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후속편, '가오갤3'이 명성을 유지하는 방법

고광일 2023. 5. 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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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고광일 기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마침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이후 <가오갤3>)이 개봉했다. 2편 이후 무려 6년 만의 후속편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펼쳐지는 지구-199999에서는 6년 동안 정말 많은 사건이 있었고, 블립으로 가오갤의 몇몇 멤버들은 5년간 먼지가 되기도 했다. 어벤져스 원년 멤버들의 활약으로 타노스라는 빌런을 물리쳤지만, 정복자 캉이라는 빌런이 다시 우주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현실 세계의 변화도 만만찮았다. 트위터의 과거 발언 때문에 제임스 건 감독 퇴출 소동으로 <가오갤> 시리즈의 제작이 중단됐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강력한 지지로 감독이 돌아오고 영화도 제작됐지만 그사이에 MCU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졌다. 평론가들은 물론이고 마블의 팬들도 작품 하나하나를 깐깐하게 따져보기 시작했다. 우주의 수호자들은 과연 지구199999와 현실지구에서 펼쳐지는 소란스러운 이슈들도 수습할 수 있을까.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우주적 가족의 흥망성쇠

알려졌다시피 <가오갤3>는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2014년 MCU 페이즈2의 4번째 작품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소개될 때만 해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미 대중들에게 알려진 헐크, 스파이더맨이나 <어벤져스>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블랙 위도우, 호크 아이의 솔로 무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낯선 가오갤 멤버들을 널리 사랑받는 캐릭터로 만든 건 제임스 건 감독의 공이었다. 

매콤하게 치고받는 B급 유머, 끝내준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OST 선곡은 지금도 <가오갤>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그러나 유머와 OST라는 기교만으로 2시간에 이르는 영화 한 편이, 트릴로지까지 이어지는 시리즈가 마니아를 양산하며 사랑받기는 어려운 법이다. 매 영화마다 조금씩 변주되어 마침내 한 번의 생애주기를 보여준 '가족'이라는 주요 테마가 공감받지 못했다면 지금 <가오갤>이 지키고 있는 위상도 없었을 거다.

오브에 들어있는 파워스톤을 두고 가오갤 멤버들과 빌런인 로난이 각축전을 벌이지만 <가오갤1>은 '가족의 탄생'을 다룬 가족영화다. 지구에서 납치되어 해적이 된 스타로드, 타노스의 명령으로 살인을 일삼고 공공의 적이 된 가모라, 아내와 딸을 잃고 파괴로 삶을 채우는 드렉스, 말하는 너구리 로켓과 한 가지만 말하는 나무인간 그루트.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사랑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5명의 아웃사이더가 우주의 수호자로 뭉치는 이야기가 <가오갤>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가오갤2>는 한층 더 나아가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파워스톤의 힘을 버텨낸 스타로드는 신적 존재인 셀레스티얼의 힘을 이어받은 것으로 밝혀졌고, 그의 아버지인 에고가 찾아온다. 에고는 헤어진 아들을 찾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스타 로드를 이용해 자신의 씨를 전 우주에 퍼트릴 음모를 꾸몄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 온 욘두는 자신을 희생해 스타로드의 목숨을 구한다. 그가 남긴 준(Zune)에는 끝내주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음악들이 담겨있다. 에고와 욘두 모두 숨을 거두지만 에고는 타도해야 할 빌런으로 남고, 욘두는 추모의 대상이 된다. 가오갤 멤버들은 가족 정의를 핏줄보다 가치관으로 보았다.

MCU 최고의 3부작이라는 인장을 찍는 <가오갤3>의 테마는 바로 '가족의 해체'다. 어디에도 없지만(Nowhere) 어디인지 아는(Knowhere) 장소. 고향에 가족을 두고 떠나야만 비로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오롯이 쓰인다. 영원히 유지되는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했고 가치관이 같다고 해도 평생 함께하기는 어렵다. 가슴 속에 품은 이상, 지켜야 할 약속, 피하고자 했던 문제들을 타인과 공유할 수는 없는 탓이다. <가오갤3> 에서 멤버들은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적 해체를 택한다.

스타로드는 피해 왔던 가족과의 재회를, 맨티스는 에고와 가오갤 멤버들을 위해 살아왔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자신을 찾는 여행을 위해 떠난다. 가모라는 라바저스로 돌아간다. 로켓은 뉴 가오갤을 꾸리고 드렉스는 다시 한번 아버지 역할을 맡는다. 가족을 원했던 네뷸라는 노웨어의 재건에 힘쓴다. 각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가족의 흥망성쇠를 다룬 10년 간의 여정에 어울리는 설득력 있고 성숙한 마침표가 찍힌다.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정상성의 함정과 대결하기

<가오갤3>의 빌런은 하이 에볼루셔너리다. 이 빌런의 목적은 좀 독특하다. 인피니티 스톤의 힘으로 우주를 마음대로 하거나 멀티버스를 파괴하려는 게 아니라 (이름대로) 높은 수준의 진화를 추구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수천 년 전 지구에서 불린 음악을 수집해 틀어놓는다. 그는 불협화음이 하나의 화음이 되는 과정을 찬양한다.

