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7세 아이가 쓴 현판 글씨가 놀랍다
김종성 2023. 5. 9. 17:13
사찰, 읍성, 소나무숲, 아름다운 강변길을 품은 밀양 영남루 여행
영남루에서 이어지는 무봉사, 밀양읍성, 소나무숲, 수변길
[김종성 기자]
▲ 밀양강 최고의 누각 영남루 |
ⓒ 김종성 |
누각은 2층 규모의 큰 정자로 휴식과 사색을 하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시화(詩畵)를 즐겼던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엔 3대 누각이 있는데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 그리고 흥미로운 뜻이 담겨있는 도시 밀양(빽빽할 密, 볕 陽)의 영남루가 그곳이다. 보물 제147호로 밀양강변에 자리한 여러 명승지와 정자 가운데 가장 높고 큰 전망대이기도 하다.
오뉴월 햇볕이 촘촘하고 빽빽하게 내리쬐는 날 이곳에 가면 시원한 강바람과 강풍경이 더위를 잊게 해준다. 영남루가 가장 운치 있을 때는 해 저물 무렵이다. 해 질 녘 영남루에 앉으면 밀양강이 흘러가는 소리가 귓전을 적시고, 밀양강 너머에서 밀려온 노을이 이마를 붉게 물들인다. 누각 안 나무기둥에 기대거나 마룻바닥에 앉거나 혹은 누워서... 다양한 자세의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영남루에서 편안하게 쉬어간다.
▲ '시문(詩文) 현판 전시장'이라 불렸다는 영남루 안 |
ⓒ 김종성 |
▲ 밀양강을 바라보며 쉬기 좋은 영남루 |
ⓒ 김종성 |
지그재그로 이어진 돌계단을 올라 누각 마당에 들어서니 영남루와 양편에 날개처럼 거느린 능파각과 침류각이라는 부속 건물, 조선후기 역대 8왕조의 시조 위패를 봉안한 천진궁이 여행자를 맞는다. 영남루 아래에는 아랑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아랑각이 있고, 그 앞으로 밀양강이 찰랑이는 수변길이 나있다.
영남루 앞뜰은 주말과 휴일에 무형문화재 공연이 열리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국가 무형문화재 36호인 백중놀이와 무형문화재 7호인 감내게 줄당기기, 무형문화재인 법흥상원놀이, 밀양 작약산 예수제 등 평소 보기 힘든 귀한 공연이 펼쳐진다.
신발을 벗고 누각에 들어서면 고색이 창연한 영남루의 단청과 다양한 문양조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누각 곳곳에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시인묵객들과 명필가들이 쓴 시문 현판이 즐비하다.
유명한 문인들의 시와 글을 새긴 현판에 한때 300개나 걸려 '시문(詩文) 현판 전시장'이라 불렸단다. 특히 1843년 이인재 부사의 아들 이중석(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썼다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 글씨가 놀랍다. 우리나라 조기교육 역사는 참 오래됐구나 싶었다.
▲ 밀양강이 바라 보이는 암자 무봉사 |
ⓒ 김종성 |
▲ 훼손되어 파묻혔다가 무봉사 경내에서 출토된 불상 |
ⓒ 김종성 |
영남루에서 이어지는 무봉사, 밀양읍성, 소나무숲, 수변길
영남루에서 쉬면서 밀양강 주변 풍광만 감상하고 가면 후회한다. 영남루가 자리한 산은 이름처럼 소담한 아동산(88m)이다. 아동산에는 영남루를 중심으로 무봉사라는 작은 사찰, 밀양읍성, 울창한 소나무숲, 상쾌한 수변길이 이어진다. 무려 신라시대 때 생겨난 무봉사는 영남사라는 절의 암자였다. 영남루는 영남사 자리에 세워졌고 절의 이름을 따라 누각 이름이 지어졌다.
대웅전에 있는 보물 제493호 석조여래좌상은 가까이 다가가 지긋이 바라만 봐도 마음이 안온해진다. 무봉사에서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문 건 얼굴이 훼손된 불상이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많은 절과 불상이 소실되었는데 이 불상도 그렇게 땅에 파묻혀 있다가 근대에 경내에서 출토되었단다. 전국적으로 이렇게 버려진 불상이 숱하게 많았다는데, 우리말 '불쌍하다'의 유래는 아마 이렇게 훼손된 불상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 무봉사 후문에서 이어지는 아동산 둘레길과 아래 수변길 |
ⓒ 김종성 |
▲ 밀양시내와 밀양강이 바라 보이는 밀양읍성 |
ⓒ 김종성 |
늘 열려있는 무봉사 후문으로 나가면 아동산 허리를 이은 숲속 둘레길이 이어진다. 나무 숲 사이로 밀양강이 바라보이는 숲길은 험하지도 않고 걷기 참 좋다. 아동산 둘레길에서 오솔길따라 산 밑으로 내려가면 아름다운 수변길이 나오고, 둘레길을 계속 걸어가면 밀양읍성이 나온다.
아동산 둘레길이 길지 않아서 수변길을 거닐어보고 다시 밀양읍성 길로 향해도 된다. 밀양읍성은 다른 고을 읍성들이 임진왜란 직전 쌓은 데 비해 무려 100년이나 앞당겨 쌓은 읍성이다. 성종 10년(1479)에 일찌감치 건립했다.
▲ 밀양읍성을 따라 이어지는 울창한 소나무숲 공원 |
ⓒ 김종성 |
밀양읍성 언덕 위에 서면 밀양시를 휘돌아 흐르는 밀양강과 밀양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밀양읍성이 허물어진 건 아니나 다를까 일제 강점기 때. 1902년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지으면서 밀양읍성의 성문과 성벽을 모두 헐어 공사에 썼다고 한다. 지금은 복원한 성문과 일부 성곽만 남아 있다. 밀양읍성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어 걷기도 좋고 청명한 공기를 마시며 쉬어가기 좋다.
영남루에서 밀양강을 바라보며 '물멍'하다, 밀양읍성에 와선 '숲멍'하게 된다. 다채로운 길을 걷다보니 쉬이 고파지는 배. 영남루 앞에는 밀양 아리랑시장이 있어 정겨움과 함께 여러 향토음식을 즐길 수 있다. 시장 안에 '밀성'이란 글자가 들어간 가게들이 있는데, 밀성(密城)은 밀양의 옛 지명이다.
▲ 영남루 옆에 있는 밀양 아리랑 시장 |
ⓒ 김종성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마이뉴스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반도체 한파에 월급 반토막... 도시가 조용해졌습니다
- "윤 대통령, 해고만 남았다" 102개 여성단체 시국선언
- '2찍이들'이란 용어와 민주당의 원죄
- 얻어맞고 외면받는 노동조합이 잠깐 생각해 볼 것
- 만 원권 지폐의 망원경, 여기 가면 볼 수 있습니다
- 윤 대통령 자화자찬 "외교·안보만큼 큰 변화 이룬 분야 없다"
- '9연승' 롯데 자이언츠, 죽었던 응원 톡방이 살아났다
- 난방비 폭탄, 물가급등, 대출증가... 일상이 흔들렸다
- "자유 내세워 국가 책임 내팽겨쳐" 윤 대통령 직격한 이재명
- "의령 불법 폐기물 침출수, 폭우에 유실... 낙동강 상수원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