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권 지폐의 망원경, 여기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중앙선 역사문화기행]

최서우 2023. 5. 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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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광학천문관측의 중심지 영천 보현산천문대

[최서우 기자]

경북 영천시 화북면과 청송군 현서면 경계에는 태백산맥을 줄기에서 나온 해발 1126.4m의 보현산이 있다. 산 정상에는 천정이 돔으로 되어 있는 건물과 직육면체의 조립식 건물이 우뚝 솟아 있는데, 우리나라 광학천문관측의 중심지인 보현산천문대다.

직육면체 조립식 건물 안에는 직경 1.8m의 광학망원경이 있다. 광학망원경은 우리나라 만 원 권 지폐 뒷면에 태조 4년에 석판에 새겨진 천상열차분야지도와 1669년 송이영이 제작한 혼천의와 함께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오랜 천문의 역사를 이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천문연구의 중심지인 보현산천문대로 가보자.

보현산천문대

보현산천문대는 새만금포항고속도로의 북영천 나들목에서 가깝다. 나들목에서 청송으로 가는 35번 국도를 따라가면 횡계천을 따라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우회전해서 따라가자. 쭉 가다보면 천문대를 올라가는 이정표가 있는데,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 정상으로 가야 한다.

길을 끝까지 가면 주차장이 보이는데, 이곳에 주차하고 나무데크 길을 따라 500m 정도 가다보니 보현산천문대가 보인다. 그것도 산꼭대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옛 신라의 첨성대는 경주 월성 북서편 평지에, 개성의 첨성대는 고려궁터였던 만월대 서쪽에 있었다. 당시에는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왕궁 근처에 있어도 무방했다.

하지만 전기가 확산된 이후에는 빛의 간섭이 적은 장소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날씨도 쾌청한 곳에 세워져야 하는데, 보현산이 두 가지 조건이 맞아 광복 후 최초로 세워진 소백산천문대(1978년 건립)를 이을 장소로 적합했다. 1985년 천문대 건설을 추진해서 1996년 완공되어 오늘에 이른다.
 
 보현산천문대 전시관 주변 전경
ⓒ 최서우
어찌 보면 보현산은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싶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일몰 후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일몰 이후 차량이 들어오면 전조등이 관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현산천문대는 한국천문연구원 산하 연구시설이라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따라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개행사가 1년에 딱 5번 있다. 4, 5, 6, 9, 10월의 네번째 토요일. 그것도 안전을 위해 매 행사 당 40명으로 제한된다. 작년에는 코로나유행과 망원경 정비로 공개행사가 시행되지 않다가 올해 4월에 재개되어 갈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공개행사는 먼저 30여 분의 강연으로 이어진다. 오늘의 강연은 성현일 천문대장의 '별의 일생'. 천문학에서의 '별'은 '항성'. 즉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천체다. 우주의 가장 많이 분포하는 물질은 수소와 먼지다. 이들은 균질하지 않게 퍼져있는데, 중력에 의해 함께 뭉쳐져서 구름덩어리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이 덩어리는 수소와 먼저를 더 끌어들이면서 밀도와 질량이 높아진다.

그러다가 가운데 물질이 더 모여 밀도가 더 높아지면 온도가 천만 도까지 높아져서 수소가 원자구조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4개의 수소가 결합해 헬륨으로 바뀌는 핵융합 과정을 거친다. 별, 즉 항성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별의 마지막이 서서히 다가올 때는 중심부 수소가 고갈되어 핵융합이 이뤄지지 않아 별이 수축되는데, 이때 별의 외곽부에서 핵융합이 발생해 별이 팽창한다. 이를 적색거성이라고 한다.
 
 별의 일생과 우주의 크기
ⓒ 최서우
적색거성 이후 별의 최후는 크게 세 가지 형태인데, 크게 백색왜성, 중성자별, 블랙홀로 나뉜다. 2011년 미항공우주국(NASA)의 스위프트 위성이 포착한 에너지를 서울대학교와 보현산천문대의 연구진이 후속관측하여 거대질량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으로 산산 조각난 별의 잔해가 블랙홀로 떨어질 때 광선다발이 특정 방향으로 뿜어지는 것을 밝혀냈다. NASA를 포함해 6개국 58명이 참여한 공동연구였는데, 보현산천문대 1.8m 망원경과 적외선관측장비가 이를 관측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질량에 따라 별의 일생이 달라지긴 하지만, 별의 평균 수명은 100억 년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태양의 나이는 현재 약 50억 년으로 보면 되는데, 50억 년이 더 지나면 태양이 부풀어 지구와 태양계의 행성들을 삼키며 서서히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까마득한 세월이지만, 그때까지 인류가 살아있다면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를 벗어나 또 다른 세계를 찾을 수 있을까?

