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찍이들'이란 용어와 민주당의 원죄

하헌기 2023. 5. 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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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민주당 지지자들 유권자 조롱,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성찰과 경로수정이 필요하다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편집해 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다른 의견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하헌기 기자]

 2022년 3월 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대전 유성구 노은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대선 막바지, 민주 진영에선 '1번남·2번남 짤'을 만들어 돌렸다. 대선에서 2번 찍는 남자들은 지능적·윤리적으로 열등하다는 캠페인이었다. 더불어민주당에 실망한 사람들과 이재명 후보에게 확신이 없던 사람들이 짤을 보고 자신이 '열등해지기 싫어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을리는 만무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지난 대선은 간발의 차이였다. 유권자를 갈라치기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포용해야 승산이 있었다. 유권자는 '설득'해야 하는 존재이지 자의적 기준으로 '평가'받는 존재가 아니다. 평가는 거꾸로 유권자가 정치세력에게 하는 것이다. 1번남·2번남 짤을 돌리는 건 유권자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오만함과 선민의식으로 밀어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민주 진영 내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스피커들도 그 캠페인을 말리긴커녕 거꾸로 본인들이 직접 그 짤을 인용·확대했다. '재미있는 캠페인' 정도라고 생각했을까?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선거에서 지겠다는 직감이 들었고 실제로 졌다.

그런데 1년 이상 지난 지금, 민주당은 물론 민주진영도 여전하다. 여전히 '반사이익'만 기대하는 게 민주당의 현주소다. '2찍이들'이라며 조롱하는 것도 매우 흔하게 보인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2찍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은 걸 후회할까?

'열등한 2찍이들'이 나라 망칠 사람을 뽑았다? 

뭔가를 평가할 때는 정념이 아니라 실제로 일이 왜 그렇게 됐는지 건조하게 팩트를 놓고 인과관계를 되짚으면서 복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망가지고 있다. 경제·외교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원인이 무엇인가? 역량도 성품도 함량미달인데, 국가를 운영할 준비조차 되지 않은 사람이 통치권을 쥐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통치자가 된 원인은 뭔가? 보다 많은 유권자가 그 사람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럼 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그같은 선택을 한 원인은 또 뭔가?

여기서 원인이랍시고 길어올릴 수 있는 얘기 중 가장 의미없는 게 유권자를 경멸하는 것이다. 이른바 '국민개XX론'으로, 지능·윤리의식이 열등한 '2찍'들이 오판했기 때문에 나라 망칠 사람을 뽑았단 식의 이야기다. 이는 '사실'도 아닐 뿐더러 그것이 원인라고 여기면 민주당이 '네거티브'를 더 열심히 안 해서 졌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우리는 문제가 없고 유권자들이 오판한 건데, 그건 결국 '무능하고 문제있는 후보'임을 민주당이 유권자들에게 더 제대로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란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이렇다. 유권자들이라고 윤석열이 좋아서 택했겠나? 혹은 이미 선거 캠페인 중 밑천을 다 드러낸 그가 통치를 잘하리라 기대했겠나? 지난 대선은 수많은 유권자들에게 '누구에게 기대하는 마음'보다 '누구만큼은 싫다는 마음'이 더 강한 동력이 된 선거였다. 적잖은 사람들은 윤석열이 '좋지도 않고', '잘할 거라 기대도 안 되지만', 민주당을 벌하기 위해 윤석열이란 비용을 감당해보고자 각오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비용을 치르고 있다.

'재수없는' 민주당
 
 2022년 3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영등포구 당사에서 패배를 선언한 뒤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럼 유권자들이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민주당을 벌하고 싶어했던 원인은 뭔가. 유권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선거 결과를 뒤집기에 충분할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소위 '재수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본다. 1번남·2번남 짤이 대표적 사례다. 적잖은 유권자들은 장기적 관점에선 수권정당의 오만함과 윤리적 우월의식을 고치지 않으면 그 정당은 물론 국가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모든 수리와 정비엔 비용이 든다. 유권자가 정당을 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들 그렇게 하면 집권 못 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구조에서 이 신호를 주기 위해선 결국 '또 다른 이상한 집단'에게 권력을 위임해야 한다. 근데 '또 다른 집단'이 공동체의 기반을 깎아먹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은 유권자가 감당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다.

그럼 상당수 유권자는 왜 민주당을 '재수없게' 봤을까? 한때는 유권자의 80%까지 지지하던 정부가 아니었던가. 민주당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변했던 모멘텀을 탐색하고 인과관계를 성찰해야 미래가 있다. 아마 여러 사람이 각자가 생각하는 지점을 몇 개 제시할 것이다. 조국, 부동산, 젠더, 검찰 등등. 그런데 필자는 이것들이 각기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민주당 정부가 보였던 태도로 한데 묶을 수 있는 것들이다.

