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의 시선] 탐욕의 시대, 버핏의 조언

김창규 2023. 5. 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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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경제에디터

2006년 10월 작전세력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 눈을 돌린다. 자동차 등 여러 기계에 들어가는 베어링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분기 매출은 50억원대, 영업이익은 적자였다. ‘작전’ 덕에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이 회사 주가는 매일 2~6%씩 올랐다. 보통 주가 조작 대상 기업이 가짜 정보 등으로 연일 상한가를 기록한 것과 다른 흐름이었다. 이 회사 주가가 연일 오르자 개인투자자가 몰려들었다. 회사가 “주가에 영향을 줄 사안이 없다”고 공시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 SG발 사태 17년 전 ‘루보’ 판박이
돈 넘쳐나고 작전세력 처벌 약해
개인투자자, 세력의 쉬운 먹잇감
“투자로 걱정하는 밤 보내지 말라”

‘묻지마 투자’가 시작되니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올랐다. 작전세력이 주식을 팔아치워도 개인투자자는 더욱 몰렸다. 주가는 6개월 만에 1000원대에서 5만원대로 수직상승했다. 시가총액도 5000억원을 넘어섰다. 결국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면서 ‘6개월의 작전’은 막을 내렸다. 주가는 한 달 만에 2000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루보 주가조작’ 사건이다. 다단계 사기 ‘제이유 사건’ 관련자가 1500억원대 자금을 끌어모은 뒤 700여개 차명계좌를 동원해 주가를 조작한, 당시로선 역대급 사건이었다. 이들은 제이유 회원을 상대로 투자설명회를 열었고, 제이유 회원은 자체 설명회를 통해 일반인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작전에 휘말린 줄 모르고 루보 주식을 뒤늦게 사들인 투자자는 막대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17년 전 ‘루보 사건’을 떠올린 건 최근 벌어진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 때문이다. 9개 종목 주가 폭락으로 불거진 대규모 주가조작 의혹은 루보 사건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특정 세력이 조직적으로 막대한 자금을 동원했다. 단기 급등이 아니라 오랜 기간 꾸준히 주가를 올려 감독당국의 감시망을 피하려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른 사람의 증권계좌 정보를 건네받아 ‘통정거래(매수자와 매도자가 가격을 정해 일정 시간에 주식을 매매하는 수법)’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마찬가지다. 증시에서 이런 ‘작전’은 반복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지만 시장엔 돈이 넘쳐난다. 시중에 풀린 돈은 올 1월에 9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하긴 했다. 하지만 2월에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 2월 광의통화(M2) 평균 잔액은 3819조5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12조7000억원(0.3%) 증가했다. 지난 1월에 3조3000억원(0.1%)이 감소한 이후 한 달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 이렇게 시중에 풀린 돈이 다시 늘어나는 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로 정기예·적금 등으로 몰리던 돈이 다시 주식·채권으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증권 관계자에 따르면 요즘 언제 투자해야 좋으냐는 문의가 부쩍 늘었고, 고위험 상품에 뭉칫돈을 쏟아붓는 개인투자자도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돈은 넘쳐나는데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탐욕이 싹트는 이유다. 미국 CNN비즈니스의 ‘공포와 탐욕 지수’도 ‘탐욕’ 구간에 진입했다. 이 지수는 주가의 강도·폭 등 7개 지표를 이용해 투자자의 심리를 지수화한 것으로 ‘극심한 공포’ ‘공포’ 등 5단계로 나뉘어 있다.

요즘처럼 시장이 불안정할 땐 돈을 많이 번 사람도, 큰 손해를 본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투자 성공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철저한 연구와 깊이 있는 분석 없이 묻지마 투자에 나선다. 여기에 작전 세력 사이엔 당국에 발각돼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까지 자리 잡았다. 자본시장법에서 주식 시세조종 등 불공정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몰수한다고 규정하면서도 부당이익을 어떻게 산정할지 기준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개인투자자는 작전세력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지난해 주식시장을 도박장에 비유하며 비판했던 워런 버핏(92)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자신의 부고 기사를 미리 써본 뒤 그에 맞춰 사는 방법을 찾아봐라. (…) 투자로 걱정하는 밤을 보내서는 안 된다. 빚을 피하라. 그리고 한 번의 실수가 당신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

버핏의 투자 파트너인 찰리 멍거(99) 부회장도 “부자가 되는 건 간단하다. 버는 것보다 적게 쓰고 유해한(toxic) 투자를 하지 말라. 만약 그런 투자를 유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손절’하라. 인생 내내 배우기를 멈추지 말라”고 권했다. 오랜 세월 투자를 하며 대가의 반열에 오른 투자의 귀재도 투자의 기본을 강조한다.

김창규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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