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폐광 후 쇠락한 마을에 희망 돼준 깊은 산속 ‘옹달샘 교회’
④ 강원도 영월 옥광교회
‘하늘 아래 첫 동네’ ‘구름이 여행하다 숨을 돌리는 곳’.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1088m) 중턱에 자리 잡은 김삿갓면 주문리에 붙여진 수식어들이다.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선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영동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국도로만 2시간여를 내달린 뒤에도 해발 630m에 위치한 마을까지 수십 번의 굽잇길을 돌고 돌아야 당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굽잇길 끝자락 갓길에서 만난 주민 오세천(73)씨의 이야기가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 단번에 각인시켰다.
“행정적으론 주문리지만 실제 이름은 달라요. 구름이 모이는 동네라고 해서 모운동(募雲洞)이라고 불리지요. 여기 살다 보면 구름 위에서 신선놀음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저기 보이는 버스는 하루에 딱 네 번 볼 수 있어요. 서른네 식구만 사는 동네인데 네 번이면 많은가요? 허허.”
모운동 마을은 옥동탄광이 활발하게 운영되던 1960~70년대 주민 1만여명이 거주하던 ‘도시’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1989년 옥동광업소가 폐광되면서 광부와 가족들, 광산 하청업자 등이 빠져나가며 졸지에 사라질뻔한 마을이 됐다.
폐광 후 쇠락한 마을에 다시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건 2007년 벽화 작업이 진행되면서부터다. 마을 이장과 주민들이 직접 나서 골목길에 꽃을 심고 집마다 벽화를 그리면서 황폐했던 판자촌은 아름다운 시골 마을로 변모해갔다. 이 마을 이장을 맡은 문현진(50) 옥광교회 목사는 부임을 위해 5년 전 처음 이곳에 왔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르막길 한 번 넘기 벅찬 차를 끌고 굽이굽이 올라오는데 이런 산골에 마을이 있기는 할까 싶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한참을 오르는데 눈앞에 구름이 양탄자처럼 둘러싼 마을이 나타나더라고요. 마치 동화 속 요정 마을 같았어요.”
옥광교회를 찾는 이들은 세 번 놀란다. 교회 입구를 문지기처럼 지키는 빨간색 트랙터에 놀라고, 그 옆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령 100년이 넘은 소나무의 자태에 놀라고, 60년 역사의 낡은 종탑과는 딴판인 문 목사 부부의 유쾌한 입담에 놀란다.
직전 이장이었던 김은미(52) 사모는 “솔방솔방이란 말에 ‘느긋하게 하는 산책’이란 뜻이 있는데 슬로우시티 영월에 딱 어울리는 말이라서 교회 앞 산책로에 ‘솔방솔방 쉼터’를 만들려고 한다”며 분주하게 걸음을 옮겼다.
60년 전에도 교회는 같은 자리에서 주민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희망의 푯대였다. 목숨줄 걸고 탄광으로 향하는 광부들 가족이 마음 기댈 곳도, 억센 광부들 세계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의 중재자가 돼주던 곳도 교회였다.
“탄광 사업이 활발하던 당시엔 죽을 때가 되면 교회 나온다고 했대요. 장례를 치러주니까요. 성도들이 손수 종이꽃 만들어 관에 붙여서 마을에 꽃상여가 나갔으니까요.”(문 목사)
주민 대부분 홀몸 노인, 평균 연령이 80대에 가까운 모운동 마을에선 문 목사 부부의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열리는 예배에 참석하고 나온 두 집사가 그 이유를 이야기보따리 풀 듯 설명했다.
“우리 목사님 같은 분 없지. 보일러 배관이 터지고 얼어붙으면 언제고 와서 뚝딱 고쳐주시고, 나이 90 먹은 집사님 예배당에 모시겠다고 등에 업고 가파른 길을 올라오시고. 지난번엔 옆집 할머니가 새벽 4시에 배가 아파 죽겠다고 난리가 났는데, 목사님이 후딱 차로 태워서 영월 시내 병원으로 안 갔으면 큰일 치를 뻔했지.”(심순희(83) 집사)
“목사님이 우리 동네 언니들 미장원 동무예요. 6~7명이 목사님 차 타고 시내로 머리하러 가는데 그날이 목사님도 머리 깎는 날이라니까(웃음). 운전으로는 1등이에요. 승합차 트럭 트랙터 못 다루는 게 없어. 최고예요 최고.”(김두하(82) 집사)
교회 입구를 지키는 트랙터도 문 목사가 주민들을 위해 직접 마련했다. 주민 대부분이 감자 옥수수 고추 농사를 짓는데 연로한 나이에 로타리(밭갈이) 작업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겨울엔 무릎 위까지 수북이 쌓인 눈을 치워주는 제설 작업에 투입돼 발 묶인 주민들을 해방해준다.
문 목사는 “지난해 아내가 이장을 맡은 뒤 조력자로서 응원하다 트랙터가 꼭 필요하겠다 싶어 페이스북에 ‘기도제목’으로 올렸는데 페친들이 3만원 5만원씩 후원해 준 후원금이 한 달여 만에 3800만원이 모였다. 트랙터와 유류 창고까지 준비하기에 딱 필요한 금액이었다”고 회상했다.
사역에 뭔가 필요할 때마다 불기둥 구름기둥 같이 채워지는 기적처럼 문 목사에게 모운동 마을 목회는 각별하다. 간호조무사, 자동차 정비공, 축산 농가에서 돼지 200여 마리 기르기, 용접공에 목공까지 자발적 N잡러로 청년기를 살아온 그에게 목회자로의 결단은 모운동 기적의 출발점이었다.
나이 서른여덟에 농촌 목회를 소명 삼아 신학생이 된 그가 안수받자마자 목회를 시작한 곳이 이곳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각종 TV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촬영지로 주목을 받으면서 정선 태백 삼척으로 이어지는 ‘운탄고도 1330’ 관광화 사업도 속도를 내 이장으로서의 어깨도 무겁다. 문 목사의 2023년엔 또 다른 결단이 어려 있었다.
“한 번은 마을분들이 경로당에 콩나물 비빔밥 해뒀다고 먹으러 오라고 청하시대요. 그러면서 ‘목사님이 참 좋아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는데 언제 떠나실랍니까’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제 목회는 시작도 여기고 끝도 여기라고요. 옥광교회가 옥처럼 빛나는 교회가 돼줘야지요. 누구라도 오면 힘과 희망을 얻고 갈 수 있는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교회로 하나님이 이끌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영월=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팬데믹 뚫고 부흥한 교회학교, 세대통합·현장·가정예배 힘줬다 - 더미션
- [EP19]헌금하러 왔다가 헌금 받고 가지요[개척자 비긴즈] - 더미션
- 이별 후 20년, 하늘로 띄운 편지엔 ○○이 적혀 있었다 - 더미션
- 독일서 첫 AI 목사가 설교했더니… “영성·감성 빠져 무미건조 기계 같아 불쾌” - 더미션
- [단독] 반동성애 의견 표현·종교의 자유에 재갈… 계정 영구 정지도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 온
- 초교파 목회자들 한자리… “반성경적 성혁명 저지” 전면에 - 더미션
- 한국교회 ‘액티브 시니어’가 뛴다 - 더미션
- 화상 치료·석박사 장학금… 20여년에 걸친 사랑 “이것이 선교다” - 더미션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