부동산의 경우... 욕망 질타와 똘똘한 한 채
 
 지난 4월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 연합뉴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보자. 윤석열 정부도 부동산 정책을 잘 펼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아직 부동산이 안정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애초에 기대도 없다. 기대가 없기 때문에 이슈 인화력도 없다. 그냥 다들 시장의 눈치를 살피며 각자도생 중이다. 그럼 같은 부동산 정책이라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만 가혹한 걸까?

필자는 '정책 실패'보다 '정책 실패를 둘러싼 태도'를 더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가령 정부의 태도가 이런 것이었으면 어땠을까? '부동산은 정부 정책으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적인 정세 흐름과 경제상황이 영향을 많이 미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주거 문제 해결과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정도의 태도만 보여놨어도 덜 '재수없어' 했을 것이고, 상당수는 양해하려고도 했으리라 본다. 그랬다면 사람들은 정부 정책이 실패할 수도 있을 걸 감안해서 시장의 흐름을 보고 각자 판단했을 것이다.

근데 민주당은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아니, '집 팔 기회 드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랑 관계 없이 그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욕망했던 사람들에게 욕망이 마치 죄라도 되는 것처럼 윤리적 질타나 하며 각종 규제로 옥좼다. 막상 자기들은 '똘똘한 한 채'씩 갖고 있으면서 말이다.

정부 말만 믿고 기다렸다가 졸지에 '벼락거지'가 된 데다 집권세력으로부터 '탐욕적인 사람' 취급까지 받게된 사람들 입장에서, 재수가 안 없을 수가 있나?

검찰의 경우... 덩치 키워주다가 태도 돌변
 
 2022년 5월 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다른 영역은 어떨까. 검찰의 반란?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건 유권자가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후보'가 된 원인은 뭐였나.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 조건을 누가 만들었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다.

문 정부에서 본격적인 검찰개혁을 언제부터 했는지 기억하는가? 2019년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언제 들어섰는가? 2017년이다. 정권의 운명을 건 것처럼 대했던 검찰개혁을 가장 힘이 셌던 임기 초에는 방치하다가, 2019년 중순에야 갑자기 조국 장관이 나서야 했던 원인은 뭘까.

원인은 간단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초엔 검찰개혁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럼 그 상황에 대한 원인은? 적폐수사부터 해야 했으니까. 문재인 정부 임기 초엔 오히려 검찰 덩치를 팽창시켰다. 특수부도 마찬가지다. 검찰개혁 하기 전에 일단 자기들 역시 '잘 드는 칼'을 써먹어야 했다. 그러면서 이례적인 기수 파괴까지 감수하면서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게 누군가. 문 정부다. '검찰개혁하라고 총장 임명시킨 거다', 같은 말은 하지 말자. 검찰개혁은 조국이 적임자라 무리해서라도 장관 시켜야 한다고 하던 민주당이다.

검찰개혁을 먼저 하고 적폐청산하면 안 되는가? 혹은 동시에 진행하면 안 되는가? 여기에 안 된다고 답하면 '적폐수사는 검찰만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민주당이 검찰개혁의 당위를 설파하던 논리가 무너진다. 검찰 없이는 적폐수사 못 한다는 얘기가 된, 검찰 힘을 빼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비대한 검찰권력을 분산하고 수사 기소권을 분리해도 '적폐'는 청산할 수 있다는 논리여야 민주당에 일관성이 있는 거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렇게 안 했다. 자기들 나름대로 칼질을 다 하고 나서, 개혁한다고 나섰다.

바로 이런 지점이 문 정부와 민주당의 '재수없음'이 누적되는 과정이었다. 자기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틀리고. 별로 윤리적이지도 않으면서 매사 자기를 '윤리적이고 개혁적이고 저항적인 포지션'에 두려는 자의식에 사람들이 재수없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걸 내로남불이라 부르든 오만과 독선이라 부르든 본질은 같다.

젠더갈등의 경우... 지적은 해왔지만, 정책은 편 게 있었던가

젠더갈등은 어떨까? 건조하게 인과관계를 복기해보자. 진보진영에선 '이준석이 이대남 갈라치기를 하고 혐오정치를 했다'고 주장한다. 사실일까?

젠더가 갈라쳐져 있는 건 이준석이 대표 출마하기 전부터 그랬다. 이미 넷페미니즘 조류는 2015~2016년 무렵부터 일어나고 있었고, 2018년께엔 그에 대한 반작용도 극에 달했다. 엄청난 젠더갈등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다. 2019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기자가 관련 사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그때 대통령이 뭐라고 답했냐면 '젠더갈등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특별한 거라고 생각 안 한다'였다.

갈등을 조정해서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는 게 정치인데, 진보진영은 정부도 정당도 역할을 방기했다. 조정되지 못한 갈등은 해소되지 못한 증오로 분출됐고, 이준석은 거기에 올라탔다. 그의 정치에 대한 비판은 별도로 하더라도,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젠더 갈등을 방치한 건 민주당이란 이야기다.

