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김용준의 골프 모험] 타이거 우즈와 스티비 원더의 대결
이은경 2023. 5. 9. 08:30
독자도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지독하게 공이 안 맞는 날.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는 날 말이다.
세계 최고인 골퍼 타이거 우즈(Tiger Woods)도 그런 날이었던가 보다. 멘탈 또한 최강인 그도 견디지 못하고 동네 바(bar)를 찾았다. 칵테일 한 잔 시켜놓고 고독을 씹는 그런 술집에. 바텐더가 밀어준 잔을 받아 든 타이거는 술을 살짝 들이켰다. 입안에 전해지는 씁쓸함을 삼키고는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행여 어깨가 축 쳐진 자신의 행색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보아서였을까?
그런데 저쪽에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브 원더였다. 그는 1950년생이니 1975년생인 타이거에게는 작은 아버지뻘이다.
물론 나이 차이가 많아도 친구일 때도 있다. 타이거가 알은체했다. 인사를 받은 스티비 원더가 물었다. “타이거! 웬일로 술을 다 마셔”라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타이거가 답했다. “공이 너무 안 맞아서요”라고. 스티비 원더가 말했다. “그럴 때는 잠깐 골프채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치면 좋아져. 나도 슬럼프가 오면 한 동안 골프를 안 치기도 해”라고.
타이거는 깜작 놀랐다. 앞을 못 보는 스티브 원더가 골프를 친다니. “아니, 형님도 골프를 치세요”라고. 이 대목에서 뱁새 김용준 프로가 절대 장애인을 얕보거나 혐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힌다. 혹시 오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시각장애인인이라고 해서 민감하지 말기 바란다. 어디까지나 골프 이야기일 뿐이니까. 아차!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더라? 맞다. “나도 골프라면 죽고 못살지”라고 스티비 원더가 답했다.
“아니,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플레이를 하시는데요”라고 궁금해진 타이거가 물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라운드를 하는 지 독자도 궁금하지 않은가? “캐디가 공을 티업(tee up)을 해 주고 공 뒤에 드라이버를 갖다 대주면 거기에 맞춰서 셋업을 한 다음에 드라이버 티샷을 하지”라고 스티비 원더가 설명했다. 대단하다. “세컨샷은 어떻게 하시는데요”라고 궁금해진 타이거가 또 물었다. “캐디가 공을 찾은 뒤에 아이언을 공 바로 뒤에 갖다 대주면 거기에 맞춰서 스윙을 하지”라고 스티비 원더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홀 방향은 어떻게 맞추고요”라고 타이거가 의자를 자기 몸쪽으로 바싹 끌어당기며 물었다. “캐디가 홀이 있는 쪽으로 조금 걸어가서 이쪽 방향이라고 소리를 지르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샷을 하지”라고 스티비 원더는 술술 이야기했다. 타이거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당연히 “퍼팅은 어떻게 하시는데요”라고 물을 수밖에. 스티비 원더는 “캐디가 홀 바로 뒤에서 ‘이쪽이 홀이에요’라고 소리치면 그 방향으로 퍼팅을 하지”라고 답했다. 세상에! 놀란 타이거는 또 물었다. “형님, 핸디캡은 얼마나 되시는데요”라고. “이래 보여도 나 싱글이야”라고 스티비 원더는 답했다.
‘싱글’이란 ‘싱글 핸디캡퍼(single handicapper)’를 줄인 말이다. 평균 타수가 9이하인 골퍼를 말한다. 골프를 레크리에이션 삼아 치는 사람치고는 상당한 실력이다. 더구나 시각장애인이라면? 시각장애인이 골프를 친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실력까지 만만치 않다고 하니 타이거는 흥미가 생겼다. 골프가 너무 안 풀려서 힘들어하던 자기 처지는 어느새 잊고 말이다.
타이거는 “언제 한 번 함께 라운드 하시지요”라고 제안했다. 반은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스티비 원더가 “좋지! 그런데 나는 내기 골프 아니면 절대 안 쳐”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타이거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안 그렇겠는가? 아무리 싱글 핸디캡퍼라고 해도 그렇지 세계 최고에게 내기 골프를 하자고 하니 말이다.
“얼마짜리 내기를 할까요”라고 타이거는 웃느라 입꼬리가 반쯤 귀에 걸린 채 물었다. “한 타당 1만 달러 어때”라고 스티비 원더가 답했다. ‘큭큭큭’. 타이거는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했다. 1만 달러면 1300만원쯤 된다. “좋아요. 그러면 장소와 시간은 형님이 원하는 대로 잡아서 알려주세요”라고 타이거는 말했다. 스티브 원더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다. “돌아오는 그믐날 밤에 한 판 붙지”라고. 그믐이라니? 달이 뜨지 않는 그 날 아닌가?
세계 최강인 타이거 우즈와 스티비 원더의 그믐밤 승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어보나 마나이다. 뭐가 보여야 치지. 골프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경기 방식으로 치느냐에 따라 승패가 다를 수 있다.
뱁새도 지난 연휴에 사회인 제자에게 이틀 연속 내기에서 완패했다. 얕잡아보고 홀 당 한 타씩이나 잡아주고 쳤는데(뱁새가 파를 하고 제자가 보기를 하면 비기는 식으로 셈한 것) 웬걸! 제자 실력이 많이 늘었다.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골프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KPGA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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