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규와 조규성, 어쩌다 뒤바뀐 운명

이준목 2023. 5. 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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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무대에서 빠르게 자리잡은 오현규... 소속팀 셀틱도 벌써 '더블' 달성

[이준목 기자]

▲ 셀틱 정규리그 우승 기뻐하는 오현규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셀틱의 오현규가 7일(현지시간) 영국 에든버러 타인캐슬 파크에서 열린 하츠 오브 미들로디언과의 2022~2023시즌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34라운드 경기에서 승리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오현규는 이날 후반 35분 득점해 시즌 4호 골을 기록했으며 팀은 2-0으로 승리를 거뒀다.
ⓒ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축구의 신성' 오현규가 유럽 무대에서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오현규의 소속팀 셀틱은 최근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에서 리그 4경기를 남겨두고 우승을 조기에 확정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리그 2연패이자 통산 53번째 우승을 차지한 셀틱은 다음 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 티켓까지 거머쥐었다. 또한 셀틱은 지난 2월 스코티시 리그컵에서 우승한 데 이어 벌써 '더블'을 달성했다.

오현규는 올해 1월 K리그1 수원 삼성을 떠나 셀틱 유니폼을 입으며 유럽파의 반열에 올랐다. 유럽 진출 불과 4개월 만에 오현규는 16경기에서 4골(정규리그 3골)을 터뜨리며 셀틱의 리그컵-정규리그 '더블'에 기여하면서 우승 트로피를 벌써 2개나 수집했다. 2001년생인 오현규는 한국축구의 밀레니엄 세대 중 유럽무대에서 가장 먼저 우승을 들어올린 첫 선수가 됐다.

수원 삼성에서 2019년 FA컵, 김천 상무 시절 K리그2 우승을 맛봤던 오현규는 가는 팀마다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우승 요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셀틱은 6월 4일(한국시간) 열리는 인버네스와의 스코티시컵(FA컵) 결승전에도 올라있어서 오현규는 시즌 트레블(3관왕)까지 가능하다.

오현규의 성장 속도는 놀랍다. 아직은 주전이라기보다는 백업 자원에 가깝기는 하지만, 겨울 이적시장을 통하여 시즌 중반에 합류했고 그리 길지 않은 출전시간에도 불구하고 빠른 적응력을 보이며 골까지 터뜨려 일찌감치 선수단과 팬들의 신뢰를 얻었다.

오현규는 지난해 열린 카타르월드컵에는 최종엔트리에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파울루 벤투 감독의 눈에 들어 '예비선수'로 발탁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현규는 대표팀과 모든 일정을 함께하며 귀중한 경험을 쌓았고 실질적으로 최종엔트리 멤버들과 등등한 대우를 받았다. 이미 K리그에서도 2022년 1시즌 사이에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리그 두 자릿수 득점과 수원 삼성의 승강PO 잔류를 이끌어내며 호평을 받았다.

벤투 감독의 뒤를 이어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한국대표팀 데뷔전이었던 3월 A매치 2연전(콜롬비아-우루과이)에서 오현규를 '조커'로 적극 중용하며 그 잠재력에 주목했다. 오현규는 짧은 시간에도 번뜩이는 플레이로 기대에 부응했고, 카타르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최전방을 책임졌던 두 선배 공격수 황의조와 조규성의 자리까지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달 유럽 현지 소속팀을 방문하여 손흥민-김민재 등 유럽파 태극전사들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스코틀랜드도 직접 찾아 오현규를 격려하기도 했다. 오현규가 이제 A대표팀 전력에서도 중요하여 여겨질 만큼 그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상승세' 오현규... 부진, 부상에 빠진 조규성 

한편으로 이러한 오현규의 상승세와는 대조적인 상황에 놓이며 아쉬움을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조규성(전북)이다. '카타르월드컵이 낳은 스타'로 불리우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조규성은, 지난 겨울 유럽 진출 무산에 이어 2023시즌 K리그 개막 이후에는 소속팀과 본인의 부진, 부상까지 겹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현규와 조규성, 두 선수의 운명이 극적인 엇갈리게 된 것은 바로 '셀틱'이라는 동일한 연결고리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 카타르월드컵 이후 먼저 셀틱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았던 선수는 조규성이었다. 2022시즌 K리그1에서 전북의 FA컵 우승과 정규리그 준우승에 기여하며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조규성은, 카타르월드컵에서 황의조를 제치고 주전 공격수까지 꿰찼고 가나전에서는 한국 선수 최초로 월드컵 한 경기 멀티골까지 기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당시 셀틱 외에도 유럽 여러 구단들이 조규성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조규성은 월드컵 직후 겨울이적시장에서 유럽행을 원했지만, 핵심 공격수를 쉽게 보낼 수 없었던 전북은 좀 더 준비한 후에 여름 이적을 권했다. 조규성은 결국 구단의 뜻을 받아들여 K리그에 잔류했고, 조규성을 놓친 셀틱은 오현규로 방향을 선회했다. 만일 조규성이 셀틱행을 결정했다면 오현규의 유럽행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전북과 조규성의 선택이 그리 무리한 판단은 아니었다. 유럽에 처음 도전하는 선수에게 한창 시즌중인 겨울 이적시장에서 갑자기 팀을 옮겨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드컵 전후로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던 조규성의 페이스를 감안할 때 몇 달 더 K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다보면 유럽에서 더 좋은 오퍼가 들어올 가능성도 기대해볼 만했다.

하지만 올시즌이 시작되면서 모든 계산은 하루아침에 어긋났다. 조규성은 올시즌 고작 4경기에만 출전하여 1골에 그쳤고, 그나마도 필드골이 아닌 PK였다. 지난 시즌 득점왕의 위용은 사라지고 출전한 경기에서도 대부분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최근에는 부상으로 계속해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소속팀 전북이 시즌 초반부터 극심한 부진속에 예상을 깨고 강등권인 10위까지 추락한 데는 조규성의 부상과 부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대로라면 원래 구상대로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다시 유럽진출을 모색한다고 해도 몇 달 전 '월드컵 프리미엄'보다 더 좋은 제안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일각에서는 유럽진출을 원하던 조규성을 억지로 잔류시킨 게 선수와 구단 양쪽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오현규가 떠난 수원도 올시즌 리그 최하위에 그치며 이병근 감독이 경질되고 김병수 감독이 부임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오현규가 셀틱으로 이적하지 않았다면 우승트로피 대신 지금 수원에서 1부리그 잔류를 위한 강등권 싸움의 '소년가장' 노릇을 또다시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역사에 만약(IF)이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순간의 타이밍과 선택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일은 흔하다. 하필 같은 구단의 이적설에 휘말렸다가 서로 다른 선택을 내리면서 몇 달 사이에 입장이 극과 극으로 상전벽해가 되어버린 것은 아이러니하다.

물론 두 선수는 아직 모두 젊고, 긴 축구인생이 남아있다. 조규성은 최근 셀틱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 라이벌인 레인저스로의 이적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성사된다면 오현규의 셀틱과 한국인 공격수들끼리의 '올드펌 더비'를 보게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조규성이 빨리 폼을 되찾아서 지난해의 날카로운 골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오현규 역시 유럽무대에서는 수준이 낮은 편이고 팀간 전력차가 큰 셀틱에서 준수한 백업 정도에 만족할 게 아니라 더 큰 야망과 발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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