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1>-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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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아시아경제가 이번 주 '하루만보 하루천자'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천자 필사 콘텐츠는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다.
투르게네프는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등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소설을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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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아시아경제가 이번 주 '하루만보 하루천자'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천자 필사 콘텐츠는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다. 투르게네프는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등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소설을 많이 썼다. 그가 말년에 창작한 산문시들은 투르게네프 특유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환상적 이미지 등이 대가의 솜씨로 응축돼 있다는 평을 받는다. 국내 러시아문학 최고 권위자 조주관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 2018년 투르게네프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산문시 83편 전편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역했다. 그 가운데 "융프라우에도 핀스터아르호른에도 아직 인간의 발자취가 없었다"로 시작하는 산문시 <대화>이다. 글자 수1002자.
알프스 정상…… 온통 험한 봉우리들의 연속…… 산들의 최중심지.
산 위로 펼쳐진 연옥색의 말 없는 밝은 하늘. 매서운 강추위. 반짝이는 얼어붙은 눈. 그 눈을 뚫고 솟아난 얼음 덮이고 비바람을 견뎌 낸 준엄한 바윗덩어리.
지평선 양쪽에서 떠오른 두 바윗덩어리, 두 거인은 융프라우와 핀스터아르호른이다.
융프라우가 이웃에게 말한다.
"뭐 새로운 소식 없소? 당신이 더 잘 보이잖아. 거기 아래쪽은 어떻소?"
한순간 몇 천 년이 지나간다. 핀스터아르호른의 대답이 울려 퍼진다.
"꽉 들어찬 구름이 지구를 덮고 있다네…… 기다리게!"
한순간 다시 수천 년이 지나간다.
"자, 지금은 어떻소?" 융프라우가 묻는다.
"이제 보이는군. 저 아래쪽은 여전하네. 얼룩덜룩하고 작기만 하지. 물은 푸르고, 숲은 검고, 쌓아 올린 돌무더기들은 잿빛이네. 주변에는 여전히 딱정벌레들이 우글거리지. 알다시피, 아직도 당신이나 나를 한 번도 더럽힌 적 없는 저 두 발 달린 것들이라네."
"인간들?"
"그래, 인간들."
한순간 수천 년이 흐른다.
"자, 지금은 어떻소?" 융프라우가 묻는다.
"딱정벌레들이 약간 적어 보이네." 핀스터아르호른의 대답이 우렁차다.
"아래는 더 선명해졌어. 물도 줄고, 숲도 드물어졌다네."
한순간 다시 수천 년이 지난다.
"무엇이 보이오?" 융프라우가 묻는다.
"우리 주변이 아주 깨끗해진 것 같네." 핀스터아르호른이 대답한다.
"저 멀리 계곡 따라 여전히 얼룩이 있고, 뭔가가 살짝 움직인다네."
"그러면 지금은 어떻소?" 한순간 수천 년이 지나자, 융프라우가 묻는다.
"이제는 좋아." 핀스터아르호른이 대답한다.
"어디나 깨끗해졌고, 어딜 가나 완전히 하얗고……. 어디에나 모두 우리 눈이지. 눈과 얼음이 고르게 있다네. 다 얼어 버렸어. 이제는 됐어, 잠잠하다네."
"좋아요." 융프라우가 중얼거렸다. "노인장, 그건 그렇고 우리도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지요, 잘 시간이오."
"잘 시간이네."
거대한 산들이 자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도 영원히 침묵하는 대지 위에서 자고 있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조주관 옮김, 민음사, 1만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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