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파운드리 연평균 15% 성장했지만…TSMC는 더 세졌다, 왜

박해리, 고석현, 김수민 2023. 5. 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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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지난해 208억달러(약27조6440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전경. 연합뉴스


“요즘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고객이 부쩍 늘었다. TSMC 등 대만 기업이 중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와 거래하기 꺼려하면서 (경쟁사인) 삼성전자로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 파운드리 영업 담당자들의 중국 체류도 덩달아 늘었다고 한다.”

반도체 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자율주행 자동차용 칩, 서버용 칩 등 설계도를 들고 삼성 파운드리를 찾고 중국 팹리스가 증가세”라고 말했다.

화웨이처럼 미국의 ‘직접 제재’ 리스트 기업이 아니면 얼마든지 누구든 중국 기업과 거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수주량이 충분한 TSMC 등으로선 굳이 중국과 갈등 중인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가며 영업을 확대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였다. 이 틈새를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공략하고 있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 파운드리의 성장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지난해 208억 달러(약 27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매출이 2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스템LSI사업부에서 독립한 후 첫 사업연도인 2018년과 비교해 연평균 15.6% 성장했다.〈그래픽 참조〉

삼성 파운드리는 초기부터 중국 업체와 적극적으로 거래했다. 비트코인 채굴 등에 사용하는 주문형 반도체(ASIC)를 개발해 중국 가상화폐 채굴 업체에 공급했다. 선단 공정인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에서도 중국의 암호화폐 채굴 칩 설계 업체와 손을 잡았다. 최근에는 중국 사물지능융합기술(AIoT) 기업으로부터 1억 달러(약 1300억원)어치 계약을 맺었다.

물론 미국계 빅테크 기업의 주문도 꾸준히 늘고 있다. 매출 비중도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대 고객’으로 추정되는 퀄컴은 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삼성의 4㎚ 기반으로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공개되는 구글의 폴더블폰에 탑재되는 AP인 ‘텐서G2’는 삼성 파운드리 5㎚ 공정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전기차 1위 테슬라와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암바렐라, 자율주행차 반도체 개발업체 모빌아이 등도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사다. 국내에선 AI 전문 팹리스 퓨리오사AI, 세계 반도체 성능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한 리벨리온, AI 기업 딥엑스 등이 삼성 파운드리에서 칩을 생산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DS부문장)은 지난 4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강연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빅테크 기업이 모두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지속적인 성장세에도 TSMC의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다. 최근 TSMC는 ‘주주들을 위한 보고서’에서 “메모리를 제외하고 전 세계 반도체 매출 중 TSMC가 30%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4%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30%를 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최근 5년 새 35.9→42.7%포인트로 벌어졌다. 매출 규모로는 삼성보다 3.5배 많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은 GAA 같은 초격차 기술로 승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GAA는 칩 면적을 줄이고 전력 효율을 높인 신기술이다. 경계현 사장은 이에 대해 “5년 내 기술로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기술 승부수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다른 과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양팽 산업연구권 연구원은 중국 고객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다양한 고객사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리스크는 우려해야 할 점”이라고 진단했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격차를 줄일 수 있지만 기술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가 않다. 전체적인 생태계 구축까지 이어져야 한다”며 “삼성과 가깝게 일할 수 있는 기업들을 초기 단계부터 탄탄하게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술을 따라잡는 것은 가능할 수 있으나 시장 1등은 좀 더 도전적인 목표일 것”이라며 “기술과 수율은 기본이고 매력적인 가격도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편 정부는 이날 반도체 미래기술 육성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함께 민‧관협의체를 발족했다. 향후 10년간 소자·설계·공정 분야에서 79개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방안이 담겼다. 메모리‧파운드리 분야는 과감한 기술 개발을 통해 ‘초격차’를 유지하고,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시스템 반도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신격차’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업은 가까운 미래에 양산이 담보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정부는 소자‧설계‧시스템 등 중장기 기술에 투자해 (신기술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해리·고석현·김수민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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