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지적장애 판정... 모두 울린 부부의 애틋한 진심
[이준목 기자]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불우한 가정사, 전 배우자의 배신과 폭행, 지적장애, 학교폭력, 경제적 생활고까지. 가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을 모아놓은 종합세트같은 역대급 부부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그들이 싸우고 극복해야 했던 갈등의 대상은 어쩌면 부부 서로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과거의 '트라우마'였다.
5월 8일 방송된 MBC 부부상담 토크멘터리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는 '내 빈 곳을 채워준 마지막 한 조각-퍼즐 부부'편이 그려졌다.
이날의 의뢰인은 결혼 7년 차로 경북 안동에 거주하는 남만현-박성은 부부였다. 부부는 소개팅 어플을 통해서 만나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다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남편이 마음에 들었던 아내가 안동까지 내려오며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다고. 남편은 "그때부터 이제 시작된 것 같다. 저도 아버지 집에 얹혀살고 있어서 오래 있을 것이라 생각을 못 했는데, 아내가 오더니 갈 생각을 안 했다. 일주일 넘게 있었다"고 직진 러브스토리를 고백하여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퍼즐부부는 그동안 <결혼지옥>에 출연하면서 당장 이혼할 듯 험악한 분위기이거나 혹은 남보다도 못한 냉랭한 사이였던 이전의 부부들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지금도 서로가 '남편 바라기-아내 바보'라고 할 만큼 금슬이 좋고 정이 깊었다. 하지만 부부를 엇갈리게 하는 것은 서로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까지 두 사람을 둘러싼 척박한 '환경'에 있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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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일상이 공개됐다. 회사 사정으로 휴직하게 된 아내는, 출근한 남편을 배웅한 뒤 침대 위에서 몸을 뉘인 채 오후 늦게까지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끼니까지 거르면서 남편의 퇴근을 기다렸다.
아내의 남편을 향한 과한 애정과 집착은 도를 넘어선 의심과 불안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영상 통화를 걸어 남편에게 "여자 직원 나왔냐", "여자가 없는지 카메라로 보여줄 수 있냐"고 거듭 확인을 요구했다. 남편은 익숙한 듯 "여자가 없다"며 여러 번 해명하며 아내가 직장으로 찾아오는 것을 불편해했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아랑곳하지않고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퇴근후에도 멈출 줄 모르는 아내의 의심과 추궁에 스트레스를 참다못해 끝내 언성이 높아졌다. 남편은 "나는 딴짓한 적이 없는데, 왜 자꾸 의심하냐"는 남편의 불만에 아내는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하니까. 나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의심이 된다"라고 우겼다.
알고보니 아내는 재혼이었고 과거에 한 차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던 전력이 있었다. 아내는 전 남편의 상습적인 음주, 폭행, 도박, 외도 등으로 큰 상처를 받았고, 그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덩달아 의심과 불안 증세가 심해졌다고.
현 남편도 전 남편의 존재와 아내의 상처를 이미 알고 있었고, 혼자 집에 있으면 불안하다고 호소하는 아내를 안타까워했다. 아내는 <결혼지옥> 출연을 신청한 이유에 대하여 "남편은 그런 사람(외도나 폭행을 하는)이 아닌데, 제가 남편을 왜 자꾸 의심을 하게되는지 저도 이유를 알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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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내에게는 결혼 경력 외에도 또다른 충격적인 비밀이 있었다. 아내는 1년 전 남편의 권유로 받은 발달장애 진단 검사에서 중증의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아내는 말투가 어눌하고 논리적인 이야기나 계산에 서툴렀으며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지못하는 어린아이같은 면모가 있었다. 남편은 유산균 음료 판매업을 하던 아내가 돈 액수에 대하여 잘모르고, 재고가 계속 쌓이면 남은 음료는 남편에게 주고 현금서비스를 받아 재고 금액을 메꾸는 식으로 비정상적인 대처를 반복하는 것을 보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정작 아내 본인은 태어나서 40년 동안이나 자신의 상태를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으로 드러나 더 안타까움을 줬다. 장애 판정을 들은 아내의 충격은, 두 번에 걸쳐 장애 진단을 굳이 권유한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남편 때문에 (모르고 살 수도 있었던) 장애 판정을 받은 거다. 나를 왜 굳이 장애인으로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바엔 차라리 이혼하자고 하든가"라며 탓하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아내는 남편이 직장을 찾아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마중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도 본인이 지적장애인이기 때문에 "창피스러워서 그런다"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장애는 창피한 게 아니라며 아내를 달랬지만, 아내는 여전히 속상함을 감추지 못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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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편도 심경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제작진과의 대화에서 비로소 속내를 털어놨다. 지적장애 판정을 받고 의사로부터 "아내를 딸같이 키워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남편은, 듣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며 아내를 사랑하지만 현실의 무게감을 느낀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부부는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롭지 못했고, 남편도 과거 건강이 좋지 않아 쓰러진 경험이 있었다. 남편이 만일 자신이 없을 경우 아내 혼자 보호자 없이 방치되는 상황을 가장 우려했다. 남편이 아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굳이 장애진단검사를 밀어붙인 진짜 이유도, 장애인으로 등록해놓으면 "국가에서라도 아내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서도 막상 정말로 장애판정이 나오자 남편은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잘한 건지"라고 착잡해했다.
