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카 시트로도 팔린다…"전염병 위험, 이 동물 사육 말라"
동물복지 문제를 해결하고 인수공통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국내 농가의 오소리 사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런던 동물학회 산하 동물학연구소의 조슈아 엘프스-파월 연구원과 서울대 수의과대학 이항 명예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최근 국내 오소리류 사육 실태를 정리한 논문을 '아시아-태평양 생물다양성 저널(Journal of Asia-Pacific Biodiversity)'에 발표했다.
논문에서는 2001~2020년 국내 오소리 사육농가 숫자와 사육 두수 변화 추세를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자료와 농림사업정보시스템(AgriX) 자료를 활용해 분석했다.
또, 네이버·구글·다음 등 인터넷 포털을 검색, 오소리 관련 상품(파생 제품)의 온라인 판매 실태도 조사했다.
27개 농가에서 1775마리 사육
사육 농가 수는 2002년 182가구에서 2018년 34가구로 꾸준히 감소했고, 사육 오소리 숫자도 2005년 7591마리나 2013년 6939마리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지만 농가가 오소리 사육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서는 농림부 통계를 인용, 2020년 말 사육 오소리 숫자를 1975마리라고 밝혔다.
또, 농림사업정보시스템(AgriX)에서는 국내 사육 오소리 숫자가 3937마리로 나타나 농림부 통계와 큰 차이를 보였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2021년 말 현재 농림부 통계에는 전국 27개 농가에서 모두 1775마리의 오소리류(類)를 사육하는 것으로 돼 있다.
연구팀은 또 국내 17개 전자상거래 쇼핑 플랫폼에서 오소리 관련 제품이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방·화장품·식품·영양보충제 등으로 사용되고, 가죽은 자동차 시트 커버로, 털은 면도솔 등으로도 활용됐다.
연구팀은 "한국 내 오소리 사육은 반달가슴곰의 곰 쓸개 채취 금지와 맞물리면서 1990년대 본격화됐고, 고기나 담즙 등 오소리 신체 부산물들이 합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오소리는 곰을 대체해 의도적으로 사육하고 상업적으로 거래하는 유일한 사례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오소리 사육 숫자가 줄고 있지만, 한국은 화장품 시장 규모가 크고 세계적인 화장품 수출국이기 때문에 소비자 수요 변화에 따라 사육 숫자가 다시 증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 감염 밍크처럼 양방향 전파 우려
야생 동물 농장에서 탈출하거나 풀려난 동물은 질병의 확산을 촉진, 그중 일부는 야생 동물 개체군에 인수공통전염병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포유류 중에서도 식육목(食肉目, Carnivora), 즉 고기를 먹는 종류는 다양한 인수공통 병원균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오소리가 속한 족제빗과 동물에 의한 전염병 확산 위험이 강조되고 있다.
2004년 사스(SARS, 급성호흡기증후군) 때는 흰족제비오소리(Melogale moschata)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잠재적 공급원으로 지목됐다.
지난 2020년 덴마크 밍크 농장에서는 코로나 19가 발생, 사람과 동물 양방향으로 질병 전파의 위험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개별 오소리 농장에서 농민들이 직접 오소리를 도축하고 있어 위생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사육 중인 오소리가 야생으로 탈출할 경우 토종 오소리의 유전자를 오염시킬 수 있다.
토종 오소리와 같은 종이라도 중국 등에서 수입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사육을 하면 야생 오소리 밀렵을 줄일 수 있다고 일부에서 주장하지만, 오소리 파생 제품의 합법적 거래가 지속하는 한 야생 오소리의 불법 포획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육 중인 오소리는 번식 속도가 느려 야생 오소리를 잡아 수요를 채우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전남 장성에서 오소리 30마리 등 야생동물을 대량 보관하고 있던 밀렵꾼이 적발됐다.
"사육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오소리가 땅을 파고 탈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사육 시설 바닥에 콘크리트를 치고, 번식을 유도하기 위해 암컷 오소리에 호르몬을 주입하도록 조언한 것은 동물의 기본적인 건강과 기능, 동물의 정서 상태, 동물이 적응 능력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이항 교수는 "오소리 사육 농가들에서 방문을 거부하는 바람에 오소리류의 유전자 검사나 사육 실태 조사는 불가능했다"면서 "좁은 곳에서 집단 사육되는 오소리가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이 저하되면 병원균을 급속하게 전파할 수 있고, 변이 바이러스가 만들어져 확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오소리 사육과 거래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이동 상황에 대한 표적 연구 강화" 등을 강력히 권장했다.
연구팀은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가 2026년까지 한국의 모든 곰 농장을 폐쇄하기로 한 것처럼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이 오소리 사육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경과 기간을 제시하고, 농가에 금전 보상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제언했다.
연구팀은 "소수의 농가에서만 오소리를 사육하고 있고,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평균의 거의 3배인 한국에서 오소리 유래 제품의 거래 금지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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