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가 왜 20세기 대표 화가냐면
[이정희 기자]
우중산책? 산책이라기엔 날이 너무 궃다. 어린이날 다음 날 아침 6일, 여전히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날도 쌀쌀하고, 꾸적꾸적 얇은 파카를 다시 꺼낸다. 그래도 푸른 잎들이 비바람 속에서도 의연한 덕수궁 돌담 길을 걷는 건 설렌다. 확실히 비가 와서 그런가 거리가 한가롭다.
그런데 웬걸, 서울 시립 미술관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부터 인파가 난리다. 아니, 이 많은 이들이 에드워드 호퍼를 보러 왔다고? 에드워드 호퍼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핫한 작가였던가?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 서울 시립 미술관 |
같이 간 아이들은 에드워드 호퍼가 누구냐는데? 글쎄 누구라고 하면 좋을까? 내가 처음 이 작가의 그림을 접하게 된 건 서양 미술을 소개하는 비평집에서 였던 듯하다. 고대의 장엄한 성화에서 부터 인상파를 거쳐 추상화로 흘러드는 미술사의 조류에서, 불쑥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등장했다.
예전 마가렛 킨의 전시회에서 인상깊었던 소개가 있었다. 그녀가 활동하던 당시 미국에서 그림 좀 그린다하면 추상화를 그려야 하고, 구상화를 그리면 대접을 못받았다고 했었다.
사진술의 발전 이래 그림은 더 이상 보여지는 걸 그리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득할 수 없었고, 인상파를 필두로 화가들은 보여지는 걸 해석했고, 나아가 재장조해냈다.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 서울시립 미술관 |
나에게 인상깊었던, 아니, 에드워드 호퍼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잘 알려진 호퍼의 그림이라면 그의 대표작이라 할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아닐까. 20세기의 초상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20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대변할 공간 커피숍에, 그 시대의 평범한 이들이 화폭을 채운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와 함께, <객실 열차>도 인상깊었다. 함께 그림책과 관련한 책을 쓰던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이 그림은 호퍼가 관심을 기울였던 20세기를 상징하는 기차 속 군상의 모습들이 잘 드러나 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나 <객실 열차>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듯이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은 함께 있지만, 따로 존재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세계 속에 분리된 듯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른바 20세개의 정서랄까, 공기랄까.
그래서, 에드워드 호퍼는 그가 택한 현대적 소재와 함께, 20세기의 원자화된 인간의 고독을 잘 드러낸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전시 역시 에드워드 호퍼를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예술가'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 서울시립미술관 |
이른바 스케치 상태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뿐이라던가 우리가 기대했던 에드워드 호퍼스런 작품들이 많지 않은 점은 좀 아쉬웠지만, 대신 에드워드 호퍼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 혹은 에드워드 호퍼가 명불허전의 화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주마간산식으로라도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좋았다.
미술 전시회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이번 에드워드 호퍼전처럼 한 작가의 생애 전체를 보며 작가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해의 시간이 되는 것도 또한 묘미다.
전시회는 젊은 호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의 권유로 미술의 길에 들어선 호퍼는 일찌기 삽화가가 되었고, 우리가 1920~1930년대 미국 잡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많은 삽화들을 그렸다. 당시만 해도 아직 사진이 대중화되기 이전이라 잡지의 표지도 삽화가의 몫이던 시대였다. 1925년대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팔리기까지 호퍼는 삽화가를 병행했다.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 서울시립 미술관 |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 서울 시립미술관 |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 서울시립미술관 |
그의 작품을 보고 히치콕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이 '모던'하다 평가받는 건, 다만 모던한 대상을 그려서만이 아니라, 마치 세련된 사진 작품에서 볼법한 파격적인 구도로 편집된 작품 세계를 구현해서가 아닐까. 그의 전시회를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그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느냐, 그런 면에서 에드워드 호퍼는 또한 20세기적 인물인 것이다.
전시정보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 층
기간 : 2023.04.20 ~2023.08.20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