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처벌 강화 법안, 5년 만에 정무위 문턱 넘은 까닭은

황윤주 2023. 5. 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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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같은 당 정무위 의원 과징금 부과 절차 문제 삼아
정무위에서 표류하다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
21대 국회에도 입성한 박용진 의원, 수정 개정안 발의
백혜련 정무위원장이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 이후 정치권에선 주가 조작 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마련에 분주하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주가 조작 등 불공정거래 행위 적발 때 최대 10년까지 신규 투자와 계좌 개설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이번 주에 제출할 예정이다.

특히 2018년에 발의돼 5년 만에 정무위 문턱을 넘은 '불공정행위 부당이득 산정법(자본시장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법안이 5월 임시 국회에서도 통과하지 못하면 주가 조작 범죄로 취한 부당이득을 몰수하는 게 앞으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법안은 2018년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처음 발의했다. 주가 조작 등 불공정행위로 얻은 이익에 대한 산정 방식을 법 조항에 명시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주가 조작 범죄를 처벌하려면 '부당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산출하는 게 핵심이나, 현행법에는 그걸 산정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

서울행정법원, 2018년 주가 조작 관련 과징금 부과 취소 판결

박용진 의원의 입법 계기는 2018년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서 비롯됐다. 2017년 6월 금융위원회는 전업 투자자 A씨 형제에게 과징금 수천만원을 부과했다. A씨 형제가 2016년 9~10월 '반기문 테마주'를 선매수한 후 1주의 고가 매수 주문을 평균 2~3분간 수백 회 반복하는 방식으로 총 8000만원이 넘는 차익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2015년 7월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금융위가 처음으로 개인 투자자에게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로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전까지 주식시장에서 불공정행위가 발생하면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 법원에서 범죄 혐의를 다퉜다. 법정에서 위법성을 입증하기까지 보통 2~3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다시 주가 조작에 나서거나, 범죄 수익을 빼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이에 위법성 입증이 용이한 행정처분(과징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와 법을 개정한 것이다.

금융위가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근거해 과징금을 부과하자 A씨 형제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8월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함상훈)는 "이들의 차익이 온전히 부당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라며 과징금 취소 판결을 내렸다. 이들의 범죄 수익을 산정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 불법으로 취득한 이득을 '불상'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귀책 사유가 있는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민법의 원칙에 근거한다. 주가 조작으로 얻은 이익과 실적 개선 등 호재로 얻은 이익을 구분해야 하는데, 현행법상 부당이득 산정 방식을 명시한 법 조항이 없다.

부당이익 산정 등 내용 담은 법안 발의…과징금 부과 절차 놓고 반대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윤관석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부당이익 산정 방식을 규정하는 법안을, 윤 의원은 3대 불공정행위(미공개중요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에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안을 내놓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두 법안을 동시에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정무위의 같은 당 A 의원이 반대한 것이다. A 의원실은 당시 법안 통과를 반대했던 이유에 대해 "현재 주가 조작 등 불공정행위가 발생하면 검찰이 사실 관계를 확정하고, 이를 근거로 금융위가 과징금을 부과한다"며 "행정법상 검찰이 아닌 행정기관(금융위)이 사실을 확정하고 법 위반이 발생하면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가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독립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A 의원은 금융위의 과징금 부과 절차가 합당하지 않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절차상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행위가 발생하면 '금융위(증선위)→검찰→금융위(증선위)' 순의 체계를 거쳐 과징금을 부과한다. 증선위가 불공정행위 혐의를 인지하고 검찰에 통보하면, 검찰이 수사 결과를 금융위에 전달한다. 금융위는 이를 바탕으로 과징금을 부과한다.

특히 A 의원실은 입법 취지를 고려해도 법안 통과는 옳지 않다고 버텼다. A 의원실 관계자는 "2018년 발의된 법안에는 '금융위는 검찰총장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통보 받은 후에 과징금을 부과한다'라고 명시했다"며 "검찰이 행동 조사에 공식적으로(법률상 명시) 개입(사실 관계 확인)토록 하면, 모든 행동 조사에 검찰의 개입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의원의 반대로 법안이 정무위 문턱도 못 넘는 사이 시간은 흘러 20대 국회가 저물었다. 결국 주가 조작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은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2020년 5월 모두 자동 폐기됐다. 국회의원의 임기나 회기가 만료되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은 모두 자동 폐기된다.

부당이득 산정 방식 담은 법안 정무위 통과…본회의 통과 여부 미지수

그 후 21대 국회에도 입성한 박용진 의원은 2020년 윤 의원의 과징금 부과 내용까지 담은 개정안을 제출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불공정행위 근절'을 국정 과제로 삼으면서 여당도 법안 통과에 힘을 보탰다. A 의원은 이번에도 법안에 반대했다. 그러나 21대 국회 들어 금융위와 법무부 관계자가 정무위 법안소위를 찾아 협의하는 과정에서 '검찰을 통해 사실 관계를 확정한다'는 문구를 법률에 담지 않기로 하자 찬성으로 돌아섰다. 박용진 의원이 2018년 발의한 법안이 5년 만에 정무위를 간신히 통과한 배경이다.

박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불공정거래에 따른 부당이득 산정 방식은 위법 거래로 발생한 총수입에서 그 거래를 위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신 유형별로 대통령령에서 산정 방식을 정해 법적 분쟁 여지를 줄이는 방식이다. 이 법안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 예정이라 법 시행 당시 수사 중이거나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불공정거래로 부당이득을 취한 사람들의 처벌 근거가 명확해질 전망이다.

발의된 법안은 관련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SG발 주가 폭락 사태로 주가 조작 관련 법안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5월 임시 국회가 열렸지만 세부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방법이 없진 않다. 법사위로 넘어간 법안을 60일 이내에 심사하지 않으면 소관 상임위에서 표결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다. 이 때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여야 모두 법안 통과에 공감대가 있어 본회의 직회부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 발의에 찬성한 한 의원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않느냐"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주가 조작 범죄자로부터 부당이득을 환수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고 말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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