고등학교 지구과학을 배운 지가 오래 되어서 많은 것을 잊어버렸지만, 별의 일생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점성술과 혼재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 천문학은 수학과 물리학 등의 지식으로 연구하는 과학의 분야지만, 우주의 모든 사물을 관측하고 설명한다는 기틀은 유지하고 있다.

1.8m 광학망원경

강연이 끝나고, 천문대 정상부로 향했다. 정면으로 직육면체로 된 건물이 우뚝 서 있는데, 이 안에 직경 1.8m 광학망원경이 있다. 우리나라 최대 크기의 반사경으로 이뤄진 망원경인데, 내년이면 세워진 지 30년이 지나게 된다. 건물 외관을 보면 현대판 첨성대를 보는 느낌이다.

망원경은 건물 4층에 올라가면 볼 수 있다. 푸른색 몸체에 흰 기둥들이 한가닥 한가닥 연결되어서 중앙으로 모이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본체 중앙부에는 원형으로 뚫린 게 가운데로 보이는데, 이 안에 직경 1.8m 오목거울이 있다. 그리고 흰색 기둥이 모이는 중앙 끝에는 검은 원기둥으로 된 게 보이는데, 여기에 빛의 경로를 바꾸는 볼록거울 보조 반사경인 부경(副鏡)이 있다.
 
 보현산천문대 1.8m 광학망원경동 외관. 마치 현대판 첨성대를 보는 느낌이다.
ⓒ 최서우
 
 1.8m 광학망원경 외관. 맑은 날 야간에 돔을 열어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
ⓒ 최서우
  
이 두 거울 덕분에 겉보기등급으로 최대 20등급의 별까지 관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가 맨 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별의 등급은 6등급인데, 1등급보다 100배 어둡다. 그럼 한 등급으로 올라갈수록 약 2.512배로 어두워지는 건데, 20등급이면 1등급 별보다 약 2.512의 20승 정도의 어두운 별까지도 관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별의 관측은 돔을 열어야 가능하다. 돔을 여니 마치 첨성대의 가운데 구멍 역할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과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망원경을 돌려서 360도 관측이 가능하다. 자동 모드로 두면 돔 문이 망원경 중앙에 맞춰질 때까지 조절하여 동서남북에서 일어나는 천문을 관측할 수 있다.
 
 직경 1.8m 오목거울 모형
ⓒ 최서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망원경 직경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다른 곳에 또 다른 천문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천문학은 국제 협력이 매우 활발한 분야라 우리나라 연구자가 다른 곳의 망원경을 활용하여 연구할 수 있다. 관측 계획이 승인 되면 요즘 천문학의 중심지인 하와이나 칠레로 가서 출장 관측이 가능하다고.
최근 미국 하와이와 칠레 안데스 산맥지역에 대형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고 있는데, 한국천문연구원도 거대 마젤란 망원경[Giant Magellan Telescope(GMT)]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8.4m 직경 반사경 일곱 장을 붙여서 직경 25.4m로 제작하는 초거대 망원경인데, 칠레 라스 캄파나스(Las Campanas)에 설치되어 2029년부터 첫 관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전체 비용 중 우리나라가 부담하는 지분이 10%라 1년 중 한 달 정도 이용할 수 있는데, 우주의 원시흔적과 진화 역사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대형 망원경으로 이뤄진 미래의 천문대. 우리나라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 최서우
망원경동을 나와 옆 계단을 올라가면 비석이 하나 보이는데, 한자로 보현산, 1126.4m라고 적혀 있다. 정상에 올라가 주변 경관을 보니 또 다른 낮은 산들과 그 아래 작은 마을들이 보인다. 쾌청한 날에는 정동에 있는 호미곶도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이날은 황사가 심해 볼 수가 없다.
해발 높이를 보니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빛이 적은 산 정상을 오르내리며 긴 시간 동안 출근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원님들 말씀에 의하면 영천시내에서 이곳까지 통근 차량이 다니는데, 편도로 무려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전기로 인해 우리의 삶은 편리해졌지만, 천문학의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보현산 정상 1126.4m 표지석. 천문학자들의 터전은 전기라는 문명의 혜택으로 인해 점점 좁아지고 있다.
ⓒ 최서우
  
 산정상에서 바라본 정동으로 풍경. 가시거리가 좋은 날에는 포항 호미곶이 보인다.
ⓒ 최서우
경주 첨성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혼천의의 전통을 이어주는 보현산천문대와 1.8m의 광학망원경. 천문학 환경이 좁아지는 요즘,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는 배수의 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천문대원들은 우주의 원리를 연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요즘 우주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 미국 NASA연구와 관련된 내용에 집중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천문대의 망원경과 GMT참여로 연구가 활발해지면, 언젠가 우리나라의 천문학자가 스티븐 호킹처럼 중요한 과학명제를 도출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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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중앙선 역사문화기행>이 마지막에 접어들었네요. 먼저 귀한 지면을 내주신 오마이뉴스 편집부와 제 연재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앞으로 새로운 내용의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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