높은 수준의 진화를 쉽게 풀어쓰면 '완벽한 세상'이다.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꿈꾸는 세상에는 어떤 악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로켓을 개조하는 등 수많은 동물진화 실험을 하고 급기야 지구를 본뜬 '카운터어스'라는 행성을 만들기에 이른다. 물론 이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운터어스'에도 잘 구획된 주택가를 벗어나면 빈민가가 펼쳐진다. 카운터어스의 작은 폭력은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구축한 더 큰 폭력으로 진압된다.

일찍이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본질을 간파한 로켓의 말에 따르면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원래대로가 싫을 뿐'이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원리를 깨닫고 창조성을 갖게 된 피조물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콤플렉스 덩어리에 불과하다. 불협화음은 불협화음대로의 조화가 있다는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신이 없기 때문에 신이 되려는 자부터 이미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당연한 귀결이다. 

'흠이 없다'는 뜻의 완벽은 결국 정상성에 대한 강요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런 정상성의 함정에서 가오갤 멤버들도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오프닝에서 로켓이 듣는 곡은 'Radioghead의 Creep'이다. 너무 특별한(you're so very special) 사람과 달리 스스로를 별종(I'm a Wierdo)로 여기고 완벽한 신체와 영혼(I wanna perfect body, I wanna perfect soul)을 갖길 원한다는 내용이다.

로켓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고 끔찍한 개조실험을 함께 당한 동물 친구들과 만난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릴라는 로켓과 함께 꾸던 꿈을 상기시킨다. '언젠가 하늘을 나는 멋진 기계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영원히 아름다운 하늘로 날겠다'는 소망을. 로켓은 '더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자기혐오의 늪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붙인 89P13라는 실험번호가 아니라 스스로 지은 이름인 로켓과 미국 너구리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우주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로켓 라쿤'으로 거듭난다.

자신의 판단으로 가족이 되었지만, 나머지 가오갤 사이에서도 서로를 비정상으로 인식해 교정하려 드는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스타로드는 다른 우주에서 온 가모라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강요하지만, 돌아오는 건 당연한 반발과 동료들의 놀림뿐이었다. 그랬던 스타로드가 인정받게 된 건 자신과 사랑을 나누던 가모라가 지금의 가모라는 아님을 수긍하고 고백을 멈추던 순간이다. 가모라는 왜 다른 우주의 가모라가 멍청해 보이는 스타로드와 사귀었는지 알겠다고 말한다.

네뷸라는 드렉스가 쓸모없는 바보라는 편견에 갇혀있다. 이런 아수라장을 정리하고 각자의 차이를 인정해 팀을 하나로 묶는 건 뛰어난 공감 능력을 맨티스다. '우릴 웃게 하고 사랑하는 게 어떻게 골칫거리이며 유일하게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며 말이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우주선이 폭발하기 직전 절체절명의 순간. 맨티스의 통찰처럼 드렉스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건강한 자신감에서 만든 웃음으로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구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에 맞서는 게 무모하다는 가모라에 말에 스타로드는 말한다. 함정인 줄 알고 싸우는 건 함정이 아니라 대결이라고. 사회와 시스템, 고정관념이라는 막강한 적은 인식 속에 깊게 뿌리박혀 자연스러워 보인다. 배경처럼 깔린 선입견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는데도 능숙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인식한다면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니라 대결을 펼칠 기회를 창조할 수 있다.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스틸컷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2022년 12월에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이 공개됐다. 지구를 떠나온 뒤 크리스마스를 챙긴 적 없고, 가모라까지 떠나보내 쓸쓸해하는 스타로드를 위해 이복남매인 맨티스는 깜짝 놀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다. 바로 스타로드가 우주 최고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을 노웨어로 납치해 오는 것이다.

스타로드가 케빈 베이컨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 <풋루즈> 때문이다. 엄격한 목사 때문에 시끄러운 음악과 춤이 금지된 마을에서 케빈 베이컨이 춤바람을 일으켜 혁명(?)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낯설지 않다. <가오갤 1>에서 우주를 구한 건 스타로드의 갑작스러운 댄스 배틀이었으니까.

"내가 춤 출 수 없다면 나의 혁명이 아니다(If I can't dance, it's not my revolution)"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인 엠마 골드만이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가족은 핏줄로 이어져야 하고 항상 함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완벽한 신체와 영혼이 존재하고 추구할 가치라고 믿는 정상성의 함정을 박살 내기 위한 여정이 끝났다는 사실이 사뭇 아쉽다.

10년의 여정을 함께 하며 끝내는 I'm groot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 가오갤의 일원으로 끝내주는 플레이리스트에 한 곡을 더할 영광이 주어진다면 이 곡이 어떨까.

우주의 절대영도에서 싸늘하게 얼어가던 가모라와 피터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건 어쩌면 가족이 될지 모르던 타인의 희생을 감수한 숭고한 선택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난 그들에겐 세상을 바꿀 춤이 남았으니 말이다.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며 많이 외로워하다가' 들으면 좋은 검정치마의 'Antifreeze'다.

숨이 막힐 거 같이 차가웠던 공기 속에
너의 체온이 내게 스며들어 오고 있어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닷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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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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