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선용 법안 발의 '범람' 수준…국정 '12 입법'은 표류 중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동안 국회 입법 성과가 같은 시기 문재인 정부에 비해 저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현역 의원의 ‘생색내기’용 법안 발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이날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법안 개수는 562건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1년(785건)에 비해 법안 처리 실적이 30% 가까이 줄어들었다.
‘정부 입법’에 국한해 살피면 성적표는 더 초라하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1년간 국회에 제출한 법안(144개) 가운데 처리된 것은 단 36건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는 같은 시기 71건을 처리했다. 정부 정책 추진 동력이 반 토막 난 셈이다.
하지만 개별 의원의 법안 발의는 ‘범람’ 수준이었다. 특히 올해 초부터 이날까지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총 2378건으로 작년 동기(1181건) 대비 무려 2배가량 폭증했다. 국회 관계자는 “내년 총선 공천 심사 과정에서 의원 평가 지표로 활용될 수 있는 ‘법안 발의 건수’를 채우기 위해, 의원들이 무더기로 법안을 쏟아내고 있는 탓”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런 ‘사상 최악 비효율 국회’ 원인으로 여소야대 지형을 지목한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실장은 “대통령제와 여소야대 지형이 불협화음을 최대치로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의석수로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면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식의 대치가 내년 총선까지 지속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한 해 동안 ‘문재인 표(標)’ 법안이 ‘윤석열 표’보다 더 많이 처리되는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당초 문재인 정부에서 제안됐던 79건의 정부 법안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여소야대 지형을 지렛대 삼아 처리된 것이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이어 방송법, 노란봉투법 강행 처리도 벼르고 있다.
반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올해 안 입법을 목표했던 12건의 국정과제는 대다수가 표류 중이다. 나라 살림의 건전성을 규율할 ‘재정준칙’(국가재정법 개정안)은 도입부터 민주당 반대로 좌초된 상태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서울 신당역에서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이러한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하라”며 법무부에 보완을 지시하며 정부가 지난 2월 제출한 ‘스토킹범죄처벌법 개정안’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 머물고 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과반 의석을 무기로 자신들의 숙원 법안을 털어버리려고 작정을 한 상황”이라며 “정부·여당의 입법주도권이랄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된 정책실장의 빈자리를 언급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간소화’을 기치로 문재인 정부의 3실장 체제에서 정책실을 폐지했다. 하지만 “국정과제를 이끌어갈 정책 조타수(操舵手)가 없다”는 지적이 커지자, 윤 대통령은 지난해 추석 연휴 직후 대통령실 개편에서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신설하며 뒤늦게 정책 역량을 강화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 지도부의 정책 운용 능력 부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중진 의원은 “지난 야당 시절 때 당 정책기구 역량이 크게 약화했고, 그 뒤 정권 출범 뒤에도 ‘이준석 사태’로 비대위 등을 거치며 제대로 복원하지 못했다”며 “김기현 대표 취임 뒤에도 당 지도부가 온갖 구설에 휘말려 있는데 어떻게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겠나”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민의힘이 손을 맞잡을 ‘제3정당’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초기 1년 동안 민주당은 과반 의석은 아니었지만, 국민의당·바른정당 등 교섭단체를 갖춘 야당과의 연대를 통해 법안 처리가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115석)은 정의당(6석)·시대전환(1석)·기본소득당(1석)·진보당(1석) 및 무소속(6석) 등과 모두 연대해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다.
윤지원·전민구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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