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코로나 특례기간 월세 연체 이유로 상가임차인 못 쫓아내"

최석진 2023. 5. 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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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 특례조항 임차인에게 유리하게 해석
변제충당 시 특례기간 월세 먼저 충당 안 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상가임대차법상 특례조항은 변제충당의 순서를 정할 때에도 언제나 임차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차인이 연체된 임대료를 모두 갚기에 부족한 돈을 임대인에게 지불했을 때 계약 해지 사유 등에서 제외되는 특례기간 중의 연체 차임을 나중에 변제하는 것이 임차인에게 더 유리한 만큼 나머지 기간의 연체 차임에 대한 변제에 우선 충당해야 한다는 취지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임차인(세입자) A씨가 건물주 B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B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이 내린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 2018년 7월께 B씨와 서울 서초구 소재 건물 중 일부를 보증금 1575만원, 월 차임 262만5000원, 관리비 100만원에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A씨가 차임을 연체하자 B씨는 계약해지를 주장하면서 2018년 10월 건물명도 소송을 냈고, 재판 도중 '향후 차임 및 관리비 연체액 합계액이 3개월분에 달하면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자동해지된다'는 조건으로 조정이 성립됐다.

그리고 2020년 7월 임대차계약을 갱신하면서 두 사람은 보증금 1700만원, 월 차임 280만원, 관리비 100만원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했다.

하지만 A씨는 다시 2021년 9월 29일까지 차임 등 합계 3671만원을 연체했다. 이에 B씨는 차임 연체액이 3개월분에 달했으니 조정 내용에 따라 임대차계약은 자동해지됐다고 주장하며, 확정판결 정본과 똑같은 집행력을 갖는 조정조서 정본을 기초로 건물 명도 집행에 나섰다.

그러자 A씨는 상가임대차법상 특례조항에 따를 때 법 시행일로부터 6개월간인 특례기간 동안 연체한 차임은 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연체 차임이 3개월분에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청구이의의 소를 냈다.

코로나19로 인해 영업 손실을 본 상가임차인들을 위해 2020년 9월 29일부터 신설·시행된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9(계약 갱신요구 등에 관한 임시 특례)는 법 시행일인 2020년 9월 29일부터 6개월까지의 기간 동안 연체한 차임액을 계약갱신의 거절이나, 계약 해지, 권리금 회수 등에 있어 산입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하급심 재판부는 이 같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정조서에 기초한 B씨의 강제집행을 불허한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위 법은 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 소비지출이 위축되고 상가임차인의 매출과 소득이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임대료가 상가임차인의 영업활동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실정임에도 차임연체액이 3기의 차임액에 달하는 경우 등은 계약의 해지 사유에 해당해 많은 임차인이 소득 감소에 따른 차임연체로 영업기반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 이 법 시행 후 6개월의 기간 동안 연체한 차임액은 계약의 해지 등의 사유가 되는 차임연체액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도록 함으로써 경제적 위기 상황 동안 임대인의 계약해지 등을 제한하는 임시적 특례를 두는 규정"이라며 "그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이 사건 조정조항의 해석에 있어서도 6개월 기간 동안의 차임 연체액은 계약해지 및 명도청구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재판에서는 변제액이 전체 채무액에 못 미칠 때 어떤 채무에 대한 변제부터 충당할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민법상 변제충당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합의된 충당 순서가 있으면 그 합의충당에 따르고, 합의가 없을 경우 채무자가 지정하는 순서대로 충당된다. 그리고 채무자가 순서를 지정하지 않았을 때 채권자가 충당 순서를 지정해 충당할 수 있지만, 채무자가 즉시 이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변제충당에 대해 채무자나 채권자의 지정이 없을 경우 민법 제477조가 정한 법정변제충당의 순서에 따라 ▲이행기가 도래한 채무가 먼저 충당되고 ▲모든 채무가 이행기가 도래했거나, 도래하지 않았을 때에는 채무자에게 변제이익이 큰 채무부터 충당된다.

모두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들이다.

A씨는 특례조항이 시행되기 전날인 2020년 9월 28일까지 917만원의 차임 연체액이 있었고, 법 시행일 이후부터 6개월간 2552만원의 연체액이 발생했다. 다만 A씨는 이 기간 중 1014만원을 변제했다.

핵심은 전체 차임 연체액에 못 미치는 1014만원을 어떤 채무부터 우선적으로 변제에 충당할지 여부였다.

특례법이 시행되기 전에 발생한 917만원의 연체 차임액을 변제하면 97만원이 남게 되는데, 이 돈을 먼저 변제기가 도래한 특례기간 중 발생한 연체 차임의 변제에 충당하면 특례기간 이후에 연체된 금액만으로도 3개월분 차임액을 넘게 돼 계약 해지의 조건이 갖춰졌다고 봐야되는 반면, 특례기간에 발생한 연체 차임에 대한 충당 순서를 후순위로 미루고 특례기간 이후에 발생한 연체 차임의 변제에 먼저 충당하면 계약 해지의 조건인 3개월분 연체액 1254만원보다 39만원이 부족한 1215만원이 연체되는 상황이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에서 B씨는 연체차임에 지연손해금을 합할 경우 A씨의 차임 연체액이 3개월분을 초과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해석은 강행규정인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8에 반하는 해석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9 및 법정변제충당의 적용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9의 적용에 대한 판단누락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하급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상가임대차법 제15조에 따라 상가임대차법의 규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으므로, 임대인과 임차인이 연체 차임과 관련해 민법상 변제충당과 다른 약정을 체결했더라도 그것이 임차인에게 불리한 경우에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이 경우에는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9의 규정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민법상 변제충당 규정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9 특례규정의 입법취지와 목적을 명확히 설시하면서 연체 차임 합계액 계산을 위한 변제충당 시에도 임차인 보호 취지에 따라야 함을 최초로 확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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