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16) 데이트 한번 없이 8년 만에 만나 치른 ‘소포 결혼’

유경진 2023. 5.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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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초 성서유니온 윤종하 총무님이 편지를 보냈다.

그때 나나 양가의 경제적 상황으로는 내가 한국에 나가서 결혼식을 치른 후 둘이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 올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신부를 네덜란드로 오게 해서 식을 올리기로 했다.

100% 중매 결혼이라 할 수는 없지만 8년이나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데이트 한 번 하지 않고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친구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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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하 총무의 중매로 결혼 성사 됐지만
한국에서 결혼할 만큼 경제적 여유 없어
신부만 네덜란드로 오게 해서 혼인예배
과거 한국의 전통 혼례식 장면이다. 손봉호 교수는 1970년대 과거 자신이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던 박성실양과 네덜란드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국민일보DB


1970년 초 성서유니온 윤종하 총무님이 편지를 보냈다. 박성실 양과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박양은 윤 총무와 내가 다녔던 서울중앙교회 교인으로 연세대학교 재학생이었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는 경기여고 1학년이었는데 잘 생기고 조용하며 온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남학생이 모두 은근히 좋아했으나 본인은 초연했다. 나도 관심이 없지 않았으나 중·고등부 지도교사였을 때 가르친 학생이었으니 내색을 할 수 없었고 이성으로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가 쑥스러웠다. 그리고는 만나보지도, 소식을 듣지도 않은 채 8년이 흐른 것이다.

그때 나는 마음에 둔 다른 여성이 없었고 박 양이 어렸을 때 보여준 성격이나 그 어머니 장옥춘 권사님의 인품과 신앙을 고려해서 “부모님이 동의하시면” 결혼하겠다고 편지했다. 얼마 후 부모님의 동의를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혼 절차에 들어갔다. 그때 나나 양가의 경제적 상황으로는 내가 한국에 나가서 결혼식을 치른 후 둘이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 올 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신부를 네덜란드로 오게 해서 식을 올리기로 했다. 마치 신부를 주문해서 결혼하는 것 같다 해서 그런 것을 ‘소포 결혼’이라고 했다.

100% 중매 결혼이라 할 수는 없지만 8년이나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데이트 한 번 하지 않고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친구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놀랐다. ‘미래 사회’란 유명한 책을 쓰신 판 리슨(H. van Riessen) 교수는 편지까지 따로 보내 “자네가 그런 결정을 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일 것이다. 자네의 그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고 하시기까지 했다.

어쨌든 ‘소포’는 무사히 도착했고 친구들이 나의 결정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 나라 제도에 따라 시청에서 이뤄진 공식 결혼식에는 주례를 맡은 부시장이 영어로 주례사를 해 줬고, 기숙사 근처 교회에서 드린 혼인예배에는 한국 대사를 비롯해서 교민들 대부분, 반 퍼슨 교수 내외분, 그리고 같이 성경공부를 했던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영국 친구들이 모두 참석해서 별로 외롭지 않았다. 비록 양가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주례는 그때 네덜란드에서 신학을 공부하시던 고 차영배 목사님(총신 신대원 교수)이 맡아 주셨는데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한 시간, 네덜란드어로 한 시간 길게 하셔서 하객들이 좀 고생했다. 다행히 그 나라 결혼식에서는 신랑과 신부는 의자에 앉을 수 있었으므로 우리는 잘 견딜 수 있었다. 신부가 입은 한복과 축하연에 내놓은 한과도 인기를 끌었다. 이래저래 우리 결혼식은 친구들 사이에 흥미로운 화젯거리가 됐고 새 살림에 필요한 소품들은 그 나라에 특이한 결혼 축하 방식에 따라 장만 됐다.

어쨌든 연애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들, 딸 잘 낳고 50년이 훨씬 넘도록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크게 감사한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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