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미 간 차세대 기술 대화 창구 기대 크다
지금 한·미 간 여러 경제 현안이 있다. 사안은 다 다르지만, 그 흐름은 대략 비슷하다. 미국이 새로운 정책과 방침을 정한다. 이에 맞춰 의회가 입법한다. 이를 시행하고자 해당 부처가 세부 규정을 도입한다. 우리 기업과 정부는 당황한다. 여러 루트로 미국과 협의에 나선다. 미국 측 답변은 주로 “입법이 끝났다”, “의회 소관이다”, “우리 부처 권한 밖이다”, “한국 입장을 이해한다” 등이다. 우리 입장을 전했고 어찌 보면 미국도 상당히 설득된 듯하지만, 결국 이미 늦었거나 뾰족한 해결책이 없거나 좀 더 기다려 보자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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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보좌관급 기술 협의체 신설
한미 기술동맹 업그레이드 상징
기술 현안의 입체적인 해결 기대
지금 모멘텀 살려 조속 가동해야
」
문제는 이 흐름이 특정 사안이나 법률에만 국한되지 않고 반복된다는 점이다. 지금 초미의 관심사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지원법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돼도 또 다른 장애물이 튀어나와 비슷한 사이클을 따라갈 것이다. 이미 미 의회에서 새로운 법률 논의가 또 시작됐다는 소식이다. 공급망 강화, 수출통제 등 여러 쟁점이 다양한 변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가만히 보면 미국도 당황하는 듯하다. 일단 새 법률과 규정을 던져 놓았는데 예상을 넘는 반응에 고민에 빠지는 모양새다. 한국이 조목조목 따지며 전 방위적으로 나서니 적잖이 곤혹스러울 것이다. 미국 역시 지금 하나하나 직접 부딪히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일종의 ‘경험을 통한 학습 (learning by doing)’의 모습을 보인다.
왜 이럴까. 지금 진행되는 일들은 그 전에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아마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국내법이든 협정이든 참고할 준거점이 없다. 기업들도 처음 접하는 형국이다. 백지에 급히 그린 그림에 시행착오가 이어지고 오해와 불만은 커진다.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최신 난제들을 그 핵심부터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협의 기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양국 간 여러 협의체가 있다. 외교, 산업 당국 간 협의 채널과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도 무려 11개의 위원회가 있다. 그러나 지금 눈앞 현안들은 여기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새로운 내용들이다. 어디에서 누가 다뤄야 할지도 불분명하다. 어떤 식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결론을 내야 할지도 애매하다.
그래서 지금은 현안이 생기는 대로 양국이 사안별 논의에 급급하다. 파편적·분절적·일회적 대화와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래선 해결책이 나와도 임시적 방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비효율적이고 오해를 쌓기 쉽다.
그런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제가 일단 마련됐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입된 국가안보보좌관급의 ‘차세대 핵심 신흥 기술 대화’다. 이 협의체가 계획대로만 움직이면 그간의 갈증을 해소할 여지가 있다. 현안에 대해 양국이 포괄적·통섭적·입체적 해결책을 여기서 모색해 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의 혼돈 상태엔 창의적 해결책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그 출발점은 진솔한 의견 교환과 접점 모색을 위한 열린 자세다. 이 협의체가 이를 위한 일종의 태스크포스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남은 일은 이 협의체가 제 기능을 발휘토록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어렵사리 만든 모멘텀을 살리는 작업이다. 이런 합의는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열의와 기세가 쉽게 휘발된다. 조금만 멈칫하면 양국 간 수많은 협의체 중 하나로 소리소문없이 쪼그라들 것이다. 1년에 한 두 차례 만나 현안 점검하는 정도라면 기존 대화 창구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상시 소통으로 실질적인 내용을 다뤄야 한다. 올 하반기 미 대선 경쟁이 열기를 더하면 미국 측 당국자들은 더 소극적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어떻게든 지금 밀어붙여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곧바로 세부 논의 사항과 협의 방식, 일정을 정해 협의체를 조속히 본궤도에 올릴 필요가 있다. 당연히 현안인 IRA와 반도체지원법 관련 사항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협의체는 양국 정상의 직접적인 관심 레이더 아래 가동돼야 한다. 정상 간 합의 내용이니 일단 양국 여러 부처가 경각심을 갖고 나설 것이다. 앞으로 논의와 그 결과에 대해 양국 정상 차원의 지속적인 확인과 소통이 필요하다. 합의대로 양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관장한다면 기대해 볼 만하다.
이 기제가 본격 가동되면 이제 기술동맹 관련 주요 현안들은 이리로 모아 논의하고 매조지할 수 있다. 일종의 창구 단일화다. 그간 협의에서 흔히 듣던 “우리 소관이 아니다” “확인해 보겠다”는 등의 맥빠지는 반응을 꽤 줄일 수 있다.
힘만 제대로 실린다면 이번에 만든 협의체는 작금의 여러 난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잠재력이 있다. 여러 현안에 묻혀 스치듯 지나갔지만 의미 있는 성과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군사·경제 동맹에서 첨단기술동맹으로 도약했다. 그 첫걸음을 이 협의체가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재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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