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후광효과 사기
종교 미술에서 후광(halo)은 성인의 머리를 둘러싼 원형의 빛을 가리킨다.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로마의 황제에게 후광이 나타났다. 기독교 미술에서 4세기 중엽부터 그리스도에게 둥근 원반 형태의 후광이 표현되기 시작했고, 6세기부터는 성모 마리아나 다른 성인들에게까지 사용됐다. 불교미술에서 후광은 광배라 한다. 3세기 후반 인도의 불교 미술에 등장한 이후 머리를 둘러싼 두광뿐 아니라 온몸을 둘러싼 전신광에 화염·연화·당초 등 문양이 추가되며 다양하게 발전했다.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후광은 성인들의 몫이었으나 오늘날엔 실생활에 고루 스며들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대에서 상관이 부하를 평가하는 태도를 연구했다. 장교들은 인상이 좋고 품행이 바른 군인은 사격 실력도 뛰어나고 군화도 잘 닦으며 하모니카도 잘 부는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여겼다. 손다이크는 이렇게 하나의 장점을 근거로 모든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걸 ‘후광효과(Halo effect)’라 정의했다. 여러 가지 특성을 독립적으로 측정하는 대신 일반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뭉뚱그리는 심리적 현상이다.
인간은 후광효과에 기대어 평가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가면 외교·안보·경제 등 분야를 막론하고 평가점수가 고루 상승하는 것도 후광효과다. 명문대 출신은 창업해도 성공 가능성이 더 클 것처럼 보이는 것, 매출이 성장하는 기업은 일하기 좋은 기업 문화까지 갖춘 직장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후광효과로 설명된다.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는 건 후광효과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전형적 사례다. 후광효과는 사기에도 쓰인다. 가수 임창정씨가 라덕연 R&K 투자자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주가 시세조작단의 얼굴마담 노릇을 하다 수십억원을 날리고 빚까지 졌다. 임씨는 10분 만에 통장에 25억원을 이체한 라씨의 자금력에 현혹됐다고 한다. 가수는 투자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투자자 모임에서 라 대표를 “종교”라 추켜세운 임씨의 후광효과에 넘어간 이들이 적잖을 듯하다.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하기보다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후광효과에 덜 휘둘릴 터다.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회 앞둔 10대 하의 벗기고 '찰칵'…태권도 관장 추악한 훈련 | 중앙일보
- "그루브까지 전달했다" 英대관식 공연보다 돋보인 수화통역사 [영상] | 중앙일보
- 빌 게이츠는 8조 나눴는데…노소영 울린 ‘K-특유재산’ | 중앙일보
- 코인 현금화 없었다던 김남국…"전세 위해 8억 매도" 말바꿨다 | 중앙일보
- [단독] 꿀벌 사라져 100억 썼다…성주 참외 '벌통 구하기' 전쟁 | 중앙일보
- 회 먹으면 동물학대? 암생존자만 문화상품권? '황당법안' 속출 [尹정부 1년, 무능 국회] | 중앙일
- "송혜교 배워라" 박은빈에 막말 김갑수, 일주일만에 결국 사과 | 중앙일보
- JMS 정명석 변호사 '그알' 법률 자문단이었다…SBS "해촉 결정" | 중앙일보
- 김민재 인스타에 댓글 단 조수미 "김민재 덕분에 33년 만에 나폴리 우승" | 중앙일보
- 김남국 말대로라면 '숫자'가 안맞는다…'코인 종잣돈' 미스터리 | 중앙일보