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㉕] 마스크를 벗으며

데스크 2023. 5. 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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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3년 이상 착용했던 마스크를 벗은 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답답했던 가슴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해 본다. 입술 사이로 스며드는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자유를 다시 찾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볍다.


코로나가 완화되어 벚꽃 구경하는 인파로 붐비는 양재천의 모습ⓒ

2020년 1월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급속도로 퍼져 그해 10월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거나 사망하기도 했다. 입과 코를 마스크로 가리고 눈만 내놓고 다녔다. 길거리에서 지나쳐도 누구인지도 모른 채 스쳐 갈 수밖에 없었다. 2020년 3월에는 2년 과정의 ‘가톨릭 영 시니어 아카데미’ 졸업식도 못 하고 우편으로 졸업장만 받았다. 기나긴 고통과 어둠의 터널을 지나자 햇빛이 비쳐온다. 코로나 확산이 둔화되어 2023년 3월 20일부터 대중교통 이용할 때 마스크 의무착용이 해제되었다. 이어서 세계보건기구(WTO)는 5월 5일 코로나19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2020년 1월 발효 이후 3년 4개월 만에 마스크를 벗고 답답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유유히 나는 갈매기의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명동거리가 인적이 드물어 썰렁하던 거리 풍경ⓒ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는 사망자가 급증하여 가족이나 친척이 돌아가셔도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화장하고 유골만 받기도 했다. 화장을 제때 하지 못해 삼일장을 치르지 못하고 5일이나 7일이 걸리기도 했으며 지방으로 원정을 가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감염된 사람이 7억 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68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셨지만 한 달에 한 번만 면회가 가능하고 그것도 비닐 가름막을 사이에 두고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몇 마디 안부와 눈빛만 교환하였다. 초점 잃은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옛날 소록도병원 입구 도로 양쪽 소나무숲에는 가족들이 환자를 만나는 수탄장(愁嘆場)이라는 곳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환자와 가족이 한 줄로 서서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어머니와의 면회하는 장면은 현대판 수탄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가족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한편으로 마스크는 회사에서 상사가 이야기할 때 마음에 없는 표정을 짓지 않아도, 여성들은 화장하지 않아 편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당에서 강론을 들을 때나, 행사에 참여하거나, 강의를 들을 때 하품이 나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입을 벌릴 수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은 눈밖에 보이지 않아 대부분 예쁘고 멋있게 보였다.


코로나 19로 명동거리의 가게가 비어 있는 모습ⓒ

사람의 얼굴에는 수천 가지의 표정이 있다고 하는데 마스크를 끼고 있어 눈과 이마 이외는 가려진다. 표정은 언어 못지않은 소통 수단이다. 화가 마르크 샤갈은 ”얼굴은 표정의 향연을 펼치는 오케스트라“고 하는데 마스크로 인해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어 그동안 좋은 소통의 수단을 빼앗겼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봄을 맞아 벚꽃놀이 등 각종 행사가 봇물 터지듯이 많아졌다. 양재천과 여의도에는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나온 인파로 인산인해였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동 거리는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는 상점의 40%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외국인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영업이 안 되니까 대할인 판매 행사를 한다든지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임대한다는 커다란 글씨만 창문에 붙어 있었다.


토요일 명동성당 쪽에서 바라본 인파로 붐비는 명동거리 풍경ⓒ

며칠 전 토요일 명동성당에 교육이 있어 들렸다. 예상은 했었지만, 골목마다 인파로 넘쳤다. 명동성당에서 롯데백화점이 보이는 중심 도로는 길 양쪽의 노점에서 판매하는 각종 간식과 음료를 마시는 외국 관광객들과 나들이 온 시민들로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쉽지 않았다. 일본어와 중국말을 쓰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히잡을 쓴 아랍인과 같은 외국인들이 30~40%는 되는 것 같았다.


모처럼 명동에 나온 터라 명동칼국수가 먹고 싶어 들렸더니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길거리까지 길게 줄을 서 있다. 옆자리에 외국인 커플이 있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고 한다. 마늘이 듬뿍 들어간 매콤한 김치를 환상적이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는 자부심과 함께 흐뭇함이 느껴졌다.


명동칼국수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손님들ⓒ

교육을 마치고 방문한 남대문시장도 마찬가지다. 명동 거리보다 밀집도는 떨어지지만, 점포마다 손님들이 가득하였다. 저녁때가 되어 족발집에 들어갔더니 외국 관광객들이 여러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주인은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도 자주 온다며 코로나 유행 이전 수준은 아니지만, 전보다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며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여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코로나가 완전히 물러나 이전같이 관광객들로 붐비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인파로 가득한 남대문시장 풍경ⓒ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자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상가도 활기를 찾는 것 같다. 썰렁하던 명동 거리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활기 넘치는 것을 보자 봄바람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처녀처럼 마음이 설레고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으로 우리 사회가 다시는 어려움을 겪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동안 고통을 받았던 상인들의 얼굴에도 기쁨이 가득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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