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1주년 메시지…"가짜평화·巨野·무너진 시스템… 회복 시간 필요"(종합)
과거 정부 반시장적 정책 지적하며 전세·주식 사기 우려
"사회적 약자 절망의 늪으로 밀어"… 국민 위한 정책 강조
경제 외교 중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세일즈 외교 계속"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적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를 지적하며 "무너진 시스템을 회복하고 체감할만한 성과를 이루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1년간의 소회를 털어놓은 것으로 전임 정부의 무능, 국회의 거야(巨野) 상황까지 언급하며 외교를 비롯한 국내외 모든 현안에서 법과 원칙, 국익에 초점을 맞춰 운영 기조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해 "우리 정부는 지난 1년간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존중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경제 역량에 걸맞은 책임과 기여를 다했다"며 윤 정부 주요 활동을 점검하고 국무위원들에게 연계된 후속 조치를 독려했다. 윤 대통령이 1주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기로 한 점을 감안하면 생방송으로 중계된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집권 2년 차 국정운영 방향을 담은 대국민 메시지로 읽힌다.
전세·주식 사기에 이어 마약, 대북정책까지… 文정부 일일이 지적
윤 대통령은 지난 외교 일정과 성과들을 조목조목 평가하며 "경제를 외교의 중심에 두겠다"는 의지를 먼저 내비쳤지만 지난 1년간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던 상황을 더 부각했다. 전세사기, 마약 범죄, 대북정책 실패 등 전 정부의 국정운영을 일일이 지적한 것으로, 특히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전세사기에 대해 "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이 전세 사기의 토양이 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주식과 가상자산 등 각종 투자 사기가 발생했다는 것으로 "서민과 청년세대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고 절망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증권합수단 해체' 등 전 정부의 감시 체계 부실도 꼬집었다. 윤 대통령은 "금융시장 반칙행위 감시체계의 무력화는 이러한 가상자산 범죄와 금융 투자 사기를 활개 치게 만들었다"며 "범죄자의 선의에 기대는 감시 적발 시스템 무력화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고 지적했다.
전 정부의 검찰개혁 과정에서 마약 조직과 유통에 관한 법 집행력이 위축된 결과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출범 후 중요 마약범죄에 대한 법 집행력을 회복하고 검경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는 등 마약 청정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평가했다.
"거야 입법에 가로막혀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다"며 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등 국정과제가 '거대 야당'에 발목 잡혀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놨다. 노동·연금·교육 등 입법이 수반돼야 하는 3대 개혁이 모두 야당의 반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며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한 메시지도 제시했다.
북한의 선의에만 기댔던 전 정부의 안보 대책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중단됐던 한미연합훈련 재개, 재래식 군사력을 바탕으로 했던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변화, 분쟁의 군사적 해결과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등을 언급하며 "우리의 안보와 경제,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8월을 마지막으로 끊긴 민방공훈련에 대한 중요성도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그간 가짜 평화에 기댄 안보관으로 민방위 훈련이 실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정부는 지난 6년간의 미실시를 감안해 먼저 공공기관부터 훈련을 시작하고 다음 단계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훈련으로 정상화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일관계, 새로운 미래로… "세일즈 외교 통해 지평 넓어지고 있어"
윤 대통령은 이날 한일, 한미, 한미일을 비롯한 정부의 외교 행보도 복기했다. 특히 "어두운 과거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한다면, 한일 양국이 당면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통한 한일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평가했다.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제3자 해결안을 내놓은 데 이어 기시다 총리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유감을 표하면서 한일 관계가 정상화 단계 이상으로 공고해질 것이라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경제·산업·과학·문화·인적교류 등 폭넓은 분야 협력 방안, 후쿠시마 오염수 한국 시찰단을 파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계기 한일 정상의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공동 참배 등을 언급하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한일 간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한미정상회담과 한일정상회담, 향후 G7 계기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안보 공조를 통해 역내 평화 구축을 위한 연대를 공고히 해나갈 것이라는 게 윤 대통령의 설명이다.
취임 후 지난 1년간 자유·인권·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중요 회담·회의 참석 사례, 세일즈 외교 사례를 들며 한국의 외교적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고도 역설했다.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환담·전화 회담을 제외하면 양자회담 35번·다자회의 13번 참석, 10개국을 방문했다. 이 가운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미국 등 전통적 동맹국과의 관계를 심화하고, 한국 대통령 최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지난해 6월), 유엔총회 참석 계기 디지털 규범 수립 및 격차 해소 공적개발원조(ODA) 발표(지난해 9월), 정부 최초의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지난해 11월), 민주주의 정상회의 공동주최(올해 3월) 등을 통해 국제 사회의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차,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국제사회는 지난 70년간 주권 평등, 영토 보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규범에 기반하여 질서를 구축하고 자유, 평화, 번영을 구현해왔다"며 "우리 헌법은 정부와 국민에게 이러한 국제규범도 국내법과 같이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분쟁의 군사적 해결과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해왔다"고 언급했다. 이어 "치열한 지정학적 경쟁과 다층적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평화와 번영의 허브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일즈 외교 추진에 대한 성과를 설명하며 앞으로도 글로벌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해 양질의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나토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반도체·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대규모 방산 수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또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의 지난해 11월 방한 때는 총 300억달러(약 40조원)에 이르는 26건의 계약·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대규모 오일머니 유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올해 1월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때는 UAE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300억달러(약 40조원) 규모의 투자 유치와 48개 MOU를 맺었다. 지난달 국빈 방미에서는 59억달러(약 7조9000억원) 투자 유치, 50건의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지난 1년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고 정상 세일즈 외교를 폈다"며 "앞으로도 경제를 외교의 중심에 두고 우리 제품의 수출 확대와 해외 첨단기업 투자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약속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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