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현의 이코노믹스] 뱅크런, 바이러스성 공포 차단해야 막는다

2023. 5. 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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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원인과 해법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으로 파산했고, 뒤이어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역시 파산해 JP모건에 인수됐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과거의 뱅크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나면서 ‘디지털런’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은행 파산의 특성은 전염성

〈그림〉에서 보듯 은행파산은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다만 대공황이나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에서 보듯 특정 시점에 은행 파산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은행파산의 가장 큰 특성이 전염성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 뱅크런은 공포에 기인, 예측 불가
은행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발생

지불준비·예금보호로는 역부족
중앙은행 초동대응이 가장 중요

가짜뉴스·루머에 강경대응 필요
신뢰 구축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

은행 파산의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은행 건전성과 관계된 문제로 재무상태표의 차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즉 은행이 보유한 자산가치의 폭락으로 자본잠식이 발생하는 경우다. 과거 1800년대와 1900년대 초 영국과 미국에서 빈번히 발생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주로 투자은행에서 일어났다. 최근 크레디트스위스가 동일한 이유로 무너졌다. 두 번째 원인은 은행 유동성과 관계된 문제로 은행 재무상태표의 대변과 관계되어 발생한다. 차변 쪽의 보유자산 부실에 대한 우려로 대변 쪽에서 대규모 예금인출사태가 벌어질 때 이에 상응할 만큼 충분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뱅크런은 보스턴 차 사건을 불러온 1772년 영국의 대규모 뱅크런부터 금융위기 때 영국의 노던록, 미국의 와코비아의 뱅크런까지 세계적으로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발생했다.

대응 까다로운 ‘공포의 전염’

이코노믹스

은행 파산의 전염 경로 역시 상이하다. 차변 쪽의 자산 부실로 인한 은행 파산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타고 번진다. 첫 번째는 한 은행의 부실이 지급결제 망을 타고 다른 은행에 전파되거나 은행 간 대차관계로 부실이 전염되는 경우다. 둘째는 부실은행이 대응 과정에서 보유자산을 헐값에 처분하는 ‘파이어 세일’로 인해 유사 자산을 보유한 다른 은행마저 부실화되는 경우다. 2008년 금융위기는 주로 이 두 번째 경로를 타고 전이됐다.

반면 대변 쪽에서 발생하는 뱅크런의 전염경로는 바이러스성 공포(viral panic)다. 한 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할 경우 공포가 전이되어 다른 은행으로 뱅크런이 확산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차변에 기인한 파산은 은행의 탐욕(greed)에 의해 발생하고 펀더멘털과 관계된 반면, 대변에 따른 파산은 예금자의 공포(panic)에 기인한 만큼 펀더멘털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차변 문제는 펀더멘털과 관계있는 만큼 대응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실제 금융감독당국의 시스템 리스크 관리에서 핵심 금융규제는 대부분 이를 방지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규제를 비롯해 보유자산의 위험을 통제하는 고강도의 건전성 규제가 그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반면 뱅크런의 경우는 예금자들의 공포를 불식해야 하므로 대응이 훨씬 어렵다. 17세기 영국에서 지불준비금제도가 도입되었고, 1933년 미국에서 예금자보호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그림〉에서 보듯 이런 제도 도입 후에도 뱅크런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뱅크런, 은행업 속성과 공포의 결합

그렇다면 뱅크런은 왜 이렇게 빈번히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본질적으로 은행업이 가진 ‘업의 속성’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예금자는 단기로 자금을 빌려주려는 데 비해 기업·가계는 장기로 자금을 빌리고자 한다. 예금자의 단기 공급을 대출자의 장기 수요로 변환해주는 유동성 전환 (liquidity transformation)이 은행업의 본질이다. 이런 변환을 통해 확보된 자금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산업자금과 가계의 부동산·신용 대출의 원천이 되어 경제성장의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단기예금을 장기대출로 전환하다 보니 대규모 예금인출이 발생할 경우 대출 회수로 대응할 수가 없어 뱅크런을 피할 도리가 없게 된다.

