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법률위반" vs "탄핵할 사안 아니다"…이상민 장관 탄핵심판 첫 변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의 첫 변론기일이 9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은 “국무위원인 장관이 탄핵심판의 대상이 된 첫 사건으로, 이 사건이 헌법 질서에서 가지는 엄중한 무게를 깊이 인식하고 있다”며 “공정한 심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심리를 시작했다.
이날 변론에는 청구인인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피청구인 이상민 장관 모두 출석했다. 이 장관은 심판정에 들어가기 전 “이번 탄핵소추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송구하다”며 “국정 공백을 조속히 매듭짓고 모든 것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오늘 심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많은 희생자분이 계신 데 대해서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헌재도 행안부장관 공백이 장기화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 않겠나 싶은데, 집중심리 등 헌재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청구인 측 “이 장관, 예방·사후대응 안해…성실·품위유지 위반”
청구인인 국회 측은 재난안전법상 사전 예방조치의무 위반, 사후 재난대응조치 의무 위반, 국가공무원법(성실·품위유지 의무)과 국민의 인격·행복권을 명시한 헌법 10조 위반 등을 탄핵사유로 꼽았다. 이미 2017년에 ‘다중밀집 안전사고 재발방지 개선방안’을 만들 정도로 군중 밀집의 위험성을 알았고,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해제 직후 핼러윈 당일 10만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적절한 위험 예방조치 등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사고 직후 조속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해 수습에 나서지 않았고, 중앙사고수습본부 설치도 늦어 서울교통공사와 경찰 등 유관기관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참사 이후 국정조사 등에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건 아니었다”,“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고, 제가 그 사이에 놀고 있었습니까?”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 신뢰를 손상시켜 공무원의 성실의무, 품위유지 의무룰 위반했다고도 주장했다.
청구인 측 노희범 변호사는 “고위직 공무원은 일반적 사법절차나 징계절차가 어렵고, 이 사건에서도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이 한 차례도 수사나 조사를 받지 않았다”며 “공무원 징계대상자도 아니고, 국회가 해임건의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재난안전 주무장관으로서 본질적 직무를 방임했다”며 “국회는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고, 무능력이나 무책임한 발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다. 직무를 방임한 중대한 법률 위반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능환 전 대법관 “탄핵 정당할 만큼 중대한 법률 위반 아냐”
이 장관 측은 김능환·안대희 전 대법관을 비롯해 변호인 9명을 내세웠다. 김능환 전 대법관은 직접 탄핵소추 요지에 대한 반대 주장을 34분간 폈다. 김 전 대법관은 “(이태원 참사가) 자유롭게 모여든 군중의 밀집으로 발생했고, 강제로 밀집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국민의 기본권 침해 혹은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초기 긴급구조가 가장 중요했고, 제반 지원을 하는 중대본이 사고 당일 자정을 넘긴 오전 2시 30분에 설치된 부분에 대해서도 “늦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행안부 장관은 안전관리를 총괄하지만, 긴급구조와 사후조치를 직접 수행하는 건 장관의 의무가 아니라며 “전화로 계속 보고받고 지시하는 등 행안부 장관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재난안전법·헌법 등 법령 위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헌법 65조에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고 돼 있지만 “탄핵(파면) 결정이 내려지면 5년동안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볼 때 징계 처분의 일부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징계를 하기위해선 ‘법률위반 유무’를 엄격하게 봐야하고, 이 사건은 탄핵이 정당화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다”며 탄핵 청구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행안부·소방청·경찰청 상황실장 증인채택…통화내역은 이견
양측은 이 장관의 통화내역을 놓고도 다퉜다. 청구인 측은 사고발생일인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8시부터 30일 오전 6시까지 “이 장관이 통화로 보고받고 지시했다는 내역을 달라”며 여러 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이 장관 측은 “이미 낸 증거에 통화목록이 다 있는데 뭘 더 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거부했다. 재판부는 이 통화내역의 필요성에 대해 더 논의해보기로 했다.
재판부는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박용수 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 엄준욱 소방청 상황실장,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 등 증인 4명을 우선 확정했다. 유족·생존자 증인 등 다른 증인은 관련 수사기록을 받아본 뒤에 추후 판단하기로 했다.
이날은 최근 새로 취임한 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을 포함한 9인 체제로 열리는 첫 공개변론 기일이었다. 다만 김기영 재판관은 긴급한 개인 사유로 인해 이날 변론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음 변론기일은 오는 23일, 3차 변론기일은 다음달 13일에 열린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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