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법피공(法避公)’이 가로막는 혁신

2023. 5. 9. 04: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근데 법적으론 제게 책임이 없어요." 문제가 터진 후 관련 고위직의 말끝에 깔리는 결론.

법(法)적 책임만 피(避)하면 된다는 공(公)직자, '법피공'이 가득하다.

고위직 법피공들은 종종 무죄 추정의 원칙 뒤에서 버티려는 형사 피의자 모습까지도 보인다.

비(非)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자이므로.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일중(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근데 법적으론 제게 책임이 없어요.” 문제가 터진 후 관련 고위직의 말끝에 깔리는 결론. 법(法)적 책임만 피(避)하면 된다는 공(公)직자, ‘법피공’이 가득하다. 법만 외치는 그들을 보니 거꾸로 미국 예일대 로버트 엘릭슨 교수의 역저 ‘무법의 질서(Order Without Law)’가 떠오른다. 미국 섀스타카운티의 목장과 주변 농장 간 잦은 분쟁을 법 없이도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다년간의 현장 연구로 그가 입증한 협조적 게임의 설득력이 컸다.

이게 곧 법 무용론은 아니다. 섀스타 주민의 협상에서도 형법상 협박이나 사기는 금지다. 협상이 실패하면 결국 법원행이라는 점도 안다. 끝점에선 관련 실체법에 의해 잘잘못이 가려질 것도 알므로 자체 협상의 절차와 내용이 결국 그 법들에 영향을 받는다. 즉 애초 법을 잘 만들어야 효율적 협상이 타개될 가능성이 커지니, 역시 노벨상을 받은 로널드 코즈 교수가 제시한 “법이 경제(성과)를 조정한다”는 명제도 확실히 유효하다.

그러나 법원에서의 다툼은 비싸게 먹힌다. 제3자 설득에 추가 비용이 든다. 따라서 법적 권리의 기본은 정확히 규정하되 되도록 자체 협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효율적이다. 불행히도 이 효율성을 파괴하는 두 가지 만능주의가 요즘 팽배하다. 첫째, ‘입법 만능’이다. 하지만 임대차보호법에서 여실히 보듯 시장원리를 짓밟는 악법의 결과는 비참해진다. 입법 오류를 때우느라 자원이 낭비되고 생채기는 죄다 국민 몫이다. 소위 ‘검수완박법’처럼 미비의 폭주법 폐해도 똑같다. 현실에 대한 몰이해와 정치적 술수 탓이다.

둘째 유형이 ‘법피 만능’이다. 과정은 엉망이 돼도 재판에서 불법 딱지만 면하면 장땡이라는 맹신. 논어에 소인은 구저인(求諸人), 즉 남에게 책임 돌릴 궁리만 한다고 했다. 국가수사본부장 인선, 급조된 은행 관치, 근로시간제 변덕, 전세금 탈취 참사, 주가조작 등 한결같다. 혼동 주도와 감독 방기의 공복들은 남 탓만 해댄다. 하나 범법이 아니라고 면책은 결코 아니다. 도의적으로는 물론 고위직은 정무적 책임도 진다. 책임을 오롯이 진 선배들은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파렴치가 초래할 비효율을 염려한다.

이태원 참사는 공권력으로 막기 힘들었다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즉각 단정했다. 불가항력이면 무책임이니. 폼나게 던지고픈 사표 발언에 대한 그의 해명은 언론 책임론으로 들렸다. 시스템 문제로 돌린 청문회 답변도 그렇다. 다수의 국민은 정점에 그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늑장 도착 지적에는 지나버린 골든타임을 주장했다. 엎질러진 물이란 항변일 테다. 고위직 법피공들은 종종 무죄 추정의 원칙 뒤에서 버티려는 형사 피의자 모습까지도 보인다. 생경한 장면이다. 책임을 느낀다는 정치인들도 똑같다. 한낱 말뿐이고 상대 잘못을 욕하며 자기 걸 추하게 퉁친다. 큰 힘에는 큰 책임.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주인공들이 줄곧 외쳤던 말이다.

법피공에겐 늘 입증이 먼저이리라. 그럼 흔적과 결과가 중요할 테고 본인 위험을 회피코자 새 도전들에 어깃장도 곧잘 놓지 싶다.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위기 상황에서도 구제보다는 자기 보호막 치기에 열중했다. 그들은 또 유독 대통령 눈치를 보리라. 비(非)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자이므로. 반면 국민은 더 뒷전이라 서로 신뢰가 허접할 듯하다. 세상살이가 늘 그렇듯 신뢰가 떨어지면 윈윈 파트너십의 행정도 쪼그라든다. 통계로써 당장 증명할 수는 없으나 우울한 가설들이다. 법피공들이 득세하면 젊은 인걸일수록 공직에 등 돌린다. 역설적으로, 같은 땅 한국의 100대 기업들은 인재상의 원톱 덕목으로 ‘책임의식’을 꼽았다(대한상공회의소).

김일중(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