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건축일 하면 힘들어" 저는 살아남으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가은 기자]
중학교 시절부터 나는 건축이 좋았다.
"전 건축학과에 진학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내게 어른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건축일 하면 힘들어."
"너 그러면 건축과 나와서 공무원 하면 딱이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른들은 건축이 힘들다며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학교에서 남녀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교육을 받은 나는 어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반발심이 들었다. 건축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래 어디 두고봐라 내가 거뜬하게 버텨주마'라는 마음가짐이 합쳐져 나는 건축이라는 분야에 꼭 가리라 다짐했다.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건축
5살즈음 내 손으로 흙집을 직접 지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골에 계시는 할아버지께서는 황토와 소나무를 구해서 직접 흙집을 지으셨다. 조그만한 손이었지만, 할아버지 곁에서 흙을 직접 만지고 그 흙으로 아늑한 공간이 완성된 경험은 잊을 수 없다.
7살엔 대구에 주택을 매입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직접 인테리어시공을 하셨다. 바닥에 보일러가 깔리고, 지붕 기와도 새로 깔고 뚝딱뚝딱 손이 닿기만 하면 옷을 갈아입듯 집이 계속해서 변하는 것을 지켜봤다. 내가 살 집을 지켜봤기에 어릴 적부터 공사 현장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나도 빨리 커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멋지게 집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생부터 현재까지 나는 해비타트 소속 동아리에 가입하여 집 고치기 봉사를 꾸준히 해왔다. 국가유공자 후손 집 수리, 쪽방촌 집 수리를 주로 하였는데 대부분 도배, 장판 작업이었다.
집 살림을 밖으로 빼고 기존 벽지와 장판을 걷어낸 다음 미리 풀을 발라둔 벽지를 붙이고 장판을 깔아드렸다. 덥고 추운날에는 더 힘들었지만 열악한 주거 환경을 집다운 집으로 직접 탈바꿈 시켜드리는 것이 너무 뿌듯했다.
건축학과에 진학했을 때부터 시공으로 진로를 정한 것은 아니였다. 건축설계, 실내인테리어디자인, 구조설계 등 건축 관련 분야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적 경험들과 봉사들을 통해 나는 본능적으로 시공이 내가 가야될 길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 여성도 건설현장에서 충분히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
ⓒ 김가은 |
지난해 9개월간 학교 선배의 소개로 대형 건설사 아파트 건설현장 '시공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순탄하게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였다. 이력서를 작성해 제출하니 돌아온 답변은 '여자여서 지원을 받기 어렵다'였다. 같이 지원한 학교 선배들(남)은 물어볼 것도 없이 통과였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이 기회를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놓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나는 어필했다. 요약하자면 '저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키도 크고 체력도 좋습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였다.
이렇게 휴학없이 바로 4학년이 되어야 하나, 휴학을 하고 다른 시공 현장을 찾아봐야하나, 고민하던 차에 현장 담당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00월 00일 아침 7시까지 출근하세요.'
너무나 기뻤지만, 남자 지원자가 부족해 여자 지원자 중에서 내가 뽑힌 것이였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조건 아래 뽑힌 건 아니였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여성도 건설현장에서 충분히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일하게 된 현장은 지하 4층에서 최대 지상 29층에 이르는 동으로 형성된 큰 아파트 단지였다. 그중 나는 사수와 5개 동을 맡아 관리하였다. 내가 투입된 시기는 지하주차장과 지상동 골조공사가 진행중이었고, 마감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였다. 시공으로 진로를 정한 나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출근 후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지하주차장의 잭서포트(일명 동바리)가 도면과 동일하게 설치되어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였다. 잭서포트는 건축물을 시공하고, 불가피하게 상층을 사용할 경우 적정 지점에 세워 구조물에 가해지는 과다한 하중을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지하주차장 상부로 무거운 장비들이 오고가기 때문에 콘크리트가 충분히 양생되어 충분한 강도가 나오더라도 잭서포트는 필수이다. 그래서 도면으로 하나하나 체크했고, 그덕에 지하주차장 지리도 익힐 수 있었다.
건물을 한층 한층 올리기 위해선 크게 3가지 단계가 필요했다. 먼저 슬래브면에 먹놓기 작업을 하여 수직철근과 거푸집의 위치를 잡아준다. 먹을 기준으로 수직철근을 배근하고, 거푸집(갱폼, 알폼)을 설치한다. 마지막으로 거푸집 위로 올라가 슬라브 철근을 배근하면 타설이 가능하다. 이때, 철근의 두께, 배근 간격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초두께, 기둥사이즈, 벽체두께, 슬라브 두께, 콘크리트 강도 등등 모든걸 고려해서 도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먹, 수직철근, 슬래브철근 작업이 끝날 때마다 작업자들이 작업을 올바르게 마쳤는지 확인했다. 줄자로 간격, 높이가 정확하게 되었는지, 철근은 개수에 맞게 배근되었는지, 철근의 정착 길이가 잘 나왔는지 등등 일을 하면서 업무 스킬을 계속해서 배우고 쌓아갔다. 작업에 미숙한 부분이 있다면 업체와 소통하며 개선해나갔다. 도면과 일치하게 작업이 완료되면 단계별로 감리와 검측을 진행했고, 다음 단계의 작업을 지시했다.
골조가 어느 정도 올라간 상태였기에 마감 공사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마감 공사는 창호, 조적, 단열, 경량벽체, 방수 이렇게 5단계에 나눠 진행되었고, 공사별 검측이 완료되면 기포방통 공사를 진행했다. 세대마다 옵션이 다르고 평면 또한 달랐기 때문에 현장에서 나는 한 층 한 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세대를 체크했다. 하루에 1만보는 기본이고 정신없이 확인하다보면 2만보가 넘어나는 날도 허다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세대 내 곰팡이를 방지하기 위해 빗물 유입을 최소화 해야하기 때문에 업체와 하루 종일 창문을 닫았다. 눈이 오는 날이면 장비를 들여 눈을 치우지만 현장 크기에 비해 장비 대수가 부족해 직접 직원들과 삽을 들고 눈을 퍼나른 적도 있다.
즉각적인 성취감이 매력적인 건축 시공
우려했던 것과 달리 직원분들 그리고 현장 작업자분들께서는 내가 사무실과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도와주셨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최대한 배우려는 자세로 업무에 임했고 덥고 춥더라고 최선을 다했다.
현장은 내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가며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해서 업무를 진행했을 때 그 결과를 바로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건축 시공의 가장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즉각적인 성취감을 느끼며 더욱 능동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건설현장에서의 시공 분야가 나에게 딱 들어맞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성은 건축, 건설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여전히 많고, 현장에 여성인력이 많지 않지만, 건축업은 나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나는 건설인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