문제는 뱅크런을 일으키는 대규모 예금인출이 펀더멘털과 관계가 없는 공포에 기인하는 만큼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극장의 화재를 예로 들어보자. 위에서 말한 차변 쪽 은행파산은 진짜 극장에 불이 난 경우다. 반면 대변 쪽 뱅크런은 다르다. 한두 명이 뛰기 시작하면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뛰기 시작한다. 정작 왜 뛰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타인들이 뛰는 행위를 목격한 것 자체가 공포를 유발해 같이 뛰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극장에서 압사 사고까지 나게 된다. 뱅크런 역시 이와 동일한 과정을 겪게 된다.

뱅크런이 무서운 것은 바로 자기충족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점이다. 즉 뱅크런이 일어난다는 공포 자체가 진짜 뱅크런을 가져온다. 극장의 예나 뱅크런이나 모두 미시경제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조정실패 (coordination failure) 현상이다. 조정이 일어나 모두 동시에 뛰는 것을 멈추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더 좋은 균형(the good equilibrium)’에 도달할 수 있지만, 조정이 되지 않으면 ‘파국의 균형(the bad equilibrium)’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공포가 매개체인 만큼 어떤 경우에 뱅크런이 발생할지 사전 예측이나 예방이 불가능하다. 작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다이아몬드와 필 디빅 교수의 논문 핵심이 바로 이런 내용이다. 종합하면 뱅크런은 은행업의 유동성 변환이란 업의 본질과 공포라는 심리적 현상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금융규제를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다. 예금보험 한도나 지급결제 담보비율 상향 조정과 같은 사전 대비책이나 인출금지 명령과 같은 사후 대책까지 언급되고 있지만, 이런 미시 방안들은 약간의 도움만 될 뿐이다. 극장에 소화기가 준비되어 있거나 방화벽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뛰는 걸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다. 일각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출금지 명령(bank holiday)’은 그 기간 경제를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포심을 더 부추길 수도 있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인출금지 명령이 부분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성공 이유는 그것이 아니라 100% 예금보장을 선언해 예금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줬기 때문이다.

신속한 진화가 중앙은행의 역할

이번 SVB사태를 ‘디지털런’으로 부르면서 마치 기존의 뱅크런과 차별화된 것으로 보지만, 인출 속도가 빠르다는 점 외에는 경제적으로 동일하다. 일단 뱅크런이 발생하면 산불과 유사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초동대응이 관건이며, 이때 중앙은행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은 뱅크런을 막기 위한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기대하고 도입되었다. 그런 만큼 일단 발화한 은행에 대한 신속한 유동성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은행 자산을 담보로 유동성을 지원하든, 인출된 예금만큼 현금을 예치해 주든, 신속한 조치로 뱅크런이 다른 은행으로 확산하는 것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

해당 은행의 구조 조정은 뱅크런을 막은 다음에 진행해도 충분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뱅크런에 대한 백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발병할 경우 바이러스성 공포를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공포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포를 불식할 수 있는 신뢰 구축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SVB, 터무니없는 보고서로 희생돼

그리고 이번 SVB 뱅크런에서는 별로 주목되지 않은 한 가지 시사점이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SVB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16.05%로 미국 은행 평균 14.8%보다 높았다. 그렇다면 왜 건전성이 높은데도 당했을까?

그 이유는 SVB가 국채처럼 시가평가가 용이한 자산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대형 투자은행이 리서치 리포트를 통해 금리 인상으로 SVB가 보유한 국채에서 160억 달러의 평가손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우려가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은행은 국채보다는 대출을 많이 보유한다. 대출은 회사채와 경제적 실질이 같다. 따라서 엄밀히 시가평가를 할 경우 미 국채 5년물의 가치가 30% 하락한다면 5년 만기 기업대출은 30%보다 더 가치가 하락해야 한다. 그러나 대출자산은 시가 평가가 용이하지 않아 공정가치평가를 해도 장부가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동일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미국의 다른 은행들은 평가손 측면에서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리포트로 오히려 안전 자산을 많이 보유한 SVB가 뱅크런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여기에 뱅크런의 핵심이 있다. 차변의 펀더멘털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차변에 문제가 있다는 뉴스나 루머로 인해 대변 항목에서 사달이 발생하는 현상, 이것이 뱅크런의 본질이다. 디지털 세상에는 온갖 루머와 가짜 뉴스가 횡행한다. 정작 무서운 것은 이것이다. 가짜 뉴스로 은행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촉발되고 그런 우려가 공포로 확산할 경우 어떤 은행도 디지털런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강경한 대응과 함께 신속하고 강력한 신뢰 구축장치가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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