본래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던 아내는 어릴 때 부모님과 조부모가 잇달아 돌아가시면서 가까운 가족들을 모두 잃고 삼촌 밑에서 자라게 됐다. 삼촌은 고교 진학을 원했던 아내의 의사를 무시하고 시장에서 각종 장사를 시켰고, 삼촌의 지속적인 폭행과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난 이제 버림받았구나. 부모 복도 없고 형제 복도 없고, 지금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아내의 불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 남편과의 결혼에서 세 명의 자녀를 뒀지만 안타깝게도 자식들도 모두 발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자녀들을 돌볼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아내는 할 수 없이 아내가 다니던 교회 측에 양육 위탁을 맡겨야 했다. 남편은 가뜩이나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 가운데, 사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참지 못하고 졸라대는 아내에게 쓴소리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남편에게도 숨겨진 깊은 상처가 있었다. 남편은 드라마 <더 글로리>의 실사판을 연상시킬 만한 심각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을 "오락실의 게임 상대같은 존재였다. 가해자들은 때리는 애고 저는 맞는 애였다"고 설명하며 "친구 화장품을 깨뜨렸다고 깨진 유리를 제 얼굴에 발랐다. 기숙사에서 잠을 잘 때는 발가락 사이에 휴지를 넣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기절놀이라고 가슴을 기절할 때까지 압박해서 의식을 잃으면 볼을 때리고 재미있다고 웃더라"며 직접 겪었던 드라마보다 더 악랄한 학폭의 실제 사례들을 전했다.
이어 남편은 "지옥같았다. 도움을 호소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가정이 화목한 것도 아니고 혼자 이겨내야만 했다. 가해자는 들켜도 반성문 몇 장 쓰는 거 그걸로 끝나고 내일 되면 마주쳐야 한다"고 설명하며 "그런 생활을 이 악물고 버틴 것 같다. 고등학교는 졸업을 해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에 겨우 버텼다"라고 회상했다.
부부의 안타까운 인생사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세상의 편견 때문에 오히려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남편도 부끄러워서 학폭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야 털어놓았는데 금세 회사에 자신의 소문이 퍼지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마음을 닫게 되었다고. 남편은 방송에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이유에 대하여 "이 프로그램 통해서 이야기를 털어놓고 이제라도 편안하게 잠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고백했다.
이에 오은영은 "학교 폭력도 폭력이다. 자아상을 형성하고 문제 해결 방식을 배워가는 나이에 학교 폭력을 겪으면 치명타를 입는다. 그걸로 평생이 불행하고 괴로울 가능성이 너무 크다. 기숙사 생활을 하셨다면 24시간 연장선이라 더욱 지옥 같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편으로 오은영은 "이제라도 그 이야기를 솔직히 꺼낼 수 있다는 것도 남편에게 그만큼 내면의 힘이 있는 거다"라고 진단하며 "이 이야기가 방송에 나온다고 가해자가 개과천선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남편이 스스로 '나는 그런 일을 당할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나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야'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잘하신 일이고 굉장히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본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오은영은 힘든 시간을 지탱해준 남편을 위한 진심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소중했고 살아오는 내내 그랬고 지금도 소중한 사람이다. 남편이 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은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100% 잘못한 거다. 그래서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존엄성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들이 어떻게 해도 나라는 인간은 내 아내한테는 충분히 귀한 사람이야' 이 마음을 변하지 않고 갖고 있는 것이 결국 그들에게 이기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보다 더 파란만장할 수 없는 부부의 안타까운 인생사와 서로를 향한 애틋한 진심은, 지켜보던 이들의 눈시울까지 붉히게 했다.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끝없는 불행에 휘말려야 하는 상황은, 어쩌면 우리에게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차가운 세상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외로운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서로의 곁을 지키며 빈틈을 채워주는 퍼즐이 되어주고 있는 부부의 진심어린 사랑은, 시청자들에게도 훈훈한 감동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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