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가 왜 20세기 대표 화가냐면

이정희 2023. 5. 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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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 8월 20일까지

[이정희 기자]

우중산책? 산책이라기엔 날이 너무 궃다. 어린이날 다음 날 아침 6일, 여전히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날도 쌀쌀하고, 꾸적꾸적 얇은 파카를 다시 꺼낸다. 그래도 푸른 잎들이 비바람 속에서도 의연한 덕수궁 돌담 길을 걷는 건 설렌다. 확실히 비가 와서 그런가 거리가 한가롭다.

그런데 웬걸, 서울 시립 미술관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부터 인파가 난리다. 아니, 이 많은 이들이 에드워드 호퍼를 보러 왔다고? 에드워드 호퍼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핫한 작가였던가?

미술 전시회를 다녀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뜨거운 문화적 열기에 놀란다. 남녀노소, 연령 불문 다양한 사람들이 마치 콘서트 줄을 서듯 줄지어 대기열에 서 있다. 시립 미술관이 이렇게 호황인 적이 있었나 싶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서울 시립 미술관
에드워드 호퍼가 누구죠?

같이 간 아이들은 에드워드 호퍼가 누구냐는데? 글쎄 누구라고 하면 좋을까? 내가 처음 이 작가의 그림을 접하게 된 건 서양 미술을 소개하는 비평집에서 였던 듯하다. 고대의 장엄한 성화에서 부터 인상파를 거쳐 추상화로 흘러드는 미술사의 조류에서, 불쑥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등장했다. 

예전 마가렛 킨의 전시회에서 인상깊었던 소개가 있었다. 그녀가 활동하던 당시 미국에서 그림 좀 그린다하면 추상화를 그려야 하고, 구상화를 그리면 대접을 못받았다고 했었다.

사진술의 발전 이래 그림은 더 이상 보여지는 걸 그리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득할 수 없었고, 인상파를 필두로 화가들은 보여지는 걸 해석했고, 나아가 재장조해냈다.

그 결과 우리들은 평면과 측면의 얼굴이 겹쳐진 피카소의 그림을 명작이라 감상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 미술사적 조류에서 호퍼는 꿋꿋하게 평생 보이는 것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서울시립 미술관
아니, 이 말은 어패가 있다. 많은 데생과 습작을 되풀이하며 완성작을 만들어 가던 호퍼는 1930년 그린 <아파트, 건물들, 이스트강>에서 보여지듯이 습작 과정에서는 실제 있었던 아파트 앞을 달리던 기찻길을 완성작에서는 배제하듯이, 그 스스로 '편집'된 실재를 화폭에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에드워드 호퍼를 20세기 리얼리즘의 대표적 작가로 칭한다. 

나에게 인상깊었던, 아니, 에드워드 호퍼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잘 알려진 호퍼의 그림이라면 그의 대표작이라 할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아닐까. 20세기의 초상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20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대변할 공간 커피숍에, 그 시대의 평범한 이들이 화폭을 채운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와 함께, <객실 열차>도 인상깊었다. 함께 그림책과 관련한 책을 쓰던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이 그림은 호퍼가 관심을 기울였던 20세기를 상징하는 기차 속 군상의 모습들이 잘 드러나 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나 <객실 열차>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듯이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은 함께 있지만, 따로 존재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세계 속에 분리된 듯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른바 20세개의 정서랄까, 공기랄까.

그래서, 에드워드 호퍼는 그가 택한 현대적 소재와 함께, 20세기의 원자화된 인간의 고독을 잘 드러낸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전시 역시 에드워드 호퍼를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의 예술가'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또한 이번에 소개된 <푸른 저녁>에서처럼 사람들은 귀족과 매춘부와 노동자들이 나란히 화폭을 채운다. 그런가 하면 그의 소재는 철길과 건물 등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낸 것들을 담아낸다. 20세기의 사회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서울시립미술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나, <객실 열차>에서 잘 드러나듯이, 호퍼의 그림에는 호퍼만의 색채가 있다. 녹색 계통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그림자의 검은 색이 조화된. 당연히 전시회에 가면 그런 호퍼의 색채를 많이 만나고 올 것이라 기대를 했는데, 예상과 달랐다.

이른바 스케치 상태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뿐이라던가 우리가 기대했던 에드워드 호퍼스런 작품들이 많지 않은 점은 좀 아쉬웠지만, 대신 에드워드 호퍼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 혹은 에드워드 호퍼가 명불허전의 화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주마간산식으로라도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좋았다.

미술 전시회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이번 에드워드 호퍼전처럼 한 작가의 생애 전체를 보며 작가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해의 시간이 되는 것도 또한 묘미다.

전시회는 젊은 호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의 권유로 미술의 길에 들어선 호퍼는 일찌기 삽화가가 되었고, 우리가 1920~1930년대 미국 잡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많은 삽화들을 그렸다. 당시만 해도 아직 사진이 대중화되기 이전이라 잡지의 표지도 삽화가의 몫이던 시대였다. 1925년대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팔리기까지 호퍼는 삽화가를 병행했다. 

그렇게 삽화가로 활동하며 호퍼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찾아가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전시회의 부제가 '길 위에서'이듯, 호퍼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되어 간다는 느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을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증명해 낸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서울시립 미술관
두어 차례 프랑스로의 여행을 통해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던 호퍼는, 계속되는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그림을 찾아나선다. 전시는 이를 '빛과 그림자'라는 면에서 주목하고 있다. 즉, 프랑스의 밝은 자연을 담아내던 호퍼의 그림에 다리가 드리운 그림자가 주요하게 자리잡는다. 건물을 그려도, 빛이 아니라, 길 위에 드리운 그림자가 전면에 부각된다. 
호퍼의 그림을 보며 문득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가 떠올랐다. 인스타 등에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몇 천 장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에 걸맞게 '연사'란 기술적 장치도 있다. 바로 그 과정을 호퍼는 습작을 통해 해내고 있다. 그의 다이어리와 습작들은 한 장면을 되풀이해 그리며 가장 걸맞는 구도를 찾아갔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서울 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 서울시립미술관
호퍼에게 있어 '구도'를 찾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의 그림이 가진 매력이 바로 그만이 찾아낸 구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드론도 없던 시절에 공원의 가로등 그 위에서 조망하듯 그린 에칭 작품, 혹은 드높은 건물을 옆으로 한 채 고만고만한 건물 지붕들의 조합, 프랑스에서 그린 풍경화 속 사람들이 자리한 카페는 한쪽으로 치우져 있고, 너른 평원과 그 가운데 나무들이 전면에 자리하는가 하면, 맨해튼 다리가 대각선으로 화폭을 가로지른다.

그의 작품을 보고 히치콕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이 '모던'하다 평가받는 건, 다만 모던한 대상을 그려서만이 아니라, 마치 세련된 사진 작품에서 볼법한 파격적인 구도로 편집된 작품 세계를 구현해서가 아닐까. 그의 전시회를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그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느냐, 그런 면에서 에드워드 호퍼는 또한 20세기적 인물인 것이다. 

전시정보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 층
기간 : 2023.04.20 ~202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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