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쏟아진 '갑질' 증언대회, "폐점 고민중인데 본사는 승승장구"
[권성훈 기자]
"다른 건 바라지 않습니다. 원물 가격만, 차돌박이 가격만... 조금만 낮춰줘서 살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 이차돌 가맹점주 A씨
"제 꿈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주인이 CJ에서 사모펀드로 바뀐 것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도 말입니다. (수익 악화에) 눈물을 머금고 매장 폐점을 고민하는데 본사의 매출이 늘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 투썸플레이스 가맹점주 B씨
발언 중 눈물까지 흘린 두 점주의 모습에 시작 초반 어수선했던 증언대회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 가맹점주가 눈물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
ⓒ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제공 |
프랜차이즈 가맹점, 대리점처럼 기업에 종속된 소상공인들을 일명 종속적 자영업자라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들이 본사로부터 '갑질'을 당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전해졌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을(乙)들의 아우성, 가맹점·대리점 불공정 피해 증언대회'가 열렸다.
차돌박이 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이차돌'에 가맹한 지 한 달 만에 코로나가 터져 흔히 말하는 '오픈빨'도 받지 못했다는 가맹점주 A씨. 그는 본사가 차돌박이부터 종이컵까지 납품 원부자재에 높은 이윤을 붙여 강매하고 신제품이 나오면 점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밀어내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본사의 비싼 원부자재에 직원을 고용하기 어려워 집에 있는 어린 자식은 돌보지도 못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날 증언을 위해 거제도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는 투썸플레이스 가맹점주 B씨의 사연도 비슷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거제도와 부산에 가맹점을 개설했다는 그는 새벽에 거제와 부산을 매일 왕복하며 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부족한 잠은 가게 의자에서 쪽잠으로 때우며 억척스럽게 일했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가게 수익은 오히려 악화하여 현재 한 개 매장은 폐점을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진 아디다스 점주의 증언은 기업이 얼마나 냉혹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점주에게 지원은커녕, 온라인 사업권 박탈, 선주문 금액 중 미지급금에 대한 패널티 30% 부과, 그리고 마지막은 계약 갱신 거절이었다고 한다.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난 미지급금에 점주는 자신의 아버지 건물까지 경매에 부쳐졌다고 본사의 횡포를 증언했다.
쿠쿠전자 본사 또한 다르지 않았다. 대리점주들은 쿠쿠를 전기밥솥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본사는 마땅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 본사가 수십 년을 일 한 대리점주에게 한 일은 나가라는 내용이 적힌 무심한 내용증명 한 장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날 증언은 가맹사업 분쟁이 유달랐던 2017년을 연상시켰다. 당시 피자, 죽, 김밥 등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연이어 갑질 사건이 터지며 가맹점주들이 목숨까지 잃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번졌고 프랜차이즈 업계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 어부가 가마우지로 물고기를 잡고있다. |
ⓒ 픽사베이 |
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어부들이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다. 방법은 간단하다. 적당히 굶긴 가마우지를 물에 던져 놓으면 가마우지는 물속 물고기를 물어 온다. 정확히 말하면 입에 있는 물고기를 삼키려 수면 위로 올라오지만 삼키지 못한다. 어부가 가마우지 목에 줄을 묶어 삼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부는 물어 온 물고기를 빼앗고 풀어주길 반복한다. 그렇게 고된 하루가 끝나면 가마우지는 어부의 아량(?)으로 던져진 물고기 한 마리를 허겁지겁 받아먹는다.
▲ 영화 '파운더' 홍보 포스터 |
ⓒ 파운더 제작사 |
레이 크록은 사업 초기 자본에 여유가 있는 부자들에게 가맹점을 내주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니 비용 조달도 쉽고 자잘한 불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간절함'이 없었다. 간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게를 열심히 운영할 리 없다. 그래서 레이 크록은 중산층이며 생계형으로 창업해야 하는 사람들을 가맹 대상으로 삼는다. 이 전략은 적중했다. 그들은 굶주린 가마우지처럼 부지런히 매출을 올린 것이다. 그러자 점주들이 힘들 것이라는 동업자의 반대에도 로열티를 올린다. 그렇게 맥도날드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는 레이 크록의 창업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파운더>(2017)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감독 기관의 무관심, 왜곡된 프랜차이즈 업계
행사 명칭 그대로 을들의 아우성이 끝나갈 무렵, 아주 짧은 시간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식 발언자로 채택되지 못한 가맹점주들을 위해 즉석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배석자 좌석에서 응어리진 가슴을 부여잡고 발언권을 얻으려 조바심을 내던 종속적 자영업자들이 앞다투어 발언 신청을 했다. 그중 일명 '떡참'이라 불리는 '떡볶이참잘하는집' 브랜드에 가맹한 어느 점주의 발언은 현재 우리 프랜차이즈 업계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였다.
"본사는 업계 최초라며 6무 정책(가맹비, 로열티 등 초기 비용 면제)으로 가맹점을 유인했습니다. 그래서 1년 만에 300개를(가맹점)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맹점들이 적자로 폐점하겠다고 하니 위약금을 내라고 협박하며 점주들의 퇴로조차 막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점주들은 가게의 고정비를 빚으로 갚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업이 공정위에서 착한 프랜차이즈 선정되었고 중기청에서는 국무총리상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가 저절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퇴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 현상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프랜차이즈를 대표로 종속적 자영업계에서는 말이다.
현재 자영업계는 코로나19 재난에 이어 공공요금 인상, 고금리에 경기 침체까지 겹쳐 역대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 자신들에 종속된 자영업자를 보살펴야 할 기업들이 오히려 이들을 기업 생존의 자양분으로 소모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현재 이 상황은 이를 관리 감독할 기관들의 무관심이 한몫했다고 본다.
아래의 글은 2017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식 발언 중 일부이다. 누군가는 이 말을 허울뿐이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본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으니 공정위 등 관련 기관 실무자들만큼은 이 글을 자주 되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명한 건 그 누구도 이 글이 옳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법의 목적은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습니다. (중략) 그런데 우리 사회가 공정위에 요구하는 바는 상당히 다릅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경쟁자, 특히 경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달라는 것입니다.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제력 오남용을 막고, 하도급 중소기업, 가맹점주, 대리점사업자, 골목상권 등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것입니다. 공정위에 민원을 접수하시는 한분 한분의 사연은 너무나 절박합니다.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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