는 제약 조건이 많다고 했다. 환경 피해를 유발하는 기업 등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최적의 수익률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설명이다. 만약 ESG 투자로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대의를 추구하는 투자자의 선함도 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선(善)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회사가 좋고 나쁜지 합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ESG 점수는 사실상 의미를 가질 수 없고, 서비스와 ESG 점수 사이의 상관관계도 있을 수 없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8호 (2023.05.10~2023.05.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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