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는 초격차, 시스템은 신격차” 정부, 반도체 로드맵 띄운다
한국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초격차’를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약세인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선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기술을 제시해 ‘신격차’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나왔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9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반도체 미래기술 로드맵’ 발표식에 이런 내용이 담긴 반도체 구상을 내놨다. 이날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발족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이 앞으로 퍼스트무버로 역할 하려면 정부와 산업계·학계·연구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소통해야 한다”며 “기업은 가까운 미래에 양산이 담보되는 기술을,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소재·소자·공정·설계·시스템 등 전반 기술에 대한 투자로 (신기술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앞서 향후 5년간 기업이 340조원을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현재 3%대인 시스템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2030년 10%로, 30%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화율을 50%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관련 인력도 향후 10년간 15만 명 이상 육성할 계획이다.
이날 발표한 로드맵엔 향후 10년간 소자·설계·공정 등 3개 분야에서 총 79개의 세부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방안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를 위해 차세대 소자를 탐색하고, 지능형 반도체 시장 선점 및 선도국 추격을 위한 설계 기술을 확보하며,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정 연구를 확대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과기부는 또 전문인력 확보 지원을 위해 한시적으로 대학의 입학 정원을 늘려주는 계약정원제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이번 로드맵은 지난해 5월부터 산‧학‧연‧관이 함께 참여해 계획을 세운 것”이라며 “국내 첫 반도체 기술 개발 청사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반도체 관련 최신 기술 동향을 발표했다. 김동원 삼성전자 펠로우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MBCFET 같은 신기술을 발전시키겠다. 이런 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공지능(AI) 하이퍼 커넥티비티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최익수 SK하이닉스 부사장은 “똑똑한 AI가 나오면서 똑똑한 메모리가 필요해졌고, 대표적으로 고성능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출시했다. 앞으로도 끊임없는 메모리 기술 혁신이 필요할 것”이라며 “프로세싱 인 메모리(PIM)·컴퓨팅 인 메모리(CIM) 등 혁신적인 신규 메모리를 통해 가치를 높이고 활용 범위를 확대해나가겠다”고 했다.
“기업 잘하는데 왜 정부 나서나” 일각 지적도
이날 발족한 협의체엔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비롯해 한국반도체산업협회·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14개 산‧학‧연‧관이 참여했다. 이들은 정부의 반도체 연구개발(R&D) 정책‧사업에 상시적으로 민간의 수요와 의견을 반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가 나서 특정 산업의 로드맵을 발표하는 게 이례적이고, 디테일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민간 기업이 앞서나가고 있는 분야인데 정부가 키를 잡고 산업을 끌고 나가려는 게 어색하고,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어 보인다”며 “기업 입장에선 차라리 정부가 이런 지원책을 펼치겠다고 세부 지원책을 제시하는 게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는 “반도체 기술 분야가 넓은데,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를 기반으로 선택과 집중해 미래 기술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특히 연구자들에게도 R&D 투입 분야를 제시해 국가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방향을 제시한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민관 협의체에 대해선 “대학들이 과거와 달리 기업보다 기술력이 떨어진 상황이다. 또 AI 반도체는 공정 기술만으론 어렵고 대학의 기초연구 역량이 필요한데, 민관이 함께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며 “미국에서 국가반도체기술센터(NSTC)를 만들고 있는데, ‘한국판 NSTC’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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