불이 나 있는데 진화하지 않은 본인들 책임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막상 불길이 자기들한테 옮겨붙게 되니 '이게 다 이준석 때문'이라며 남탓을 하는 건 불에 기름을 붓는 것밖에 안 된다. 그리고 애초에 민주당은 넷페미니즘 조류를 정치적 이익이 되도록 이용하려고만 했지 실제 여성이 살기 좋은 정책을 펼쳤던가? 말만 그렇게 하고 지자체장이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니까 유권자는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태도', 검찰개혁이 아니라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민주적 절차의 원칙', 젠더갈등이 아니라 '젠더갈등을 대하는 자세'를 문제 삼았다. 이런 '재수없음'이 쌓이고 쌓여서 유권자들이 '행정부, 입법부, 지방정부에 몰아줬던 압도적인 힘'을 민주당은 스스로 털어 먹었다. 

윤석열을 잉태했었던 문재인 정부 그리고 민주당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부인 김건희 씨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을 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단 몇 년 만에 돌아섰으면, 그 모멘텀을 탐색해야 한다. '언론지형이 기울여져서 그렇다'는 둥, '유권자의 절반이 갑자기 멍청하고 이기적이 돼서 그렇다'는 둥 하는 건 사실도 아니고 성찰적 자세도 아니다. 성찰이 없으면 개선도 없고, 개선이 없으면 상대의 헛발질로 인한 반사이익에나 기대야 한다.

사람들이 보기에 윤석열을 출세시킨 것도, 윤석열 정권을 잉태한 것도 민주당이다. 현직 대통령이 '나라 망치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도 현직 대통령 못지않게 그를 잉태하고 키워준 민주당 정부 역시 원망한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그를 잉태하고 키워준 것에 대해선 일말의 성찰도 없고, '본인들을 벌하기 위해 윤석열에 투표한 대중을 경멸하는 모습'을 보이면 유권자들이 뭐라 생각할까?

민주진영은 역사적으로 독재와 싸우며 성장한 집단이다. 목숨 걸고 불의한 것에 저항하는 정치를 해왔다. 타협이나 합의보다는 투쟁과 개혁을 본인들 정치의 본령으로 삼아왔다. 필자는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정치는 아주 중요한 기능 하나를 망가뜨린다. '반추하고 성찰하고 경로를 수정할 줄도 아는 기능'이다. 거악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뭘 반추하고 성찰하고 경로를 수정하는가? 부조리와 타협하는 건 그 자체로 타락이고, 거악은 그저 쓰러뜨려야 하는 존재인데 말이다.

우리는 그것밖에 안 했으니까, 그 방식만이 성공모델이었으니까, 바로 그렇기에 지금도 늘 해오던 대로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거다. 그게 거의 모든 사안에서 '지금은 윤석열 검찰독재와 싸우는 게 먼저니 다른 이야기로 대오를 흐트리지 마라' 같은 이야기만 고장난 축음기처럼 반복하는 걸로 나타난다.

팩트에 근거한 성찰, '경로수정' 기능이 절실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4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있다.
ⓒ 남소연
 
결국 지금도 자기들이 젊을 적 싸웠던 '군사독재' 자리에 '검찰독재'란 글자만 바꿔서 해오던 걸 그대로 하고 있다. '그것 밖에 할 줄 모르니까'라는 평가가 너무 가혹하다면, '수십 년 누적돼 너무 익숙한 경로 의존에 빠졌기 때문' 정도로 언급하겠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또 그 역사를 존경하지만 지금 현실은 1980, 1990년대가 아니다. 2023년이다.

부동산 투기 세력과 싸워야 주거 문제가 안정되고, 북한이 도발하는데도 우리 민족 이야기만 하고, 민정당의 후신 정당을 찍는 유권자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하는 세계관으로는 변화한 시대에 복잡다단한 문제를 풀 수 없다.

유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를 혐오하고 냉소한다. 그래서 정치권에 대단한 걸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하고, 인정할 건 인정할 줄도 아는 태도' 정도를 요구할 뿐이다. 기대치가 낮아졌기 때문에 거창한 얘기를 할 필요도 없다. 국면마다 유권자가 요구하는 말, 메시지가 정치권에서 나오기만 해도 알아서 평가한다.

민주당이 거악과 싸워온 역사를 인정한다. 하지만 2023년의 민주진보진영은 투쟁만으로 꾸릴 수 없다. '거악 척결 투사의 서사'를 2020년대판으로 재탕하는 게 아니라 '일어난 팩트'를 두고 원인과 결과를 따져야 실마리를 풀 수 있다. 민주진보진영은 '반추와 성찰' '냉정한 복기'를 통해 경로수정이 되는 기능을 탑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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