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으로 섬기는 농인 사역… 소리없이 강하다
주일인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지구촌교회(최성은 목사)에서는 매주 소수를 위한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농인 예배다. 여느 주일 예배와 다르게 농인 예배를 드리는 공간에는 의자 끄는 소리와 찬양 반주 음악, 수어 통역가의 음성만이 울려 퍼졌다. 농인 예배의 모든 순서는 수어로만 이뤄진다. 찬양부터 기도 설교 광고 축도까지 사람의 음성은 어디에도 없다. 이날 말씀을 전한 이주애(47) 전도사도 농인 사역자다. 예배에 참석한 농인 성도 30여명은 예배시간 내내 인도자의 표정과 수어에 집중했다. 설교 중간에 종종 수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성도도 눈에 띄었다.
한국교회 농인 예배 현주소는 어디일까.
6년째 농인 예배에 참석하는 이정이(68) 집사는 “대예배 때도 수어 동시통역이 제공되지만, 목사님과 통역사를 동시에 보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라며 “농인 예배에서는 목사님, 전도사님이 직접 수어로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예배에 집중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전국 청각·언어 장애인 수는 2021년 기준 43만4813명이며, 이 가운데 청각장애인은 94.7%(41만1749명)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언어 장애인 수는 2만3064명이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수어 통역사는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수어통역사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전국 시·도 수화 통역사 공인 자격 취득 현황(2022년 12월 31일 기준)’에 따르면 수어 통역사는 1973명에 그쳤다. 청각장애인은 매년 평균 2만여명씩 증가하는데 수어 통역사는 감소 추세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25명만이 자격을 취득했다.
그래서일까. 지구촌교회 농인 예배 담당목사인 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농인 사역은 선교 불모지 개척과 같다”고 표현했다. 기독교 농인 인구가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세대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이 교수가 한국교회를 향해 제시한 농인 목회의 핵심 키워드는 ‘5공’이다. 한국교회가 앞장서 소수집단인 농인 성도들과 ‘공생·공존·공유·공감·공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청인과 농인 구별 없이 함께 예배하고 신앙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앞서 지구촌교회에서 4년째 수어 동시 통역사로 섬기고 있는 김현숙 통역사는 “농인들을 바라보는 인식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인들은 장애인이기에 앞서 청인들과 다른 문화·언어를 영위하는 소수민족”이라며 “농인들의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수어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농인들을 위한 신앙 콘텐츠와 플랫폼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목사는 “수어 통역이 되는 신앙 콘텐츠가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목회 사각지대에 있는 농인들이 일상에서도 신앙의 허기를 해소할 수 있도록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어 통역을 겸한 제자훈련·성경공부를 하는 교회도 있다. 경기도 성남 선한목자교회(김다위 목사)는 등록 교인인 단 2명의 농인 부부를 위해 매 주일 오후 수어 제자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12주 과정인 제자훈련은 종강까지 단 3주 앞두고 있다.
담당 사역자가 음성으로 강의를 하면 이를 통역사가 수어로 통역한다. 농인 성도의 나눔도 이런 방식으로 통역돼 사역자에게 전달된다. 이들 부부는 매주 수어로 동시 통역되는 예배를 드리고 난 뒤 제자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교회에서는 3명의 봉사자가 농인 부부를 섬기고 있다.
이 교회 장애인 담당 사역자인 안재영 목사는 “많은 농인 성도들이 성경공부에 대한 갈망이 있다”며 “장애인 사역의 벽이 높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교회가 의지만 있다면 (성도들의) 영적 굶주림을 채워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전국적으로 수어 동시통역을 제공하는 교회는 20~30여곳, 기독교 전문 통역사는 30여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더 큰 위기를 막기 위해 교회에서 기독교 전문 수어 통역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 두 교회를 비롯해 수어 동시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회로는 충현교회(한규삼 목사) 남서울은혜교회(박완철 목사)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 부산 호산나교회(유진소 목사)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 등이 있다.
성남=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공회 수장 찰스 3세 대관식, 종교 다양성 보여주다 - 더미션
- 소득은 ‘주신 선물’… 열린 가정회의 통해 지출 순위·비율 정하길 - 더미션
- 서점서 ‘정명석’ 작가 정보 삭제…JMS 서적엔 어떤 내용 있었나 - 더미션
- 3년 만의 호스피스 환우 상봉… “복음 통해 천국으로 안내하죠” - 더미션
- 고금리 시대 반가운 무이자 대출… 서민 어깨 펴주는 교회 - 더미션
- [미션 톡!] 국내 보수 교단 유리천장 여전히 단단… 실금도 못냈다 - 더미션
- [EP12] 키다리 아저씨가 왜 거기서 나와? [개척자 비긴즈] - 더미션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
- ‘2024 설 가정예배’ 키워드는 ‘믿음의 가정과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