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제한 풀렸다고 집 팔다 징역 1년…정부 '뻥카'에 속은 그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법 개정 늦어 거주의무는 그대로
강화·완화 반복돼 정책 효과 못봐
규제보다 경제적 당근 활용해야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양치기 소년 거짓말' 전매제한·거주의무
지난해 말 준공한 서울 마포구 아현동 더클래시 아파트를 지난 2월 분양받은 A씨가 고민에 빠졌다. 이 단지는 지난해 말 전매제한 기간 8년, 거주의무 기간 2년 조건으로 후분양했다. 올해 초 전매제한 기간을 완화하고 거주의무를 폐지하겠다는 정부 발표를 믿고 계약했다.
직접 거주할 필요가 없어지는 데다 소유권 이전 등기만 하면 전매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도장을 찍었다. A씨는 당장 입주할 여건이 되지 못해 우선 전세를 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주의무 폐지가 늦어지면서 난감한 상황이 됐다. A씨는 “기존 전셋집이 빠지지 않아 들어가 살기도 쉽지 않다”며 “거주의무에 묶여 팔 수도 없다”고 말했다.
"최대 10년 전매제한, 3년으로 단축"
전매제한이 풀려 분양받은 아파트를 팔 수 있게 됐지만 직접 들어가 살아야 하고 매도하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규제 완화가 엇박자를 내고 있어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과도한 실거주(최대 5년) 및 전매제한(최대 10년) 규제를 지역별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5년 이전 합리적 수준으로 환원하겠다”고 했다. 국토부는 지난 1월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전매제한 기간을 최대 3년으로 줄이고 거주의무를 폐지하기로 확정했다. 정부는 “소급 적용하기 때문에 앞서 규제 완화 시행 전에 분양한 단지도 혜택을 본다”고 설명했다.
거주의무 폐지 대상은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단지 ▶공공재개발 ▶세종시 이전 기관 종사자 특별공급 ▶지분적립형·이익공유형 공공분양 중 수도권 상한제 단지와 공공재개발이다. 정부 관계자는 “세종시 특별공급 거주의무는 규제를 적용받아 분양한 물량이 없어 사문화됐고 지분적립형·이익공유형은 상한제와 사업구조가 다른 주택이어서 거주의무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거주의무 폐지는 법 개정해야
전매제한 기간은 법 개정 사항이 아니어서 정부가 조정할 수 있다. 지난달 7일부터 단축돼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거주의무 폐지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 전매제한처럼 정부가 기간을 줄일 수 있지만, 아예 폐지하려면 거주의무를 담은 법 조항을 바꿔야 한다. 정부는 관련 법 개정안을 별도로 내지 않고 지난해 여당이 거주의무 완화를 담아 발의한 법안으로 처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회에서 개정안 논의가 늦어지면서 전매제한 완화와 속도 차이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공사 중일 때나 늦어도 준공 후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면 팔 수 있도록 한 전매제한 완화가 거주의무에 발목이 잡혔다. 막상 전매제한에서 풀려도 거주의무 때문에 전매하거나 임대하지 못하는 단지가 잇따르면서 시장이 혼란스럽다.
2021년 6월 10년 전매제한, 3년 거주의무 조건으로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가 8월 준공 예정이다. 전매제한 완화 덕에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면 전매할 수 있지만 거주의무가 풀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올해 초 분양한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은 분양 1년이 지난 내년 초 전매할 수 있지만 2년 거주의무가 유지되면 분양권을 팔지 못한다.
거주의무는 강력한 규제다. 입주 가능할 날부터 90일 이내에 전입 신고를 하고 직접 들어가 살아야 한다. 거주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벌칙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거주하지 않으려면 LH에 분양가 수준으로 팔아야 한다. 정부·국회에 따르면 조만간 거주의무 폐지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른 시일 내에 폐지돼 정부 정책 엇박자가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큰소리만 친 '양치기 소년 거짓말'
거주의무 폐지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참에 전매제한과 거주의무 규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효성이 없는 행정편의주의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전매제한은 가장 오래된 규제다. 40여 년 전인 1981년 도입됐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투기적인 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자에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장 상황에 따라 강화와 완화가 반복됐는데,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가장 긴 전매제한 기간이 10년이었는데, 전매제한 기간 규제가 풀려 제대로 시행해 보지도 못했다.
2006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분양 때 10년(최대 기준) 전매제한이었는데, 불과 2년 뒤 7년으로, 다시 1년 뒤 5년으로 줄었다. 문재인 정부가 전매제한을 강화해 2019년 10년까지 늘렸지만 3년여 만에 3년으로 단축됐다. 김정아 내외주건 대표는 “전매제한 강화·완화를 지켜본 ‘학습효과’로 인해 주택 수요자가 전매제한 규제를 겁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주의무도 마찬가지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개발제한구역 자리에 공급한 보금자리주택에 거주의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5년이었으나, 2년 뒤엔 1~5년, 다시 2년 뒤엔 0~3년으로 줄었다. 문 정부가 2021년 2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단지로 확대해 도입한 최대 3년 거주의무도 막상 대상 단지가 준공돼 적용되려는 상황에서 폐지가 거론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뻥카'를 들고 큰소리만 치며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되풀이한 셈이다.
전매제한 및 거주의무 강화는 오히려 청약 과열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았다. 전매제한 및 거주의무 기간이 주변 시세 대비 분양가 수준에 따라 정해지다 보니 긴 규제 기간은 ‘로또’ 보증이었기 때문이다.
전매제한과 거주의무는 거주 이전의 자유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데다 실익도 없다. 단기 전매를 억제하고 실거주를 지원하는 데는 오락가락하는 전매제한 및 거주의무보다 양도세 감면과 관련한 보유·거주 요건이 더 효과적이다. 장기 보유·거주가 억대의 세금을 아낄 수 있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규제의 채찍보다 인센티브를 활용한 당근이 주택 수요자의 행동을 바꾸는 데 효과적이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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