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당신은 어른입니다
칼럼을 써달라고 부탁받았다. ‘도대체 왜 나를?’이라 묻고 싶었으나 묻기도 전에, 40대 필자는 유일하다며 과거와 현재의 필진을 소개한다. 그런데 이름들이 낯익다. 남몰래 흠모하던 선생님들의 이름이다. 도대체 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부탁인지 위협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명단의 길이와 이름들의 무게에 반비례해 수명이 줄어들고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일까?’ 글만이 아니다. 말도 그렇고 나아가 직업, 역할 등도 그렇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유일한 이유는 결국 ‘젊음’이었다. 아마 ‘소리 없는 아우성’이나 ‘뜨거운 아이스티’에 비견될, ‘단정한 객기’ 같은 것을 원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신선하나 선을 넘지 않는 그런 것 말이다. 그게 적당히 사회화된, 자신을 이미 어른이라고 규정한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학습 방식이니까. 어른이라 불리는 이들은 ‘좋음’이나 ‘옳음’보다는 솔직히 ‘불편하지 않음’이 더 중요하지 않던가.
다음으로 물었다. ‘무엇을 쓸까?’ 물론 ‘자유’라고 들었다. 그래서 좋았다. 사유와 표현에 재갈 물리지 않고 기꺼이 지면을 자유롭게 활용해도 된다는 이야기이기에. 하지만 어른들은 안다. 자유를 ‘자유이용권’처럼만 생각하는 아이들과 다르다. 가이드라인 없는 ‘자유’는 불안이자 무책임을 가장한 무제한의 책임임을 말이다. 그래서 내게도 이내 두려움이 찾아왔다. 고민 끝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는 말을 기꺼이 따르기로 했다.
봄가을이면 종종 캠핑을 간다. 이번 봄 역시 가려고 부단히 시도했다. 그런데 날씨 문제로 두 차례나 실패했다. 심지어 캠핑장 앞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러다 지난주 드디어 성공했다. 모든 것을 다 세팅한 후 아내와 통화를 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들 녀석이 나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아빠가 이번에는 집에 안 돌아오게 해주세요.”
웃음이 나는 녀석의 기도 앞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게 바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어린아이’다움 아닐까. 어른의 눈으로는 명징하지도 않고 굳이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이나 그냥 뭐든 그분께 말하는 것. 물론 어린아이들은 기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서 어른들처럼 그렇게까지 삐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도대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모르겠다. 이래서 아이들이 주변에 있어야 하나 보다.
인간성의 본질을 자각하게 만드는 하나님 형상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에. 아니, 그보다 우리가 너무 어른인 척하는 것은 아닐까. 고로 주변에 어린이를 찾아서 그들과 대화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들의 엉뚱함과 어이없음이, 분명 경직되어 버린 우리네 인간성을 자극할 것이기에. 그리고 그 대가로 선생님들께 작은 사탕 하나라도 선물하는 건 어떨까 싶다. 어린이날은 지났지만 어떠하리. 배움에는 늦음이 없다. 그리고 부끄러움도 없다.
신문은 이미 어른들의 매체다. 그것도 연세가 지긋한 어른. 그래서 분명 독자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왜 나일까’라는 질문이 더 두렵게 다가왔다. 때문에 나는 믿기로 했다. 어른은 어린아이의 모습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보는 이들이다. 그런데 분명 당신은 그런 의미의 어른이 확실할 것임을 믿기로 했다.
‘무엇을 쓸까’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이다. 어른은 필부(匹夫)의 이야기에서도 지혜를 발견하고, 또한 어른은 ‘어린이날’에는 그들의 근원인 어버이를 떠올리며, ‘어버이날’에는 그들을 어버이로 존재하게 한 아이들을 떠올리는 이들이기에. 이처럼 나는 나를 어른으로 만들기보다 마주한 이들을 어른으로 만들어감으로써 지면에 놓인, 그리고 세상에 놓인 내 두려움을 극복해보련다. 중언부언처럼 보일 수 있을 이 글에서 또한 당신은 분명 무언가를 얻을 것이다. 당신은 어른이기에.
손성찬 목사(이음숲교회)
◇약력=총신대 신학과, 총신대 신대원(M Div) 졸업. 백석대 기독교전문대학원(Th M) 수료. CBS라디오 ‘1분 묵상’ 작가, ‘사랑하느라 힘든 당신에게’(두란노) ‘모두를 위한 기독교 교양’(죠이북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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